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OO씨는

퇴사가 남긴 것

by 영희

일주일에 한두 번 매장에 아르바이트로 근무하던 직장 선배가 말했다.


“OO씨 매니저는 여기랑은 세대가 달라서 생각하는 것도 달라. 아무리 월급 적게 받는다고 하지만 매니저 월급이 훨씬 많지, 여기만 있지 말고 다른 데로 이직하면서 자기 몸값도 올리고 하는 거야. 여기 경력이 좀 되니까 다른데 알아보고 지금 받는 것보다 조금 더 받는다고 거짓말도 좀 하고 하면서 계속 조금씩 월급 올려나가는 거지.”


“여기는 매년 연봉협상하나? 연말이나 연초 돼서 여기 관리자한테 슬쩍 월급 올려달라고 이야기해 봐. 매니저한테는 이야기하지 말고. 만약에 매니저가 알게 된다 하더라도, 그건 매니저가 뭐라 하면 안 되는 거야.”


아 선배님, 선배님 이야기에 진작 귀를 기울였어야 하는데요.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그냥 하는 소리겠지 하고 흘려들었던 것이 후회된다. 거저 되는 선배 없다고 먼저 길을 걸어간 세월을 무시할 수 없는 건데, 현실을 바꿀 수 없을 거라 지레 짐작하고 게으른 처신을 하였다. 인생은 협상의 연속이라던데 단 한 번도 협상의 문턱에도 들어서지 못했다.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불신도 한 몫했던 것 같다. 충분히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믿지 못했다.


퇴사를 결정하면서 가장 먼저 결심한 것은 나를 더 좋은 환경에 데려다 놓겠다는 거였다. 나를 좀 더 제대로 대우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쉬고 싶었다. 잠시간 아무 생각하지 않고 쉬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적은 퇴직금과 매달 고정으로 나가는 생활비가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방 안에서 며칠이고 누워있다, 와식 생활에 익숙해지다가는 일어서는 것도 힘들 수 있겠는데 하는 위기감도 들었다. 그래서 퇴직 후 일주일 즘 지났을 때부터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리게 되었다. 그곳에 올라온 여러 구인 목록을 보다 보니 처음 이사를 와 구직하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에도 별다른 경력이나 자격증이 없어서 일할 수 있는 직종이 매우 한정적이었다. 지금 와서 보니 그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나마 백화점 4년 근무 경력이 한 줄 추가되었다. 4년 전 구직을 할 때 느꼈던 자괴감, 열등감들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디선가 보았던 성공한 자들의 특징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열등감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 안에 있는 열등감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는 골자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여기에 착안하여 다가올 한 해의 기조를 “열등감 돌파”로 잡았다. 이전부터 나를 열등감으로 몰아넣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치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본격 시작한 것이 브런치 스토리 글 게재였다.


매년 ‘브런치 선정 작가’ 글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런 곳에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시기와 동경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다지 읽을거리도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일단 쓰고 올리자는 단순한 결심이었다. 어디선가 보기로는 글감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이라길래 나의 이야기 중에 어떤 것이 꾸준히 글을 쓰기에 알맞을까 생각하니, 가장 최근의 일이기도 하고 그나마 부담이 덜한, 여러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주제가 백화점에서의 근무기록이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최근에 일어났던 일 중에 가장 강렬한 기억이었던 퇴직면담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1. 고객 2. 동료 3. 일 세 가지의 큰 주제를 줄기 삼아 이야기를 풀어갔다. 유쾌하고 재치 있게 글을 쓰고 싶었지만 사람 따라간다고 다소 딱딱한 글이 된 것 같아 아쉬움도 남는다. 그러나 끝을 맺었으니 어설프게나마 결과물을 만든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백화점에서의 여러 에피소드를 더듬어 가면서 ‘그땐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부끄럽고 괴롭기도 했다. 때로는 나에게 유리하게 사건을 해석해 쓰기도 했다. 이걸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본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이건 모함이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나의 이야기이니 나의 입장에서 쓰는 건 당연하다고 변호해 본다.


지난 4년 간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으나, 당시의 경험이 나에게 어떤 것을 남겼는지 명확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이런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전혀 다른 해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자 사회적 동물이라고, 일을 하면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되면서 흠칫 놀라기도 하고 부인하고 외면하고 싶은 ‘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나라는 것을 인정한다. 이런 나를 데리고 살아야 한다. 못난 부분은 최대한 잘 안 보이게 감추기도 하고 잘난 부분은 앞으로 꺼내놓기도 하면서 나를 잘 관리해야겠다 생각한다.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겠지만. 시간은 많은데 돈은 부족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 시간을 잘 보내서 열등감을 폭파하고 좀 더 마음에 드는 나로 만들고 싶다. 이 세상의 모든 OO씨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특히 서비스직에 일하는 모모 씨에게 더욱 힘찬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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