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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Oct 13. 2024

12 : 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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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떤 사원을 알고 있다. 그 사원은 '이래서, 우리나라는 문제야'라는 말을 달고 산다. 정부에 대한 얘기를 하든, 정치에 대한 얘기를 하든, 회사에 대한 얘기를 하든, 어김없이 '이래서, 우리나라는 문제야'라고 말한다. 그의 말본새는 거칠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점심시간에는 끊이지 않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귀를 붙들어 놓고, 대화의 흥을 돋우는 사람이다. 간혹 마뜩잖은 이야기에 투덜대지만 멈출 때를 아는 사람이다. 나이는 마흔은 넘어 보인다.      


"니들, 그거 아나?"      

그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뒤, 말을 덧붙인다.      

"회사에서 일용직이나 계약직 직원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관리해 왔다는 거. 이래서, 우리나라는 문제야, 형이 그럴 거라 말했지. 어째서 일 못하는 일용직 직원은 하루 이틀 나오다가 사라지고, 일머리가 있는 직원은 거의 매일 나오는 게, 이상하다고 말했지?"      

"회사입장에서 일 잘하는 직원을 골라 뽑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옆에 앉아있던 직원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형은, 블랙리스트가 근로기준법 위반이니, 개인정보법 위반이니, 근로자의 신성한 노동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라는니, 다른 형태의 부당해고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냐. 대한민국에 살면서 한 번도 부당하다고 느끼지 않은 사람 있나, 한 번도 억울함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냐고, 왜 처맞고 계속 당하는지 아나, 그렇게 밟아도, 니들이 아무 짓도 못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계속 밟는 거다. 형이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아나?”

그가 뜬금없이 되묻는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 우리는 이런 말을 특히 경계해야 돼. 악법은 법이 아냐! 악법은 무효인 거야! 부당한 처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지껄이지 말고, 부당하다고 말하는 거야. 악법은 무효라고 부르짖어야 해! 법은 그냥 기술이야. 법에는 상식과 정의는 없어. 다만 돈의 힘으로 움직여. 같은 죄를 지어도 누가 변호하느냐에 따라 사법적 판단이 달라져. 그러니까 살면서 제일 아끼지 말아야 될 비용이 변호사 비용이다. 힘없는 국민들에게는 법은 신성하니까 지켜야만 한다고 억누르면서 힘 있는 국회의원 놈들은 시도 때도 없이 뜯어고쳐서 누더기로 만들잖아. 어떤 제도를 만들어도 기술자들에게는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우리가 이번일을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회사는 조만간 똑같은 일을 저지를게 뻔해. 더 조심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교묘하게 할 방법을 찾을 거다.”     

“그래도 조금씩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회사가 계속 성장하고, 나스닥에도 상장한 글로벌 기업인데, 언젠가는..”     

다른 직원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글쎄, 네 말은, 회사 믿고 기다리면, 조금씩 변하다 보면, 언젠간 변할 거라는, 뭐, 이런 뉘앙스 맞지? 그렇지?”

그는 슬쩍 떠 보며 말을 이어간다.    

"진보란 말이지, 당장의 한 걸음을 걷는 거다. 한 걸음을 걷지 않으면 두 번째 걸음도 세 번째 걸음도 걸을 수 없다. 빵이 커지면 나누어 주겠다느니,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다 개소리다. 학교에서 그런 걸 배운 적이 있다. 거지들이 구걸을 할 때 동정을 하면 계속 거지가 된다는, 생선을 주기보다는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거지들에게 지금 주지 않으면 그 거지는 사라질 거다.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한 거다. 그들이 우리를 소모품으로 아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잖아. 10개를 하면 12개를 하라고 하고, 12개를 하면 20개를 하라는 곳이다. 서서히 몸을 망가지게 하고, 망가지면 다른 몸으로 대체하면 된다, 더 씽씽한 몸으로. 플랫폼을 이용해 채용절차를 단순화해 사람들을 일단 끌어모아 '인력 풀'을 확보한 후 입맛에 맞는 직원을 일하게 하고, 아니다 싶으면 가차 없이 버리는 거지. 인원은 얼마든지 대체가능하니 거리낌도 없어." 

