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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Oct 13. 2024

03: 00 PM

소악절


‘이 소악절은, 스완의 귀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그의 내면에 자신에게 필요한 공간을 마음대로 열어, 스완 영혼의 균형을 뒤흔들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영혼의 여백이 어떤 즐거움을 위하여 남겨지고, 그 즐거움 또한 외부의 무엇과도 교감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사랑의 즐거움처럼 순전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을 넘어서는 하나의 현실로서 스완에게 닥쳐왔다. 이 소악절은 미지의 매력에 대한 갈망을 그의 마음속에 눈뜨게 했으면서, 이 갈망을 채워줄 뚜렷한 그 무엇도 그에게 가져다주지 않았다.’




PDA화면에 ZC12 32 503 이 떠있다. 신선제품이다. 그는 오후에 집품을 배정받았다. 집품은 PDA기기가 가리키는 위치에 가서 상품을 꺼내 스캔하고 카트에 담으면 된다. 주인대신 마트에서 장을 하루종일 본다고 보면 된다. 다리만 아프지 않는다면 여기저기를 움직이니까 포장하는 것에 비해 지루하지 않다. ZC는 구역, 12는 통로, 32는 진열대, 503은 칸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신선제품 코너의 12번째 통로, 그 통로의 왼쪽이 홀수이고 오른쪽이 짝수이니 오른쪽 16번째가 목적지다. 그곳의 선반 5층의 세 번째 칸에 상품이 있다. 그는 요란하게 끽소리를 내며 카트를 움직인다. 그 위치에 있는, 흰색배경에 검은 막대의 바코드에 대고 PDA를 누르자 '삑'하는 소리와 함께 상품이 PDA화면에 뜬다. 그 위치에 비치된 세 가지 상품중, 온몸의 털이 벗겨진 체 토막이 난 닭이다. 달걀 상태에서 도살될 때까지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채 종국에는 잔인한 칼을 피하지 못한 닭이다. 서둘러 상품을 카트에 채우고 PDA화면을 다시 본다. 3C6 25 205이다. 다시 카트를 유제품 코너로 움직인다. 하나의 카트를 가득 채우는데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퇴근 시간까지 4시간 남았으니 30개 정도 채우면 된다. 걸음으로 치면 2만 보 정도이다. 국내산 꽈리고추, 신선한 대란, 알배기 배추, 국내산 부추, 플레인 요거트, 무항생제 닭가슴살, 슬라이스 치즈, 유기농 애호박, 국내산 백오이, 구이용 삼겹살, 친환경 적상추, 콩두부, 국내산 등심 1등급, 남해 시금치, 저지방우유, 찰진 생칼국수, 에그햄치즈, 흙대파, 찌개두부, 페스트리샌드위치, 산지 직송 딸기, 무농약 콩나물, 횡성 한우 차돌박이, 호주산 부챗살, 부대전골 밀키트, 백 명란젓, 단호박 콘샐러드, 생연어 필렛, 소고기 샤브샤브 밀키트, 콜드브루 원액, 생과일 샐러드를 카트에 싣는다. 크고 무거운 건 아래쪽에 싣고, 가볍고 파손되기 쉬운 야채나 두부 등은 위쪽에 싣는다. 다들 무표정하게 카트를 끌고 다니며 상품을 담는다.      


