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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Oct 13. 2024

08 : 00 AM

코뚜레

"국민체조 시작,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둘둘 셋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스피커에서 익숙한 국민체조가 흘러나온다. 멜로디만 나오면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싱그러운 아침공기 대신에 에어컨의 썰렁한 공기, 소란스럽게 하늘을 나는 새소리 대신 기계들의 '우우윙'하는 소리, 온갖 회색의 기계가 들어찬 거대한 창고에서 목 한번 돌리고 팔과 다리를 움직인다. 동작은 하는 둥 마는 둥 한다. 똑같은 방한복과 방한모에 안전화를 신고 사람들 곁에 서면 마치 자신이 사라져 버린 듯하다. 모두 그들이 된다.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컴퓨터에는 하나의 숫자로 등장한다. 그 숫자들은 아침의 고단함을 견디고, 셔틀버스를 타고 이곳에 도착했다. 직장 내 와이파이존에서 스마트폰으로 출근에 동의를 하고, 보푸라기가 나달나달 붙어있는 방한복에 몸을 밀어 넣고 옷을 끌어올리고, 안전화에 발을 밀어 넣었다. 그의 몸은 마시멜로처럼 부풀어 힘 꼴이나 씀직하게 되었다. 완전무장 상태에서 작업장 문을 열자 얼어붙은 공기가 콧속으로 밀려 들어오고, 어릴 때 라디오의 둥근 손잡이로 각 방송국 눈금 사이를 움직일 때 나는 잡음이 쏟아진다. 국민체조가 기쁜 날이 있긴 했다. 하늘에는 만국기가 실에 얽혀 흔들리고 운동장에는 하얀색 굵은 선들이 그어진 운동회 날이다. 아이들은 흰색 상의와 파란색 하의의 체육복을 입고, 호루라기를 부는 선생님을 따라 국민체조를 한다. 가을 운동회는 시작되고, 아이들의 마음은 만국기와 함께 하늘을 날았다.     


사원님들, 오늘 물량이 많습니다, 지금 즉시 작업대로 가셔서 일을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지금 뭐 하세요, 관리자'가 마이크로 말한다. 물량이 적은 날은 없다. 비와 눈이 많이 내리거나 몹시 덥거나 추운 날 그리고 매월 1일과 연휴 전날은 물량이 특히 많다. 오전조에는 '지금 뭐 하세요, 관리자'를 포함하여 '조금만 서둘러 주세요, 관리자', '조금 있으면 웃음기가 사라 질 겁니다, 관리자', '목표량이 부족하여 마감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관리자'등 예닐곱 명의 관리자가 있다. 인원대비 목표량이 있고, 매시간마다 목표량이 있고, 항상 그 수치를 넘어가야 한다. 게다가 오전 11시부터 점심시간 전에는 마감시간이 있다. 이 시간을 놓치면 당일 배송이 실패한다. 관리자의 목표는 고객만족이나 새로운 성장을 위한 혁신이 아니다. 전임자보다 나아진 경영수치이다. 얼마나 빠르게 많은 일을 처리하느냐이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소셜커머스, 이커머스, 물류비즈니스를 동시에 한다.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성장하는 조직이다. 전자상거래를 통한 물건을 택배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배송하고, 음식주문 플랫폼과 OTT서비스까지 한다. 알다시피, 디지털 플랫폼은 오프라인과 달리 시공간을 초월한다. 어느 곳에서나 동시에 같은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다시 보기도 가능하다. 온라인 공간은 무한하지만 무한한 공간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노출되는 것은 아니다. 한두 페이지의 검색페이지에 모든 것이 결정 난다. 회사는 첫 페이지 가장 좋은 자리에 자사 상품을 배치하고, 판매자에게 납품가격을 후려치고 광고비와 성장한 만큼 돈을 지불하는 판매장려금을 의무로 계약을 하는데도 판매자들은 이곳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억압이 있는 곳에 탈출은커녕, 굳이 비용을 내면서까지 있겠다고 한다. 심적으로 싫어하지만 대체할 다른 채널이 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서비스를 창조하겠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고객들이 '팡팡이 없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를 실현하는 것이 그들의 미션이다. 고객이 스마트폰으로 슥슥 스크롤을 내리며 필요한 물건을 클릭하는 순간부터 상품이 가정으로 배달되는 순간까지 고객을 감동시키겠다는 것이다.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라면 무엇이든 한다. 고객밖에 모르는 바보 같은 기업이라고 할까, 고객의 만족을 위해서는 공급사나 판매자, 직원들에게 친화적일 필요는 없다. 먹거리부터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상품을 잠자리에 들기 전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에 받고,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받는다. 한두 번만 이용하면 충성도 높은 고객으로 돌아선다. 필요한 물건을 찾는 시간, 구입하러 가는 시간과 노력, 더 좋은 물건을 더 싼 가격에 찾아주는 수고를 덜어주고, 반품도 쉽다.     