그의 말에 몇몇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집중한다. 

"솔직히, 우리들도 이런 내막이 있을 거라 은연중에 알고 있으니까, 쉬는 시간 없이 일만 하고, 화장실에 갈 때는 보고하는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노동 강도나 작업장 환경에 대한 정당한 권리도 요구하지 못하는, 비겁한 자기 검열을 하고 있잖아. 너희들은 회사에서 직원들을 '사원님'으로 통일하고, 나이나 학력을 아예 보지도 않는 걸 신선하다고 보잖아, 긍정적으로 보면, 호칭을 통일하는 건 수평적인 의사소통으로 일 중심으로 사고하고, 나이나 학력에 제한을 없애는 건 입사기회를 넓혀 파벌이 아닌 능력으로 가겠다는 거겠지. 그들이 성공했다는 것은 좋은 인사제도와 조직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반증일 거야. 근데 달리 보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사원으로 통일하는 건 익명성에 가두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없애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 그래야지 일의 진행이 빠르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이름대신 수형번호로 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형은, 생각한다. 내 말, 틀린데 있나?"      

그의 말에는 사람을 끓어오르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는 다시 말을 이어간다.      

"너희들도 뉴스를 통해 들었잖아. 회사는 택배근로자가 과로사로 사망했을 때, '고인은 팡팡 근로자가 아닌 전문배송업체 소속 개인사업자이다'라는 자료부터 냈다. 함께한 노동자의 죽음에 안타까워하거나 사과하기보다 소속 노동자가 아니라며 밀어내는 게 먼저였다. 사회적인 책무를 법적으로만 접근해 면책받고 빠져나가려고 했어. 이번에도 '직원에 대한 인사평가는 회사 고유 권한이자 안전한 사업장 운영을 위한 당연한 책무이며, 회사의 인사평가 자료는 언론에서 제시한 출처 불명의 문서와 일치하지 않는다'라는 보도자료를 먼저 내보냈다. 뭐, 느끼는 거 없나?"      

그는 답답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뜬금없이 묻다가 다시 말을 이어간다.     

"'팡팡이 없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그들이 제시하는 비전은 모든 구성원들의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비전이 아니야. 비전의 충분조건은 듣는 사람의 가슴을 기대감으로 설레게 하는 거다.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하는 조바심으로 가슴이 들떠야, 힘들어도 참고 일할 수 있는 거다. 이 미션에 가슴이 울렁거리는 인간들은, 무한경쟁의 정글에서 새로운 판을 짜겠다고 해외각지에 흩어져 화상회의하고  재택근무하는 임직원에게나 해당하지, 우리 같은 계약직이나 일용직에게는 해당사항 없다. '팡팡 배송'도 누군가의 아침과 밤을 빼앗고 만들어 낸 환상이다. 상품 하나를 고객의 가정까지 배송하기까지 수많은 직원들의 손길이 필요한데, 그들에게는 오로지 고객의 만족만이 있지, 직원은 안중에도 없다. 사람만 뽑으면 다냐! 여기가 뭐 인력회사냐! 인력회사도 이렇게는 안 한다.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마라, 이래서 우리나라는 문제라고 얘기했다."      

그의 얼굴은 붉어져 있다. 그는 일장연설에 숨이 가쁜 듯 한숨을 크게 쉬고, 단호하게 말한다.     

"근데 어쩌다 형님같이 똑소리 나는 사람이 주식으로 망해요? 형님은, 돈 생기면 다시 주식할 생각이 있어요, "

그와 저렇게 친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서슴없이 말하는 사원이 화제를 돌리면서 말한다. 서로의 시선이 왔다 갔다 한다. 마치 내릴 역을 놓친 걸 알고, '어?' 하는 얼굴들이다. 그는 피식 웃으며 계속 말을 이어간다.     

