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말고 기억해"
꾸준히 여성에 관한 주제로 주제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177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시대의 억압을 뛰어넘은 순수한 사랑을 두 배우가 인상적으로 연기하였다.
줄거리
엘로이즈는 언니의 죽음으로 수녀원에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녀의 어머니는 결혼에 반대하는 딸의 정략결혼을 위해 마리안느에게 딸의 초상화를 은밀하게 요청한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 모르게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엘로이즈를 관찰하게 된다. 그녀를 관찰하면서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산책 도중 몰래 훔쳐보고, 밤에 그 모습을 상상하여 초상화를 그려간다. 한 쪽에서의 일방적인 훔쳐보기로 완성된 작품을 엘로이즈에게 보여준다. 사실은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왔다는 고백과 함께. 그렇지만 엘로이즈의 냉담한 반응에 초상화를 다시 그리게 된다. 이번에는 엘로이즈가 기꺼이 모델이 되어 주겠다고 하여 함께 작업을 한다. 초상화는 서로가 함께 바라보는 작업이다. 시선의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 엘로이즈가 마리안느에게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이 나를 볼 때, 난 누굴 쳐다보죠?"
내가 누굴 바라본다는 것은 나 역시 그 사람이 바라보는 누군가라는 의미가 있다. 내가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건 그 누군가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 누군가 또한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일방적이지 않게 동등하게 훔쳐 관찰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창작자와 모델의 동등한 관계 속에서 그림이 완성이 되어간다.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는 과정 속에서 사랑이 시작된다.
첫 작품에 비해 두 번째 작품에 모두가 만족을 한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더 잘 이해하게 되어서 그림을 잘 그리게 되었을까? 아니면 대상인 엘로이즈가 변했기 때문일까? 그것은 뮤즈라고 일컬어졌던 대상화된 모델이 적극적으로 세상에 대해 언급하고 나서야만 그리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이 영화가 주장하는 것 같다. 18세기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태도가 확연히 다르고, 개인의 운명이 계급에 따라 결정되는 신분사회이며, 여성화가라는 제약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이런 제약 속에 여성들이 뮤즈가 되지 말고 앞으로 나서서 그리려는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외침이기도 하다.
특별한 모티브 '오르페우스 신화'
"뒤돌아보지 마!"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음유시인, 리라의 명수이다. 그의 노래와 리라 연주는 초목과 짐승들까지도 감동시켰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자, 저승까지 내려가 음악으로 저승의 신들을 감동시켜 다시 지상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지상의 빛을 보기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지키지 못해 결국 아내를 데려오지 못하고, 슬픔에 잠겨 지내다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오르페스는 왜 뒤를 돌아봤을까?"라는 질문에 하녀는 오르페스가 뒤돌아 본건 잘못이다. 조금만 참았으면 둘이 행복할 수 있었는데 그 새를 못 참아서 비극이 됐다는 입장이다. 이것이 많은 사람의 생각이다. 한숨과 탄식, 안타까움이 묻어있는 반응이다. 하지만 엘로이즈는 다른 시각을 던져준다. 어쩌면 에우리디케가 뒤에서 불렀을 수도 있다고. "돌아봐요. 여보"라고.
이 오르페스신화 이야기는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마지막 이별의 장면과 겹친다.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는 마리안느가 현관문을 나가기 전 갑자기 뒤에서 엘로이즈의 목소리에 마리안느는 뒤를 돌아본다.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천신만고 끝에 저승에서 빼내고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깬 것이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가 잘 따라오는지 뒤돌아볼 수도 있고, 에우리디케가 불렀을 수도 있다. 이유가 어쨌든 이 모티브를 감독이 넣은 이유는 '돌아봄'인 거 같다. 극중 대화에 "후회하지 말고 기억해"라는 말이 있다. 사랑의 과정과 사랑이 끝난 후의 기억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서로가 가지고 있던 순간을 기억하는 것은 돌아보는 것. 지금은 우리가 같이 있지 않더라도 나는 그 사랑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마치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72회 칸영화제에서 '기생충'과 치열하게 경쟁했던 영화이다. 페미니즘의 비전을 제시한 아주 인상적인 탁월한 멜로 영화이다. 영화를 견인한 인상적인 배우와 탁월한 구성을 한 감독이 있어서 가능한 거 같다. 제약 속의 놓인 두 여성의 타오르는 삶을 우아하고, 아름답게, 마치 한편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였다. 그림, 음악, 책을 절묘하게 연결하고, 특히 비발디의 음악을 들을 때는 항상 생각이 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