그와 같은 일용직 직원들은 앱을 깔고 근무신청을 한다. 나이도 학력도 경력도 면접도 필요 없다. 승인을 받으면 다음날 셔틀버스를 타고 QR코드를 찍고 출근한 후, 스마트폰 앱에서 출근을 누른다. 방한모, 방한복, 안전화와 장갑을 착용하고, 핸드폰 번호의 바코드를 출력한다. 바코드는 신분증이고, 식권이고, 위치추적 장치이고, 얼마나 일했는지, 화장실은 몇 번을 갔는지를 알려준다. 쉬는 시간은 따로 없고 화장실을 갈 때는 관리자에게 말해야 한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미젖을 뗄 무렵 이리저리 날뛰는 송아지를 길들이기 위해 콧구멍 사이에 구멍을 뚫고 나무고리를 끼운 것이 '코뚜레'이다. 이 허접한 코뚜레 하나로 수백kg의 소를 인간이 끌고 다닐 수 있는 것처럼, 수많은 직원을 바코드 하나로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한다. 일을 마치고 스마트폰의 퇴근을 누르면 작업 시간이 분단위로 나오고 잠시 후 '띠리링'하고 입금이 된다. 현장에선 직함위주의 호칭을 거부하고, 모든 사람의 호칭을 '사원'으로 통일한다. 익명성에 한 사람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균질적인 인간이 된다. 따지고 보면, 균질적인 인간도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 유형은, 다른 직장을 가기 위해 잠시 머물거나 집에 휑뎅그렁 머무르는 것보다 짧은 경험이라도 하러 나온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이런 경험이 나쁘지만은 않다. 그래도, 전에 하던 일이 꽤 괜찮은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삶의 치열함이 흐려질 때 다시 각오를 다지려 오기에 좋은 곳이다. 두 번째 유형은, 머릿속의 삶과 실제 삶은 다르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산다는 것과 실제로 살아내는 것의 차이, 사랑한다는 말과 실제로 사랑하는 차이, 용기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진짜 용기 있는 것과의 차이를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뒤돌아보지 않고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다. 입은 다물고. 


그가 일하는 작업장은, 물류센터로 들어온 상품을 정돈하여 진열하는 입고,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카트에 담는 집품, 집품한 상품을 올바르게 배송할 수 있도록 포장하는 출고, 포장된 상품을 분류해서 테트리스처럼 퍼즐을 맞추듯 물건을 쌓아 올리고 물류센터로 발송하는 허브가 있다. 무인 지게차가 쌓인 물건을 옮기면, 첨단 로봇이 선반을 지고 움직이고, 자동 포장기가 포장지에 상품을 넣으면 알아서 포장을 봉인하고 송장을 붙이는, 그런 곳은 아니다. 거의 모든 업무가 수기 작업으로 진행된다. 그냥 플랫폼 기업의 아날로그 방식이다.


그는 오전에 포장을 배정받았다. 카트에 가득 담겨있는 상품을 포장하는 일이다. 카트의 바코드를 스캔한 후, 상품을 스캔하면 모니터에 포장하는 방법이 나온다.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 사이즈에 맞는 박스를 찾아서 아래를 접고, 상품을 뽁뽁이나 에어셀 같은 충전재로 감싼 후 아이스팩이나 드라이아이스와 함께 은박지에 넣은 다음, 은박지를 박스에 넣는다. 셀로판테이프를 디스펜서에서 당겨 박스를 붙이고, 끝으로 운송장을 붙이고 바코드를 스캔한 후에 옆의 롤러 켄베이어에 상품을 태우는 일이다. 실시간 작업 속도와 마감시간까지 남은 물량과 목표치는 대형 전광판에 실시간으로 나타난다. 관리자는 개별적으로 작업자를 감시할 필요 없이 모니터만 보면 된다.