"뭐, 실패의 원인은 주식을 책으로 배운 데에 있지."      

그는 꾸부정하게 거북목을 한 체 엄지와 검지로 입꼬리를 실그러뜨리며 말을 이어간다.      

"책은 올바른 방법만 가르치지 불법은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야. 형은 주식시장의 격언을 믿지 않아. 가치투자도 믿지 않고 회사의 발표는 더더욱 믿지 않는다. 대한민국 대부분은 작전주라고 생각한다.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주식투자로 망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한때는, 형도, 시간을 내서 증권분석을 했어. 세계경제의 흐름과 정부의 정책기조와 기업의 내재가치를 분석하면 안정적인 초과수익이 보장된다고 생각했었지. 그렇지만 주식시장은,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불법이 판을 치다는 것을, 아무리 해도 되는 놈만 되는 세상이라는 것을, 돈을 잃고 나서 알았다."      

"자본주의의 꽃이 주식이라고 하던데 형의 말을 들으면 불법이 판을 치고 있는 거처럼 들리네요."      

그는 무슨 말인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간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합법적 도박판이다. 아파트 사서 오르면 승리자이고 내리면 실패자인 거다. 투자는 투기에 불과해. 아파트 투자와 주식투자와 경마가 무슨 차이가 있겠냐, 굳이 있다면, 도표라는 이상한 부적을 사용하여 전문적으로 보이게는 하지. 주식시장에서 전설과도 같은 분들이 있었어. 한 분은 가치투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유명세를 탔던 전설과도 같은 증권사 대표이고, 또 한분은 서학개미를 이끌었던 자산운용사 대표였어. 그들은 위탁매매만을 해야 한다는 법을 어기고 차명으로 거래를 하거나 자기 매매를 했지. 파렴치한 사기꾼들이야. 이들뿐이겠냐, '제가 대통령 출마하겠습니다!' 이 한마디로, 주가가 몇 배 오르자 자기 지분의 상당수를 팔아치운 정치인도 있다. 기업들은 상장해서 돈 당기고, 분식회계 저지르고, 매출 조작으로 기업의 평가를 올리거나 허위 또는 과장 공시를 일삼는다. 이런 정보도 회사 내부자나 믿을 만한 타인에게 정보를 흘린다. 게다가, 주가가 상승하면 대주주는 지분을 팔아치우고 전환사채을 발행 하여 돈을 끌어모으고, 다시 뉴스를 띄워 주가를 끌어올리고 팔아치운다. 기업이 사업을 통해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돈을 복사하는 거다. 대형 금융사고가 주기적으로 터지는 거 보면 알 거 같은데. 주식시장은 미사일과 핵폭탄이 오고 가는 전쟁터인데 개미들은 총칼 들고 싸우는 꼴이야. 그렇게 당하고도 어떤 주식이 이틀만 상한가 치면 개미들은 동참할지 말지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이런 개미나 남의 말 듣고 하는 개미들이 있는 이상 우리나라 주식시장 끄떡없다. 그리고 '모든 투자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이 한마디가, 증권시장에서 모든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준다. 다 지 팔자라는 말이다. 작전하는 놈들이 손꾸락으로 키보드 누를 때 어딘가에서는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겨. 그 사람들 눈 쳐다보고도 그렇게 할 수 있는 놈들이다. 죽어가는 그들에게 감정이입 하는 거보다는 자신의 행복이 중요한 놈들이니. 하물며 동물들도 꼬리 바짝 내리고, 배 보이면 멈추는 법인데, 이 인간들은 끝을 봐야 한다.”     

잠시 머뭇거리다 무슨 말이 생각나는 듯 말을 한다.      

“아참, 돈 있으면 다시 주식투자 할 거냐고 물어봤지? 잘 모르지만 종잣돈 있으면 다시 그 판에 끼어들 수도 있다. 그렇게 돈 때문에 고생했는데도 말이야."      


