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하는 지독히도 냉정한 일

일이란 무엇일까(2)

by 영희

‘일’이란 무엇일까.


"나를 기쁘게도 하고 나를 진창으로 처박기도 하는 밀당의 고수."


이렇게 정의하면 될까?


내가 겪은 '일'은 너무나 냉정해서 스스로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착각을 무참히 깨버린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 면모를 갖고 있다고 하지만 일을 하면서 마주하는 자아는 유독 못나 보인다. 내가 이렇게 형편없는 인간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인간을 평가할 때, 혹자는 처한 환경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말한다. 누구는 드디어 진면모가 드러났다 한다. 두 가지 모두 일리가 있다 생각하지만, 내가 몹시 싫어진 때는 나의 못난 모습에도 이유가 있다고 변호하고 싶어 첫 번째 주장을 내심 지지했다. 지질한 나를 혐오하던 시기를 지나, 나의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가 나임을 인정하고 난 후로는 사람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깊이 공감한다. 평화 속에서 친절한 얼굴도, 불안한 환경에서 까칠한 얼굴도 동일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다. 이십 대 때는 상황 따라 바뀌는 나의 모습이 불완전하다 생각했다. 제각각의 나를 하나도 통합시켜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던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를테면 어떤 극한의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친절한 나를 만드려고 노력했다. 이게 되지 않으면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 자책하며 더욱 미워했다. 지금은 이것도 저것도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여러 상황에 맞춰 적절히 대응하는 법을 터득하려 노력하고 있다.


일은 단어의 뜻 그대로 ‘TASK(업무)’를 말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맞부딪치는 '일'은 업무에 얽히고설킨 모든 것을 망라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일을 하는 사람과 조직, 이들을 둘러싼 무수한 관계들과 조직문화와 업무환경 등이 모두 '일' 속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일이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일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백화점에서 일하기 이전의 나는 성실하고 꼼꼼하며 동료가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백화점 직원으로서는 융통성 없고 긁어 부스럼 만들기를 잘하고 동료에게 짐이 되는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원래 알던 나와 너무 달라 혼란스러웠다. 또 억울하기도 했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나를 바로 봐주지 않는다 생각했다. 성실하고 믿음직스러운 것도 융통성 없고 일을 크게 만드는 것도 모두 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이렇듯 ‘일’이라는 것은 사람을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 밀어 넣고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나’를 끄집어내, 냉정하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한다.


회사라는 조직 내에서 나라는 사람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개인의 이익이 연관된 문제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단체 생활에서의 인간관계는 어떤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어떻게 협상하고 조율하는지 등. 그리고 이 모든 것에서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지도 알게 한다. 또한 ‘일’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관계인지 보상인지, 자아효능감인지 알게 된다.


백화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면서 알게 된 나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좋아하지 않지만 상품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것은 좋아하고 보람을 느낀다. 내가 기여한 부분에 대해서 확실하게 보상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가 한 일이 모두가 한 일이라고 뭉뚱그려 표현되는 것을 싫어하고 나의 노력과 그에 따른 결과를 확실하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인정욕구가 강해서 동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고, 나의 기여도가 반영된 월급을 원한다. 이를 통해 결론지은 나는 '나의 이름으로 된 결과물을 만들기를 원하고, 이를 통해 좋은 결과를 얻어 나의 효용을 나를 포함해 세상에 증명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백화점에서 4년간 근무하며 알게 된 것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직도 여러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미숙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적어도 어떤 식으로 해야겠다는 것은 윤곽을 잡았으니 다음번엔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내심 기대한다. 회사는 배우러 오는 곳이 아니고 일하러 오는 곳이라는 말도 있지만, 회사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함께 일하는 법을 배웠고, 다른 의견을 조율하는 법을 배웠고, 험담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뼈아프게 느꼈고, 백 프로 이백프로 최선을 다해서는 지속적으로 일하기 힘들다는 것을 배웠고, 감정적인 상사에 대처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일하는데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배웠다. 그리고 매년 월급인상을 기다리지 않고 ‘협상’이라는 선택지도 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알고만 있고 한 번도 협상을 시도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퇴사 후 지난 4년간의 시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지 생각해 본다. 그만두고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백화점 근처로는 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었지만,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꼽고 했던 회사가 나에게 남긴 게 그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다. 운명론자는 아니었는데, 20대 후반에서 30대로 넘어서는 시기에 백화점에서 일하면서 동료들을 만나 여러 좋고 싫은 일들을 겪은 것이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신승리일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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