플랫폼 기업이나 디지털 공장이라 하면 기존의 공장보다 더 세련되고 산뜻한 분위기를 자아낼 거로 생각할 거다. 따로 정해진 출퇴근 시간은 없이 근무시간은 탄력적이고, 쉬는 공간이 곳곳에 있어서 직원들은 편안한 자세로 차와 음식을 나누며 대화를 나눈다. 대화는 아이디어로 이어진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만큼 직원들은 일에 동기부여가 생겨 오히려 실적은 증진하는 그런 곳 말이다. 물론 회사의 윗분들은 자율적이고 세련된 분위기에서 디지털화된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노동의 생산성과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자에게 할당할 작업량과 노동과정을 계획한다. 하지만, 노동자에겐 자율성은 없고 노동을 강제하는 목표치만 있을 뿐이다.


일이 시작되면 포장 직원들은 작업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한다. 작업대는 줄기에 가지가 연결되듯, 세로로 횡단하는 롤러 컨테이너에 가로로 줄지어 있다. 한 꼬투리 속의 콩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작업대는 책상 위의 책꽂이처럼 위로는 세 칸, 아래로는 두 개의 칸이 있다. 어릴 때 부모님들은 가을이 지나 머리가 쨍하고 코가 찡한 맴싸래한 겨울이 다가오면 월동준비를 하였다. 김장을 하고, 가을옷 자리에 겨울옷을, 얇은 이불 대신 두꺼운 이불을 준비하고, 창문에 뽁뽁이도 붙여두고, 베란다의 화분은 정리하고, 더불어 달달한 과일청도 준비하듯이, 직원들은 포장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다. 눈높이에는 노트북, 바코드 스캐너와 송장 프린터가 있고, 그 주변에 계란 포장용 에어팩, 음료와 유동체와 야채를 포장하는 뽁뽁이, 각종 크기의 박스, 아이스팩과 드라이아이스 등이 비치되어 있다. 사원들은 각자의 공간에 대해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있다. 일하는 데 걸리적거리지 않는 공간과 마음에 맞는 동료와 앞뒤를 하고 싶어 한다. 학교에서 함께 놀 친구들이 있듯이. 그 친구가 유머러스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시끄러운 환경에서 연신 귓속말을 하다 보면 처덕처덕한 시간을 버틸 수 있다. 그가 포장을 하면서 질퍽이는 시간을 버티는 방법은, 포장하는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상상하거나 가운데 한 글자가 지워진 구매자의 이름을 상상하거나 특이한 주소나 도로명으로 그곳을 상상하는 일이다. 이런 거다. 김*영이라면 김지영, 김가영, 김혜영, 김수영, 김신영, 김태영 등 가능한 이름들을 생각한다. 김지영이 작고 아담한 느낌이라면 김가영은 선머슴 같고, 김혜영은 둥근 느낌이다. 상상하는 장소로는 책향기마을, 숲 속 노을로, 사슴벌레로, 숲 속마을 같은 곳이다.   


옆으로 움직임이 느껴진다. 새큼한 향기가 복복하다. 작약의 화려함도 아니고, 프리지어 꽃 향기의 상큼하면서 우아한 향도 아니다. 최면을 걸듯 마음을 사로잡는 감향이다. 향속에는 부드러운 관능이 가두어 있다. 이미 잊어가던 그 향이 그의 의식을 일깨웠다. 불현듯 그의 삶을 환하게 채워진 순간이 떠오른다. 아내를 만나기 전 있었던 이야기다. 그녀가 '관능성', '교양 있는 제스처', '미숙한 모성'으로 그를 자극한 것에 비해, 아내는 '관능성', '잘 산다는 제스처', '결연한 교활함'으로 그를 유혹했다.