떨어져서 그의 말을 듣고 있는 k의 머릿속에 비자발적 기억이 스치고, 끊어져 있던 감정이 격발 된다.     


[서울/데일리 비즈니스] 문선영 기자 입력 2020 09. 21 17:09

20일 바이오기업 '내말만믿어' 는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와 항암제 후보물질 'BDL9638'에 대한 임상실험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BDL9638은 종양을 유발하고 성장하는 데 관여하는 효소를 억제한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정부의 코스닥 활성화 정책의 일환인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에 입성하여 시총 3위까지 오른 바이오기업 '내말만믿어'는 항암치료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하고, 아울러 주주들의 권익과 이익보장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서울/ 위클리 비즈니스] 김운상 기자 입력 2022 08.15 14: 45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바이오기업 '내말만믿어' 의 '언젠간될거야' 대표의 자본시장법상 미공개 정보이용 등 혐의에 대한 판결에서 대법원 1부는 '내말만믿어'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금까지의 사정은 이러했다. 나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야, 그가 한동안 들었던 말이다. 이젠 그런 말을 건네줄 사람도 없다. 이유는 '히키코모리'이기 때문이다. 대략 인구대비 1% 정도라고 하니 한 번은 1% 안에 속한 셈이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어린 시절 숨바꼭질을 할 때 한 번쯤은 갇혀봤을 좁은 벽장 같은 방이 그의 세상이었다. 그의 피난처이자 감옥이다. 그를 가둔 것이 그였으니 그는 죄수이자 간수이다. 짤랑거리는 열쇠를 가진 죄수. 방에 있는 그의 모습은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벌레라도 된 듯하다. 뒤집힌 몸을 일으키려 허공을 향해 많은 가는 다리를 허우적거리는 벌레, 인간이라는 존재를 상실하고 벌레가 되었으나 완전히 변신이 되지 않아 인간 세계에 여전히 매어있는 벌레 말이다. 뭐, 현실의 길거리에 버려진 것보다는 혼자 무방비로 놓여있는 게 낫지만 참으로 작아진 느낌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앞서 잠깐 이야기했듯이, 돈 문제이다. 돈은 파괴적인 방식으로 모든 이해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50대 초반에 그는 손대는 몇 가지 일에서 실패를 경험했다. 살면서 경제적으로 처음 삐걱댔다. 상황이 나빠졌지만 곧 다시 회복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동안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했던 투자는 아예 그를 멈춰 서게 했다. 물론 어떤 일이 결정타가 되기까지는 이미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결과, 전에는 풍족한 편이었지만 이젠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돈은 인생의 모든 측면을 관통해 들어갔다. 허리띠를 졸라맨다고 해결할 수준이 아니었다. 궁핍은 그의 영혼을 더럽히고, 그녀와 아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다시 일을 시작했고, 그는 실직상태로 집에 머물렀다. 재기를 시도했지만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는’ 그는 완전히 길을 잃었다. 남의 시선이 중요한 그에게 인관관계는 자연스레 끊겠다. 마치 등교거리가 먼 그가 버스를 타고 집에 중간쯤 오면 친구들이 하나, 둘 내려버리고 그만 남는 것과 비슷했다.      