그가 상품을 집품하면서 하는 것이 있다. 카트에 담긴 상품을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상상하거나 상품을 눈대중으로 무게를 가늠하거나 여러 가지 모양의 블록을 맞추듯 상품의 아귀를 맞추면서 쌓거나 다음 순서에 집품할 상품을 미리 상상하는 것이다. 간혹 신선한 딸기를 집품할 때면 심호흡하며 딸기향을 맡는다. 달달한 딸기향을 맡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 하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지루한 시간들을 견디는 방법들이다. 시간은 수액이 체내에 한 방울 한 방울 흘러가듯 지나간다. 항상 인간을 좌절시키고 용기를 앗아가는 놈이다. 시간은 상대적이라고 했나, 지금은 시간이 그의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어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간은 미끄럼틀에서 내려오듯이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그때는, 그래왔던 것처럼 집과 직장을 오가며 일을 하고, 당연하게도 미친 듯이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밤을 새우고, 직장에 허둥지둥 출근해 회의를 하고 기획서를 작성하고, 다시 돌아와 간단한 식사와 빨래를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직장에 나가고 회식을 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다음날 허둥대며 출근하고 승진을 위해 미친 듯이 일하고, 휑한 얼굴로 돌아와 소파에 기댄 채 잠이 들고, 꽃들이 폭발하듯 핀 길을 지나 출근해서 일하고, 백화점 유리천장을 뚫고 들어온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계절에 맞는 옷을 구입하며 무엇이든 가능할 거라 생각하고, 다음날 때로는 농담을 하며 미소 지으며 일하고, 퇴근길 뭔지 모를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 잠이 들고,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모른 체 일하고, 최신 핸드폰을 구입하고, 일하고, 자동차를 바꿀까 생각해 보고, 일하고, 하릴없이 제 손톱을 세우고 바라보며 결혼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 다시 일하고, 문득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고, 일하며 그녀를 생각하고, 그녀와 만나며 이런저런 약속을 하고, 다시 일하고, 집 장만에 대해 생각하고, 일하고, 이제 그녀가 지겨워지고, 다시 일을 미친 듯이 하고, 운 좋게 내게 싫증난 그녀가 먼저 떠나버리고, 하루종일 일하고, 조용하고 고독한 일요일이 지나가고, 늘 그렇듯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 여행을 하고, 비행기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더 열심히 일하자고 다짐하며 돌아와, 다시 연봉협상을 하고 좌절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간다는 확신 없이 가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다가 나를 사로잡은 여행지의 풍경이 내 안에 불러일으켰던 것을 기억해 내고, 다시 일하다가, 아버지의 죽음을 연락받고 얼굴은 흰 시트로 덮이고 맨다리는 침대 가장자리밖으로 삐져나온 체 바퀴 달린 침대에 실려가 그를 불길이 할퀴고 집어삼키는 걸 보고, 다시 아무 일도 없는 양 일하고, 베란다 귀퉁이에서 바깥세상을 보고, 다음날 다시 일하고, 어느 날 이메일을 확인하고 경조사에 가서 친구의 갑작스러운 작별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다시 일에 몰두하기 위해 책상으로 다가가고, 다시 출근해 일하고,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잠이 덜 깬 채로 일하러 가고, 자신이 해놓은 일이 소용없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나와 세계 사이에 뭔가 삐걱거림을 느끼고, 다음날 또 일하고, 태양이 비치는 날 창밖을 내다보고 저물어가는 마지막 빛이 맞은편 아파트 창문과 마주하는 벽에 던지는 형상을 바라보고, 하루종일 일을 하고, 비 오는 날 밀리는 차 안에서 전조등 불빛에 반짝이는 아스팔트와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빗물에 반사되는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고, 다시 지친 몸으로 사무실에 나가고, 어딘가 정답이 따로 있을 거라 믿고 일하고,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일하고, 저녁시간 마주하고 있는 벽에 던진 공이 벽에서 손으로 손에서 벽으로 하얗게 선을 그리는 모습을 보다가 서서히 어두워지는 창밖을 바라보고, 멍하니 일하고, 주변과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가라앉기만 하는 마음으로 쓸쓸히 집으로 돌아오고, 일하고, 멀리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예전처럼 일을 나가고, 어둠 속에 오래 앉아 바람에 커튼이 흔들리는 걸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일하고, 생각한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지쳐 일하고, 나의 삶이 영원히 창밖에 서성대며 서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고, 일하고, 어느 날 몸이 아프고, 그래도 지겹게도 떨쳐 버리질 못하는 희망을 위해 일했었다.       