그의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다른 날과 다를 바 없는 오후의 서점이었다. 서점은 나른한 소음들과 희미한 종이냄새가 안개처럼 자욱하고, 우드 인테리어의 따뜻한 조명아래 빼곡히 쌓인 책들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듯 눈을 치뜨고 있었다. 얼마 후, 단정한 이마, 외까풀의 갸름한 눈매에 맑고 또렷한 검은 눈동자, 균형이 맞은 콧대와 코끝, 실수 없이 한 번에 칠해진 듯한 립스틱의 입술, 헐렁한 브이넥 티셔츠를 입 그녀가 걸어왔다. 책의 장벽을 지그재그로 피하며 온갖 종류의 소설들이 두줄로 빽빽이 늘어선 서가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나치는 서가의 책들은 갖가지 색의 책등을 보이며 그녀의 시선을 붙들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인간이 무심코 내뱉은 농담 한마디가 순식간에 인생을 바꾸어버린 이야기. 어느 무더운 여름날 오후, 감수성이 풍부한 어느 소녀의 오해가 젊은 연인들의 비극을 불러오고, 이를 되돌리려고 60년에 걸쳐 속죄하는 소설가의 이야기. 장래가 촉망되던 학생이 자살을 하고, 아무도 그가 자살을 왜 했는지 모르는 가운데 사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의 친구가 무심코 보낸 한 통의 편지가 엄청난 파국을 일으켰음이 밝혀지는 이야기. 태평양 한가운데서 배가 침몰하여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잃고, 구명보트에서 호랑이와 함께하는 227일간의 표류하는 이야기. 화성에서 오롯이 혼자 남아 감자를 심으며 살아남은 최초의 인간이야기. 서양문학의 근원이자 가장 오래된 서사시, 전쟁에서 승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고난을 겪는 이야기. 항해 중에 적에게 납치되어 도착한 곳에 외모뿐만이 아니라 지식이나 관심사가 같은 사람을 만나면서, '나는 왜 나인가'를 고민하는 이야기.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운명론과 자유의지를 다룬 이야기. 머릿속에 무심코 떠오르는 정돈되지 않은 생각이나 기억, 꿈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적은 소설인데 과거 속 잃어버린 시간과 감각을 일깨워 사물, 사람, 풍경등을 세밀하게 묘사한 이야기. 그 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그녀를 유혹한다. 그녀의 시선이 서가의 한 부분에 모인다. 서가의 책등을 살피고 책 한 권을 빼든다. 책을 빼내는 능숙한 손놀림, 주저함이 없는 자연스러움. 하얀 팔뚝을 움직여 왼손으로 책을 꼽아 눈높이에 두고 겉표지를 살핀 후, 조용히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치고 목차로 책의 내용을 짐작한다.


