이별결심

퇴직을 결심하기까지 2년

by 영희

퇴직은 이별과 같아서 ‘퇴직’이라는 것을 마음에 둔 이후로도 단번에 끝장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나의 결심이 일말의 후회도 남기지 않을 현명한 선택인가를 의심하게 한다. 그렇게 지난한 2년의 시간 동안 퇴직을 할 것인가 혹은 말 것인가 사이에서 휘청이며 선택을 유보했다. 어느 날은 그래도 할만하지 않은가, 이 정도 즘은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나의 능력 혹은 버티기의 한계를 시험했고, 어느 날은 이 정도 버텼으면 됐잖아 새로운 곳을 찾아가자 라며 결별을 종용했다. 지금의 조건보다 나은 직장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자기 불신이 결정을 망설이게 했다. 그간에 갈등이 있을 때마다 으름장을 놓듯 상사가 했던 말도 나의 발목을 잡았다.


“회사가 그러는데 우리 월급 적게 받는 편이 아니래.”


“다른데 가면 더 좋을 것 같지, 다른 곳이 여기보다 더 힘들어.”


“더 좋은 곳 있으면 얼마든지 그만둬도 돼. 나는 안 말려.”


“돈 많이 주는 곳은 그만큼 이유가 있는 거야.”


이제와 하는 이야기지만 근무 2년 차에도 그랬고, 3년 차에도 그랬듯이 인심 쓰듯 올려준 쥐꼬리만 한 월급은 사실 시급 수준에 머물렀고, 퇴직 후 새로운 직장을 찾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퇴직하기 직전까지 내가 받던 월급은 같은 직종 심지어 같은 회사에서 위탁으로 운영하는 같은 백화점 내 타매장의 초봉월급이었다는 사실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초봉 월급과 나의 것이 같았다. 그 사실을 두 눈으로 목도하고는 얼마나 배신감이 치밀어 오르던지. 3년 차에 받아 본 계약서에는 얼마간 오른 급여만큼이 중식으로 기입되어 있었다. 회사가 말하길, 중식은 세금을 떼지 않으니 사원들에게 부담을 덜어주기 방식으로 월급을 올려주었다는데 어불성설이다. 오른 월급만큼 회사도 함께 세금을 감당해야 할 테고, 퇴직 시 퇴직금에도 오른 월급이 반영되니 잔머리를 쓴 것이면서 말만 번지르하게 직원을 위하는 척하다니. 빤한 거짓말에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나마 올려준 것에 감지덕지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것은 퇴직 후에 알게 된 것이고, 어떤 특별한 사건을 계기로 퇴직을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퇴직 고민을 시작한 이레로 근 2년간 계속해서 여러 일들을 겪으며 점차 결심이 굳어지는 과정을 통해 완전히 결정 내리게 되었다.


먹을 것을 곧잘 주머니 속에 넣어주곤 하던 동료는 꽤 자주 “OO씨는 이런 쪽보다는 사무직이 어울려”라고 말해왔다. 언젠가는 뜬금없이 “OO씨는 나이도 젊고 하니까 여기 그만두더라도 더 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을 거야”라는 이야기를 해왔다. 평소에도 전혀 이야기 맥락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불쑥해오던 사람이라 ‘이번에는 또 무슨 엉뚱한 이야기야’라는 생각을 했다. 돌아서서 생각해 보니 그때쯤 매니저와 사이가 크게 벌어지고 다른 동료와도 일 이야기 외에는 잘 하지 않을 정도로 형식적인 관계만 겨우 유지하던 때라,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곧 그만둘 것으로 예상했는지 혹은 내가 없을 때 그들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나의 미래를 점치는 듯한 발언이었다. 그쯤 되자 모두가 나의 퇴직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즘에 옆 매장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같은 층의 다른 매장으로 이직한 일이 있었다. 옆 매장의 매니저는 평소에도 직원을 쥐 잡듯 혼낸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할 정도로 심하게 동료를 질책하거나 무안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둔 직원이 일을 함께할 때 답답한 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옆에서 보면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심하게 다그치는 게 아닌가 생각됐다. 이직한 후 표정이 밝아지고 인상이 환해 보여 함께 있던 동료에게 "이직하시더니 훨씬 좋아 보인다."라고 말하자 동료는 "서로 좋아진 것 같은데"라 답했다.


당시 숨 쉬듯 이직을 고민할 때여서인지 해당 발언이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내가 그만두는 것이 이 매장과 동료, 그리고 나에게도 좋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맞지 않는 사람과 업무 환경 속에서 잘해보려 발버둥 치다 더욱 진창으로 빠지는 것보다는 나의 장점이 장점으로 적용될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하는 것이 서로를 괴롭히지 않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했다.


출근하는 매일이 괴롭던 때, 미래에 대한 걱정과 처한 현실의 불안이 스스로를 좀 먹게 하던 때가 있었다. 출근길 버스정류장에 서서 대로변을 타고 쭉 심어진 크고 울창한 플라타너스 잎사귀들을 올려다보며 버스를 기다렸다. 맞은편 아파트와 관공서 건물을 뚫고 곧게 뻗어온 햇빛이 잎사귀를 타고 반짝였다. 산산이 불어오는 바람이 잎을 흔들었고 하늘은 새파랗게 푸르렀다. 고개를 꺾어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다 문득 떠올렸다.


“내가 겪고 있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한창 여름이 뜨겁게 작열하며 반짝이며 가고 정류장 아래 바람이 시원하게 머물다, 차가운 칼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려 외투모자를 바투 고쳐 입을 때 퇴사했다. 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을 기다리며, 사계절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왔다 가는 것을 놓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해졌다.


퇴사 후 이직 자리를 알아보다 알게 된 나의 월급의 비루함 만큼이나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퇴사증명서에 찍힌 직위란에 주니어라고 적힌 것이었다. 언젠가 매니저는 나의 열정을 종용하며 이야기했다. “사실 OO씨 이번에 회사에서 시니어로 올랐는데 내가 이야기 안 하고 있었어.”


“아 아가리파이터는 믿지 말았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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