이야기가 좀 딴 데로 흐르는 것 같지만, 그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할 필요가 있다. 그의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퇴근 후 회사 근처의 카페였다. 따뜻한 조명아래 잔잔한 소음이 흐르고 있었고, 꼬숩한 빵내음과 달콤한 초콜릿 향기와 갓 볶은 원두향이 어렴풋이 배어 있었다. 당시에 그는 판교의 it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했었다. 나이는 서른 중반이었다. 업무는 애플리케이션의 버그 수정이나 업그레이드를 제공하는 일이다. 고객들의 피드백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하고,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고, 의사 진행과정이 빨라야 하는 일이다. 회의는 대면 방식보다는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되고, 회의에서는 문제해결을 위한 설계와 솔루션을 논의하거나 현재 진행 중인 업무 프로세스를 평가하거나 브레인스토밍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주로 접하는 사람들은 동료직원 외에 다른 프로그램 개발자나 베타테스터이다. 소통은 주로 메신저로 한다. 섬세함과 끈기, 꼼꼼함과 강박관념이 필요한 일이다. 일하면서 겪는 스트레스는, 새로운 기능을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예상보다 많은 문제가 발생할 때이다. 해결방법은 늘 있지만, 촉박한 프로그램 마감 기한을 지킬 것이냐 늦어지더라도 기능 면에서 우수한 코드를 작성하는 것 사이에서 의견이 충돌할 때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인터넷이나 와이파이가 불안정할 때이다. 어느 날, 늘 들르던 카페에서 동료의 대학교 친구로 그녀를 처음 보게 되었다. 그녀는 중견회사의 회계팀에서 일하고 있었다. 서른이 넘은 나이였지만 동안이었다. 그녀는 은은한 조명 속에 잠겨있었다. 말쑥한 옷차림에, 완만하게 경사진 이마, 무언가를 기다리는 까막까막한 눈망울, 투명한 살결, 어깨까지 내려오는 구불구불한 머리카락. 그의 시선 안에 그녀가 행복하게 등장했다. 고개를 드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뭔가를 숨기는 듯 깊숙한 눈길을 거두었다. 둘은, 대화 내내 서로에게 시선을 거두었다가 다시 주었다 하는 망설임을 이어갔다. 은밀한 속셈이 있는 듯이. 순간 들끓는 충동이 일어났다. 일종의 채워지지 않은 허기 같았다. 


둘은 결혼의 관점에서 적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몇 명의 여자를 간헐적으로 만났다가 헤어졌다. 만남은 매번 같은 지점에서 삐그덕거렸고, 이별은 매번 서툴렀다. 그렇지만 언젠가 길모퉁이를 돌다가 어떤 사랑의 꿈이 그 앞에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여전히 있었다. 그녀도 남자라면 한동한 만날 만큼 만났다. 근래에는 오랫동안 만난 남자와 헤어졌다. 헤어지는 데만 몇 개월이 걸렸다. 울고 불고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한 것이 아니라 헤어질 결심을 실행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그는 첫 만남부터 그녀에게 강하게 끌렸다. 그에게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그녀는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남자들의 주목을 끌만했다. 아름다움을 갖추었다는 말이다. 그 아름다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루만지고, 입맞춤을 하고,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을 자연스레 불러일으킨다. 그냥, 도시 한복판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수컷들의 눈길을 끌고, 심장박동을 빠르게 하고,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볼멘소리를 나오게 한다. 그는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게 보았다. 그의 바람대로, 길모퉁이를 돌다가 어떤 사랑의 꿈이 그 앞에 펼쳐지는 거 같았다. 그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우연히 마주친 아름다운 여자가 미처 말을 걸기도 전에 떠날 수 있고, 몇 분 후 카페를 나서면 운명적인 그녀를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에게 비칠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불안한 탐색을 하면서 그녀에게 좀 더 다가갈 기회를 엿보았다. 그녀는 수수께끼같이 유혹적인 존재였다. 그녀를 관찰하면 할수록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당시만 하더라도 호기심과 긴장의 순간은 짧고 나머지 시간은 권태로울 뿐이란 걸 몰랐다. 여하튼, 그녀라는 퍼즐을 맞추다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남자들이란 게 어떤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면 그녀와의 인연을 위해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내고, 별의별 짓을 다하기 마련이다. 그녀도 그런 그가 싫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지나간 사랑에 지쳐있었고, 지금은 안정적인 삶을 시작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사랑이 어찌 보면 삼류소설처럼 보일지라도, 그에게 그녀는 삶의 악보를 내림표에서 올림표로, 다시 올림의 도돌이표로 만든 여인이었다. 그녀와의 체험은 풍부한 화음으로 공명을 일으켰다. 그 공명은 한쪽이 한쪽을 완전히 지지해 주는 화성법이 아니라 독립된 생명을 가진 선율이 동시에 울리는 대위법의 형태이다. 어찌 보면, 재즈의 즉흥연주를 하는 듯했다. 정해진 악보도 없이 서로의 호흡이 악보가 되며 앙상블을 이루었다. 마음의 봄이었다. 그의 모든 감각은 그녀를 향해 튀어 오르고, 가슴과 눈에 그녀를 달고 살았다. 그녀로 인해 인생의 배경이 갑작스레 바뀌었다. 이전에 없던 우연들이 겹쳐 만들어 낸 상황인 것이었고, 몇 번의 이별도 그녀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했다. 같은 재료와 같은 문제로 이루어졌던 그의 삶이 그녀라는 새로운 변수를 만나 변주되었다.      