차츰 그의 얼굴에는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내내 떠나지 않는 불편한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병에 걸린 환자의 얼굴을 의사가 살피면 짐작이 가듯이, 그런 게 보인다. 그런 모습 보이기 싫고, 괜찮지 않으면서 억지 괜찮다고 얼버무리기도 싫고, 자꾸 떠오르는 유쾌하지 않은 생각을 떨구려, 불안한 걸음으로 공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반쯤 그늘진 벤치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어쩐지, 과거의 모든 시간을 잃어버린 듯하고 애써 살아온 삶에 의미가 없는 듯해서, 멍하니 앉아 있곤 했었다. 생각해 보면, 그는 수많은 카이사르를 꿈꿨었다. 카이사르가 된 다한 들 브루투스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카이사르에 대한 꿈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어릴 때 그런 적이 있다. 고개를 한껏 쳐들어야 보이는 찬장의 사탕단지를 향해 의자를 가져다 그 위에서 발을 구르고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던 일. 엉켜버린 인생은 그가 탐해서는 안 되는 걸 탐해서 그런 건 아니다. 매 순간 뭔가와 맞서 싸우는 과정 중에, 단지 운이 안 좋아 불행이 닥친 거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그의 그림자는 근처 연못가에 가 닿고, 산만한 기억들은 때로 피어나는 철쭉처럼 서로 엉겨 붙어 치고받으며 싸우고, 그는 다시 의지와 무관하게 빠져든 잘못된 세상에서 결국 빠져나오지 못할 거라 생각도 했다. '파스칼 키냐르'가 말한 게 기억난다. '음악은 이렇게 속삭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기억하나요, 어느 날, 옛날에, 당신은 사랑하던 것을 잃었잖아요." '그와 닮아있는 말이다. 사랑했던 가족과 어쩌면 그의 연인이었을, 어쩌면 그의 친구였을 그리운 사람들, 꿈속에서 그들과 얼마나 많은 것을 공유하고 놀라운 대화를 나누었던지. 그러다 꿈이라는 것을 꿈속에서 자각하는, 그리고 꿈과 현실의 위계가 무너지며 스산하게 깨어나서는, 눈을 깜빡일 때마다 셔터를 누르듯 점멸하는 광점들이, 그 앞으로 다가와서는 그를 지나치는 그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순간을 망막에 새겼다.      


그런 그가 언제부턴가, 새벽같이 나갔다가 해가 기울 무렵 돌아왔다. 들어오는 모습은 축 처져 있고, 시큼한 땀냄새와 기름냄새, 파스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잘 때는 거칠게 숨을 쉬지를 않나, 끙끙 앓지를 않나, 어쨌든, 그의 깡다구를 보았다. 그에게는 외딴섬 같은 곳에서, 반쯤은 사교적이고 반쯤은 공격적인 낯선 사람에 대한 불안감, 노동만을 팔려고 했지만 생경한 환경 속에서 감정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잘 견디어 가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힘들지만 간단해서 좋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 인간의 어떤 일들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약관은 어떻다, 세금은 어떻다, 수수료는 어떻다, 세부사항은 또 어떻다, 하며 사람들 정신을 홀딱 빼놓기 일쑤인 일들이 있다. 지나고 나면 이용당한 거 같아 불쾌해지는 일들 말이다.     


그가 그런 결정을 한 이유는,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지, 그렇지 않으면 인생을 제대로 망칠 거야'라고 생각을 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언젠가, 어마어마한 뚱보가 나오는 어떤 영화를 보아서도 아니다. 그 영화는, 젊은 시절 대단한 미인이었지만 남편이 자살을 하자 7년 동안 챙겨주는 밥만 먹고 티브이를 보며 꼼짝 않은 여자가 나온다. 그런 그녀가 집을 나서는 이유는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다. 그 영화처럼 그도 가족을 위해서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희생이라는 단어는 꼬리꼬리하게 들렸고, 누군가를 위한다는 말은 자기기만처럼 느껴졌다. 오로지 실질적인 존재는 자기 자신밖에 없는 거라 생각했다. 자기 자신을 위해 되지도 않는 일로 애면글면 애쓰지 말고 포기할 건 포기하기로 다짐했고 수많은 생각들로부터 탈출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움직여야 했다. 움직이면서 복잡한 질문은 밀봉되었고, 잠시 생각과 감정을 휴면상태로 놓는 게 가능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내부로 향하는 무수한 '할 수 없음'의 회전문에서 빠져나올 수 없고, 화석이 되었을 거다. 몸과 다리와 날개와 심장이 바늘로 고정된 나비박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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