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그와트 입학 편지를 기다리지 말 것

더 나은 세계로

by 영희

설 특선 영화였는지 추석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작은 TV화면에 펼쳐진 신비한 이야기와 기이하고도 화려한 장면을 보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당시로서는 그동안 살아온 삶에서 전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해리포터'는 나와 같이 평범하면서도 꽤나 지질한 인물이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같은 행성 어딘가에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한(실은 그렇게 믿고 싶었던), 어쩐지 생김새가 나와는 조금 다른, 초록 눈을 가진 인물이 신비한 동물 부엉이가 물고 온 호그와트 초대장을 받는다는 설정은 나도 언젠가는 다른 세계로 가는 호그와트 입학 편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이상한 흥분과 고양감마저 불러일으켰던 영화 배경음악도 상상을 부풀리는데 한 몫했다.


명절 특선 영화로 시작한 해리포터 시리즈에 대한 사랑은 원작인 책 섭렵하기, 새로운 시리즈가 영화관에 걸리는 족족 관람하기에 이르렀다. 2011년 '죽음의 성물 2'를 끝으로 시리즈가 막을 내린 후에도 종종 책을 들춰보고 영화를 다시 보기도 하면서 해리포터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도 처음 TV를 통해 전혀 다른 세계를 마주한 충격은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젠 더 이상 호그와트에서 날아올 입학편지를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왠 뜬금없는 해리포터 이야기냐고?


현실의 괴로움을 감당하지 못해 호그와트 입학편지를 기다렸던 나는, 현실세계로 끌어내려져 무수한 좌절을 겪은 후 마법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누구도 가만히 있는 나에게 호그와트 편지를 날리는 일은 없다는 것을.


현실로 돌아와 이야기해 보자.


새해 초였을 것이다. 동료에게 직장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월급은 시급 수준인 데다, 타 매장에 비해 업무 강도는 높은데 인센티브 따위는 없고, 명절 떡값은 구경도 못해봤으며, 연차 쓰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다며 불평을 열거했다. 월급을 올려주겠다고만 하고 여러 이유를 대며 자꾸만 차일피일 미루던 회사에 대한 불만이 가득 차 있을 때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동료가 한마디 던졌다.


“공부 안 한 나를 탓해야죠”


머리가 띵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마땅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일하는 게 나의 탓이라고? 학창 시절에 선생님에게 한 번쯤 들어보았던 말이 떠올랐다. ‘추울 때 따뜻한 곳에서 일하고 더울 때 시원한 곳에서 일하려면 공부해라.’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고 현실에선 분명한 구분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게으르게 살아서 이 직업을 갖게 된 것일까. 그래서 현실에서의 크고 작은 부당함 정도는 견뎌야 하는 것일까. 이른바 블루칼라로 꼽히는 직종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도 못하는 걸까.


동료는 나의 불평불만에 질려 이제 그만 이야기하라는 의미로 이야기한 듯도 하다. 그러나 동료의 말은 많은 생각을 불러왔다. 아직도 세상의 여러 곳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부당함을 알리려 하는 목소리에 동료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목격한다. 세상에 다양한 직종은 저마다의 쓸모를 갖고 있으며 사회에 필요한 존재들이라 믿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본인의 삶을 최선을 다해 가꾸는 사람들을 편향된 시각으로 납작하게 바라보지 말라 말하고 싶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며 어쩌면 당신의 노력 또한 누군가의 뒷받침 없이는 시작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세상의 부당함과 기울어짐을 인정하고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 맡겨져 온갖 구박을 받던 해리포터에게 어느 날 우연히 도착했던 호그와트 초대장 따위는 우리에게 오지 않으며,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를 더 좋은 세계로 데려다 놓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더 많은 월급, 더 좋은 직장 복지, 더 나은 업무 환경을 갖기 위해서는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된다. 근무하는 직장에서 내가 일한 것에 비해 적은 연봉을 받고 있다면 회사에게 월급을 올려달라 요구해야 한다.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를 쓰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한다면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해야 한다. 나의 가치를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나의 가치를 더 높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동료의 말에 어떤 말도 하지 못한 것은 불평은 잔뜩 늘어놓으면서, 유의미한 노력은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료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죠.”라는 말도 덧붙였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절이 싫으면 더 좋은 절을 찾아 떠나야 한다. 더 좋은 절에서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나를 받아주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만들면 된다. 절이 나와 맞지 않다면 성당으로 가는 것도 방법이다.


나를 또 다른 세계로 데려다줄 수 있는 존재는 호그와트 편지 따위가 아니라 다름 아닌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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