그녀를 바래다주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어떤 음악을 들었다. 마지막 4악장(Allegretto poco mosso-약간 빠르지만 조금씩 활발하게)이 연주되고 있었다. 차 안으로 바람은 건 듯 불어 들었다. 묘한 흥분이 일어났다. 그녀로 인해 그의 내면에 새로운 하나의 자아가 생겨났다. 그는 결혼에 대해 고민했고, 얼마 후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그날 저녁 무렵 청혼을 했다. 그녀는 그의 말을 들으며 무의식적으로 흘러내렸을 상상의 머리를 쓸어 올리거나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 넘기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승낙을 기다렸다.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언제 칠지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그녀의 승낙은 결혼으로 연결되고 이듬해 아들도 태어났다. 아들이 태어나고 몇 달 동안 둘은 매일 녹초가 되었지만 더없이 행복했다. 아기용품들을 마구 사들이고, 신나게 놀아주고, 젖은 기저귀를 둥글게 말아서 용기에 집어넣고, 목욕을 시키고, 먹을 것을 먹이고, 잠자리를 마련하고, 아이가 잠든 후, 둘은 곧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몇 달 동안, 아니 몇 년 동안을 매 순간 아이에게 눈을 떼지 않고 살아야 했다. 화장실을 가거나 문밖으로 택배를 가지러 가는 몇 분 동안에도 조바심을 내며 돌아왔다. 아이는 마치 그때다 싶어 넘어지거나 낯선 것을 입에 대거나 구석진 곳에 머리가 끼이곤 했다. 이런 일들도 익숙하게 되었다. 간간이 서로가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마주 보고 있을 때, 그들은 서로가 하루 중 일어났던 사소한 일들을 선물인양 풀어놓았다. "이거 정말 신기하지 않아, 그렇지 않아?" "그렇지, 신기해." 누군가 말하면 상대는 동의했다. 그때는 기쁨과 경이로움이 그들 사이를 파도처럼 오갔다. 집안이 보통 시끄러운 정도가 아닌 아이의 울음소리로 잠을 설쳐도 뭐에 홀린 것 같이 행복했다. 그녀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녀는 그가 집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그날의 사소한 일들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음, 어쩌면 우린 너무 행복한 걸지도 몰라." "그렇지." 그는 맞장구쳤다. "그런 거 같아."          


둘이 만난 지 십오 년 남짓 지났다. 차츰 둘만의 시간은 줄어들고, 모든 결정은 아이의 기호에 맞춰 이루어졌다. 늘씬하다기보단 마른 편이었던 그녀는, 피둥피둥 살이 찌고, 종아리에는 파란 잎맥 같은 핏줄기가 퍼졌다. 이제 미니스커트에는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치렁한 머리카락은 한 줌씩 빠지고, 풀 죽은 뿌리 부분은 족히 2센티미터 정도는 하얗게 세었다. 마흔 중반이 너머 젊음에서 멀어졌다. 지금이라도 세련된 헤어스타일에, 기미나 잡티는 적당히 가리고, 입술은 적당히 붉게 하고 아이섀도까지 솜씨 좋게 바르고, 매력을 한껏 끌어올려주는 옷을 입고, 생긋 미소를 짓는다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남자들이 자신을 매력적으로 봐주기를 바랐던 욕망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한때, 그녀는 삶에 대한 큰 믿음이 있었다. 벤야민의 말이 떠오른다. '부르주아적 삶이란 사사로운 일들의 체계이다'라는 말처럼, 그녀는 카페에서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안정성이라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옷가게에서 그녀 취향의 옷을 고르고,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문학수업을 듣고, 네일숍에서 다이어트에 관해 수다를 떨고, 미용실에 가서 유행하는 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와 느지막이 커피를 마시며 미래를 이야기하고, 재즈를 들으며 깨알처럼 파편화된 삶을 어떻게 채워갈지를 고민했었다.


