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is 말할수 없는 역사를 담고 있다.
"판사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거 같아요?"
병에 걸려 허약해진 15세 소년 미하엘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구토를 한다. 그것을 본 36세의 한나는 그 소년을 도와준다. 하나의 우연한 도움은 두 사람의 미래를 결정짓는 운명의 순간이 된다. 운명적인 순간의 시간이 지속의 시간으로 바뀐다. 두 사람은 매일같이 만나 먼저 책을 읽고 그다음 샤워를 하고 나서 사랑을 하고 그다음 조금 누워 있다가 헤어지는,일정하게 규정된 의식을 계속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녀는 수수께끼처럼 훌쩍 사라진다. 그녀가 떠난 후 미하엘은 법학을 전공하다가 세미나 관계로 방문한 법정에서 그녀를 먼발치에서 보게 된다. 그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수용소에서 수많은 유대인을 사지로 보낸 혐의로 기소된 상태였다. 강제 수용소 감시원이었다. 그녀는 아우슈비츠에서 부역하는 일을 저지를 때 주범은 아니었다. 그녀는 모든 책임을 주변에서 뒤집어씌울 때에도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이 노출되는 것이 두려워했다. 필적 감정을 거부하고 보고서 작성을 자신이 했다고 거짓으로 시인하고 모든 벌을 받는다. 만약에 그녀가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녀는 필적감정을 받아야만 한다. 그녀에게 그 일은 자신에게 부여된 과중한 형량을 줄일 수 있는 기회였지만 동시에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 갈림길에서 그녀는 어리석게도 자존심을 지키는 쪽을 선택한다. 선뜻 이해 가지 않겠지만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그녀에게는 죽음보다도 지키고 싶은 감정이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결코 내보이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한나는 교도소에 수감되고, 미하엘은 현실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그는 그녀를 그리워하며 그녀를 위해 녹음기에 자신이 그녀에게 들려주었던 책을 녹음하여 그녀에게 보내준다. 결혼하여 딸까지 낳은 후 이혼한 그는, 그녀와의 사랑이 그와 그녀의 인생에서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쳤음을 깨닫는다. 그녀가 수감된 지 8년이 지난 시점부터 시작된 문학 작품의 녹음은 뜻밖에도 그녀가 가석방될 때까지 10년간 계속된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그녀를 찾아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는 그녀를 과거 속에 묶어놓고 이상화된 모습으로 그녀를 사랑하려 했거나 아니면 법정에서 그녀가 문맹으로 주범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밝히지 못한 미안한 감정일 수 있다. 그녀는 오랜 수감 생활을 끝마치고 출소하는 그 찬란한 날 스스로 목을 매었다. 무슨 일로 비극적인 자살을 선택했을까? 이제 자유로운 삶이 열리려는 시점에서 목숨을 끊은 이유는 무엇일까? 자유로운 사회로의 복귀에 두려움을 느낀 것인가? 아니면 수감생활이 더 익숙해서일까? 그건 아니다. 그로부터 단 한 통이라도 편지를 받았다면 자신을 자살로 몰고 간 절망에 휩싸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그의 편지는 자신이 문맹이었던 어두운 수치심을 영원히 덮어 주었을 선물이었을 테니까.
이 영화를 10대 소년과 30대의 성숙한, 농익은 여인의 멜로드라마라고 보면 안된다. 인간의 자존심과 약점의 문제가 사랑과 죄의식, 그리움과 수치감, 절망감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킨 후, 그들의 마음을 끝까지 괴롭히는 과정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숨겨서 위장은 했지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의 근거가 된, 수치심이 어떻게 작동하고 사람을 절망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문맹, 무지로 인해 저지른 잘못을 처벌받는 것이 맞는가? 용서를 받을 수 있는가? 책임을 진다면 어디까지 져야 하나? 물론, 연민은 느낄 수 있으나 무지에 의한 악행도 책임져야 한다. 그녀는 자기의 삶을 스스로 끝내면서 속죄하였다. 그녀가 스스로 글을 깨친 후이다. 속죄가 글을 깨우친 이후의 한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두려움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무기징역을 받더라도 숨기고 싶었던 문맹이라는 약점을, 그녀는 할머니가 되어서야 스스로 마주한다. 책과 글은 타인과의 연결 즉 소통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 이후에 속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두려워 외면했던 글과 소통하고, 지은 죄에 속죄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글을 배우는 것이 그녀에게는 속죄의 과정이었다.
한나라는 이름은 아픈 이름이지만 미하엘을 변하게 했고, 자신을 극복하고, 죄를 감당한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