그는 조급함을 느꼈다. 이 순간을 지나치면 후회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그녀는 나이에 상관없이 남자들의 관심을 끌 정도로 아름다움을 갖춘 데다 교양도 겸비했다고 생각했다. 대화가 될 수 있는 상대가 아름다움도 갖춘 것이다. 지금 당장 말하지 않고 망설인다면, 언젠가 다른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결혼 생활이 예전 같지 않고, 어느 날 멍하니 그의 아내를 품에 안은 체 예전에 만났던 여자들을 떠올리고, 그중 서점에서 만났던 그녀를 놓친 걸 후회할 수 있다. 그날 이후에도, 간혹, 우발적 동요가 일어나고 그 사이에 누군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백이 생기고, 마음 구석에 새로운 자아가 생기는 경험은 여러 번 있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할 때 결정하는 요소는 분명히 있지만 딱 뭐라고 꼬집어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을 때가 있다. 그 요소는 흥분과 동요, 때론 광기에 버금가는 열정이고 유치한 어리석음일 수 있다. 부수적인 이야기지만 지금 말하는 일화는 그의 아내에 관한 일화이다. 그가 얼마나 감정적인지를 알 수 있는 사례 중 하나이다. 가을이 늦장을 부리는 어느 날, 서로가 가까이하고 두세 달이 지날 무렵이다. 해 질 무렵, 둘은 투명한 호텔 유리문을 지나 제주도의 해변가를 거닐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 뒤늦게 그의 기억이 채색되었을 가능성도 있긴 하다. 편편히 떨어지던 햇빛은 서쪽으로 기울고, 황금빛과 노을이 무성하게 섞인 담대한 색감의 하늘 아래로 비행기가 느릿느릿하게 나아가고, 바닷가에서 여름의 기억을 간직한 온화한 미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옷은 연푸른 바람에 살랑거리고 부풀어 올랐다. 아니, 부풀어 오르긴보다 그녀의 몸에 한쪽으로 달라붙어 있었고, 살부드러운 바람이 그녀의 맨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둘은 팔짱을 살며시 끼고 걸으며 간혹 다리가 부딪혔고, 이리저리 씰긋대는 물결은 둘의 발가락을 간지럽혔다. 해변의 중간쯤에서, 그녀는 발꿈치를 틀어 몸을 반쯤 그에게로 향했다. 한 손으로 비스듬히 머리에 걸쳐진 옅은 색 모자를 한 손으로 잡으며 반쯤 그를 향한 채로,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일 이초 동안의 그 눈길은 그를 붙잡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지어본 적 없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의 머리는 바람에 제멋대로 나풀대고 이마는 땀이 송송 솟아 있었다. 그녀는 이내 그의 이마에 내맺힌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찍어냈다. 그녀 손목 주위로 은팔찌가 뱅그르 돌았다. 그는 갑자기 기분이 평온하고 야릇해졌다. 어떤 다른 차원으로 던져진 느낌이었다.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는, 조심스레 다룰 필요가 있는, 존재의 모든 틈새를 메우는, 그런 순간이었다. 어스레한 잔광은 부서지는 파도 위와 금빛 모래사장 위를 뒤덮고 있었다. 부분적으로 그늘진 그녀의 얼굴과 손수건을 쥔 손, 반사된 햇빛에 빛나는 목의 하얀 곡선과 피부, 더 밑으로 내려가 나풀대는 치마 가장자리를 보자 느닷없이 웃음이 나오고 손발이 꼼지락거리고 몸은 간질거리고 모든 피는 심장으로 몰려들었다. 마치 그들만이 그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둘은 '사랑해'라는 말을 하였다. 존재를 뒤흔드는 순간이었다. 환희는 몸 구석구석을 물속에 잉크방울이 퍼지듯 풀어놓아졌다. 그 순간의 '사랑해'라는 말의 강도는 그 이후에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여하튼, 그때 그녀와 결혼을 생각했다. 그녀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가지기 위함이다. 그때가 언제였더라, 2010년 늦은 여름, 지금부터 대략 14년 전 여름날 저녁, 그의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그다지 적지 않은 나이에, 결혼을 결정하기까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고, 그녀를 우연히 만난 지 불과 두 달 만이었다. 그때까지 그가 여자를 놓고 내린 결정은 하나같이 잘못된 결정뿐이었다. 당시에 그가 이 감정에 대해 얼마나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 무렵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상대방의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감정의 미묘한 위치관계를 구별하지 못했다.


지금의 이야기에 별 감흥이 없다면 이야기를 거두도록 하겠다. 아예, 지워버리는 게 낫겠다. 아니다, 내용을 바꾸어 말하는 게 나을 거 같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의 일부분이다.


'사랑이 생겨나는 온갖 양태들 가운데, 이 성스러운 질병을 일으키는 온갖 원인들 가운데, 한 가지는 이따금 우리를 지나는 흥분(agitation)이란 격렬한 입김이다. 이 순간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우연히 서로 기쁨을 나누는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사랑할 사람이 될 것이다. 그 사람이 과연 그때까지 다른 사람보다 더, 또는 다른 사람과 같은 정도로 우리 마음에 들었는지 아닌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기호가 배타적으로 변했는지의 여부일 뿐이다. 프레보 가게로 가는 마차에 타고 있을 때 스완은 자신이 이미 그전과 같은 인물이 아니라는 것, 자신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 태어난 인간이 그에게 딱 달라붙어서 그와 함께 있었는데, 아마도 그는 그 새로운 인간을 떼어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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