물론, 그녀만이 변한 건 아니다. 그의 머리도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있고, 피부는 더 이상 탄력적이지 않고, 벨트 구멍은 두세 개가 내려앉아 있다. 나이가 쉰 살이 되니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앳돼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그에게, 그 나이는 유아기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십 년은 젊게 보인다며 괜찮다고 말하던 사람들도, 동사무소에서 서류를 뗄 때 젊어 보인다고 놀라던 이들도, 지금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추레하게 늙어버렸고, 매일 눈으로 그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뭐, 그런저런 이유로, 그가 그녀의 삶에서 차지하는 부피는 예전만큼 크지 않다. 그녀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한 때는 상대에 홀린 듯 빠졌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이 움직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 상대에게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다가 마지못해 초점을 잃은 눈으로 상대의 말을 너그럽게 들어주다가 차츰 침묵이 설명보다 나음을 깨달았다. 사실 그렇게 바뀐 게 당혹스러운 일이지만 무슨 말을 하든 원래의 상태로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입은 마치 치과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마비된 것 같았다. 아주 간혹 하는 대화는 과거완료형으로 시작하여 현재완료형으로 끝나고 말았다. 과거 몇 년 동안 우린 많이 행복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이렇게 된 거야,라는 식이다. 더 지난 과거의 이야기를 끄집어낸 후, 과거의 이야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 방식이다. 서로에게 자신들의 자리가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그녀의 버성긴 침묵 속에 의심스러운 모호함이 감지되었다. 물론 불안한 직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알 수 없는 표정과 진심을 가늠할 수 없는 야릇한 눈빛이 두 눈에 배어 있을 때는 당혹스러웠다. 그 순간은, 가슴에 싹트는 알 수 없는 감정을 어슴푸레 느껴서 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 눈길을 마주쳤을 때 그의 시선을 느꼈던지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 눈길은 설명하기 힘든 불안한 구석이 있었다. 어찌 차가운 그녀 눈 뒤에 감춰진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겨울밤 철문의 냉기가 그녀에게 느껴졌다.    


 "뭘 보고 있어?" 그녀 곁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휴대폰만 뚫어져라 보는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시선을 화면에 고정한 채 알아들을 수 없게 뭐라 중얼거린다. 근래에 아이는 점점 그녀를 닮아갔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그와 말하기를 싫어한다. 아침식탁에서도, 저녁 식탁에서도 마찬가지다. "완전히 정상적이야, 그냥, 지금은 그런 시기야." 그녀는 아이가 말이 없는 것에 대해 별일 아니라고 말한다."언젠가 지나갈 거야, 발달 단계니까 신경 쓰지 마."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라고 나지막이 꾸짖듯 말한다. 그도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 아이는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서로 다른 양육스타일로, 한쪽은 사소한 것까지 관리해야 한다고 한쪽은 독립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하면서, 부모의 역할에 대해 지겨운 싸움을 했더랬다. "요즘, 어때?" "뭐가? 난 괜찮아."대답하는 아이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그 말과 표정이 무서웠다. 아이가 태어나고 '저 아이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녀에 대한 사랑도 아이를 낳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여하튼, 자식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가슴을 무너지게 만드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에, 뭐랄까, 일단 삶을 선택하고 나면 그것을 붙들고 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아이가 유아용 침대에서 하루종일 구르고 자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아이에게 소리 없이 다가가면 어느새 그 아이도 소리 없이 눈을 떴다. 그 빛나던 까만 눈동자를 기억한다. 아이는 버둥대며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고 까르륵거렸다. 그랬던 아이에게 손을 내밀면 손아귀에서 교묘하게 빠져나가거나 손을 밀쳐냈다. 둘만 있을 때, 아이는 자기 방에 처박혀 나오지 않거나 간혹 동선이 겹칠 때는 어쩔 줄 몰랐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 상황이 멋쩍어 말을 끄집어내면 그 앤 대뜸 화부터 내거나 눈을 내리깐다. 다행인 건 아이와 엄마, 둘의 유대는 특별한 유대를 쌓아가고 있었다. 그를 바라볼 때 눈썹을 올리고 칩떠본 반면, 그녀를 바라볼 때는 다물고 있던 입술을 최대한 끌어올려 귀에 걸릴 정도로 미소 짓는다. 그럴 때면 함께 앉던 자리의 엉덩이가 화끈거려 그는 방으로 들어간다. 밖에서 둘이 계속 웃는 소리를 엿듣는다. 마치, 목소리를 죽여 속삭대던 어른들의 대화에서 쫓겨나 자신의 방으로 되돌려 보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이에게 문자를 보내도 웬만해선 확인을 하지 않는다. 전송과 동시에 떠있는, '지워지지 않은 1'자를 보게 되면 어지간히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자신의 마음이 상대방의 문 앞에 가로막혀 그가 문을 열어주기를 바라고 서성대는 느낌이다. 그것도 아주 초조하게. 문 앞에 굳은 표정으로 완강히 서있는 '1'이라는 수문장은 요동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1'이라는 숫자가 사라지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아이의 배려에 감사했다. 어쨌든, 읽고 답장이 없든, 아예 읽지도 않든, 모두 미묘한 기싸움이고, 고도의 심리전이고, 권력관계까지 내포되어 있다. 여기서 끝은 아니다. 또다시 갈림길에 선다. 다시 보내는 것에 대해서다. 다시 보내기에는 자존심이 상하고, 다시 무반응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 마치 '판옵티콘의 감옥' 안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보이기만 한 처지에 놓인 거 같아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문자를 보내고 나서는 발신자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다음 몫은 수신자에게 있고, 그의 처분만을 기대해야 한다. 부당하다. 부당함은 내가 부여한 의미 외에 다른 의미가 더해져 전혀 생각지 못한 결과를 야기하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어떤 것의 이면을 보아 달라는 것도 아닌데도 문자를 보냈다는 원인제공으로 사후처리까지 책임져야 한다. 마치 공을 던지고 나서 순간순간 공이 어디쯤을 날고 있는지 매번 예측을 해야 하고, 어느 곳에 떨어졌는지 신경을 곤두서야 하고, 떨어진 결과도 보낸 사람의 몫이다. 다른 사람의 의도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를 쓰는 게 싫지만 발신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는 최대한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중립적으로 응수하려 했지만 그게 안되었다. 그럼에도 과거의 모습과 겹쳐진 아이가 생각이 들 때면 품에 안고 싶지만 감정을 꾹 억눌렀다.


