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듯 천천히
영화관은 겁쟁이가 혼자 울러 가는 곳이라고 '다자이 오사마'가 말했던가?(확실하지 않다).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기운을 내려고 영화관에 간 적은 없다(최근 2년 동안은). 보고 나서 기운이 더 처질 때도 있다. 억지로 감추고 묻어 두었던 나 자신의 어둠을 본 이유이거나 마주하기 싫어서 회피해왔던 '무엇'을 마주해서 인가? 그런 면에서 나에게 영화는 실용적이진 않다. 그렇다고 가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세상에 쓸데 있는 것만, 의미 있는 것만, 있다면 숨 막혀서 살 수 있을까? 쓸데없고, 의미 없는 것도 필요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이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다. 사람을 좋아하면 알고 싶고 궁금한 것처럼. 그래서, 급기야 그의 수필집까지 사는 일을 저지르면서, 나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어깨 들썩). '믿는다'라는 것이 얼마나 헛된지를 아는 나이인데도 그가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아이스크림은 막 녹으려 할 때가 달고 부드럽다. 영화를 보는 동안 마음속 한편에 얼어있던 감정이 서서히 녹으며 "이런 감정 알지?"라고 묻고 있다. 그는 잊고 있던 감정들을 주워 모아 손바닥에 올린 뒤 "자, 이것 봐!" 하며 우리에게 보여 주기만 한다. 그리고, 판단은 각자가 하라고.
당신은, 영원히 머물고픈 순간이 있나요?
죽은 이가 천국으로 가기 전 7일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을 고르는 이야기
"당신의 삶에서 단 하나의 기억이 남는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것을 선택해도 의미 있다. 그런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런데 반대로 "나도 누군가의 행복이었을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가족의 탄생과 죽음
형의 기일에 모인 가족의 이야기
살면서 죽음에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는 타인의 죽음보다는 가족의 죽음밖에 없다. 가족의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견뎌야 하는 순간이 있다. 영화에는 길이 많이 나온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바다로 연결된 길, 특히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이 많다. 이 길은 삶과 죽음으로 연결된 길이고, 후손들이 걸어야 할 가족의 길이다.
가족이 함께 사는 기적이 일어날까?
기적은 정말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 아이, 배우가 되고 싶은 아이, 좋아하는 선생님과 결혼하고 싶은 아이... 그리고, 동네 가까이에 있는 화산이 폭발하기를 희망하는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화산이 폭발해야 이 동네를 떠나 이혼한 부모님과 같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까? 순수한 아이들을 통해 가족애와 희망을 따뜻하게 그렸다.
'유키' 나중에 비행기 보러 가자!
갑자기 가장이 되어버린 12살 소년의 이야기
크리스마스에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린 어머니. 그리고 남겨진 네 명의 자녀. 완전히 허구라고 생각은 하진 않았만 실화라고 해서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결핍은 결점이 아니라 가능성이다."라는 생각은 다시 안 할 것이다.
걷는 듯 천천히
메시지라는 말은 정말이지 친해지기 힘든 단어이다.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한마디로 말한다면?"신작 영화를 홍보할 때면 몇 번이나 그런 질문이 되풀이된다. 아, 곤란하다 곤란해... 애초에 내가 이 영화에 메시지란 걸 담았던가. 만약 어떤 작품에 이야기할 만한 메시지라는 것이 포함돼 있다면, 그것은 만든 사람이 아닌 독자나 관객이 발견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메시지의 주고받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내가 전하러 가는 게 아니라 받으러 가는 것이다. 영화에는 '무언가'에 대한 나의 감정이 그려질 뿐이다. 내가 작품을 낳는 것이 아니다. 작품도 감정도 일단은 세계에 내재되어 있고, 나는 그것을 주워 모아 손바닥에 올린 뒤 "자, 이것 봐" 하며 보여줄 뿐이다. 작품은 세계와의 대화다. 작품은 자기표현이 아닌 커뮤니케이션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일상을 풍성하게, 생생하게 보여주는 감독이다. 그에겐 '이야기'보다 '인간'이 중요하다. 일상에서 건져 올린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자신의 내면적 체험과 감정을 탐구해서 인간이라는 종의 보편에 닿으려고 애쓰는 감독이다. 가족의 기억에 관한 음영을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대사에서의 '행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보는 이들이 상상력으로 빈 공간을 채우는 식이다. 그리고, 배우 경험이 없는 아이들의 자연스런 연기를 끌어내는데 탁월하다.
마치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그를 만나면서 변화한 '나'와 다시 만난다.
"처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