이제 와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그녀와 결혼하기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불가능하다. 설령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실수를 범했을 것이다. 그녀에 대한 정보가 '아주 많이' 충분하였더라도 그는 무모하게 결혼을 했을 것이다. 그때, 그는 충분히 이성적이지도 않았고, 한 번의 순간적인 쾌락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 가지 방법이 남아있다. 그동안 말하지 않고 지나쳤던 모든 문제들을 끄집어내어 논해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해결방법을 찾는다면, 잘못 뿌린 시럽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들의 사랑은 다시 ‘예전처럼’ 온기가 돌 것이다. 예전처럼, 건너편에서 가벼운 미소를 건네고, 걷다가 손끝을 살짝 건드리는 그런 순간이 다시 오리라.


그런 순간이 기적처럼 다시 온다면 사랑은 지속될 수 있을까, 안될 거다. '사랑해'라는 말의 강도는 딱 한번 발현되고, 결혼 생활에서 사랑은 더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온다고 해도, ‘어떤 사람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뿐이다'라는 벤야민의 말처럼, '희망 없이' 사랑할 수는 없을 거다. 어떤 순간이라도 그들을 위해 세상의 시선과 체면을 외면하거나 자신의 존재까지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와 아내에게 들여야 했던 수많은 에너지와 헌신은 어찌 보면 미래를 위한 것이었고, 그들의 일부분을 언젠가 이용하려는 생각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실은, 그녀에 대한 사랑도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마치, 프루스트가 뱅퇴유의 소악절을 들으며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고, 그 분위기에 기쁨을 주는 그녀가 나타나고, 그녀를 향한 배타적 소유욕이 생기고, 엄청난 쾌락을 위해 자신을 무모하게 던진 거랑 같다. 그녀라는 대상은, 실은, 다른 그녀라는 대상이라도 상관없었다.


"지금 뭐 하세요?"라고 '지금 뭐 하세요, 관리자'가 다가와 소리친다. 그는 예의 그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네, 알겠습니다, 관리자님!"이라고 말하고 서둘러 카트를 옮긴다. 그의 주변에서 질질 끌리듯 천천히 흘러가던 시간은 5시를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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