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is 환상을 잃어버리는 과정이다.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힘겹게 나아간다. ”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개츠비가, 잃어버린 사랑을 다시 찾기 위해 불법을 저질러 가면서 돈을 모아 그녀의 사랑을 되찾으려고 하나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개츠비는 왜 위대한 것일까?
데이지는 사람을 만나면 속삭이듯 말하여 사람들을 들뜨게 한다. 개츠비는 5년 만에 데이지를 만날 때 그녀의 모습에 약간 실망을 한다. 그러나 그녀의 허스키하고 낮은 목소리에, 그녀에 대한 환상을 다시 찾는다. 그녀의 목소리가 그녀 자신을 팜므파탈로 만든 것이다. 마치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처럼 사이렌의 유혹에 빠진 것이다. 개츠비의 잃어버렸던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인 것이다. 개츠비는 그녀를 다시 찾겠다는 일념으로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모아 그녀 앞에 나타나 사랑을 다시 찾으려고 했으나 그녀는 개츠비가 모은 돈은 근본이 없는 돈이지만 남편의 돈은 전통 있는 집안에서 내려온 탄탄한 돈인 것이다. 돈이라는 사다리를 만들어 데이지의 성으로 다가갔지만 그녀는 사다리를 걷어찬 것이다. 개츠비가 생각하기에 아메리카드림은 내가 노력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고, 상류사회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들어갈 수 없는 집단이 있다. 넘어설 수 없는 신분의 벽이 있다. 빈민가 출신인 개츠비는 결코 데이지에 닿을 수 없었다.
개츠비는 '내 운명의 주인공은 나다'라고 생각하고, 그 길로 갈려고 했던 사람이다. 과거도, 사랑을 얻음으로써 다시 재현하고 미래도 바꿀 수 있다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룰 수 없는 열망이지만 열망 자체는 위대하다. 과거의 순수했던 인간으로 가려고 했던 그는 살아남았던 타락한 인간에 비해서는 위대한 부분이 있다. 미국이 청교도 정신을 잃어버리고 점점 금권주의로 변해가던 시절에 개츠비가 악착같이 돈을 버는 이유가 그 돈을 좇는 것이 아니라 그의 연인이었던 데이지가 돈을 숭배하는 여자였기 때문에 데이지를 만족시켜 주려고 돈을 버는 것이었다. 모두 다 돈만 좇던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가장 돈이 많았던, 개츠비는 돈보다는 사랑을 쫓았던 것이다. "사랑을 위해서는 돈은 아깝지 않아"라고 말하는 그런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순수한 사랑을 가지고 위대한 개츠비라고 말한다.
개츠비가 자기 인생을 걸고 사랑하는 이 여성은, 실은 그런 사랑을 바칠 만큼 대단하지가 않다. 개츠비가 인생을 걸고 사랑하는 여자가 실은 그럴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아이러니는 받아들이기 쉬운 것은 아니다. 그녀는 쉽게 사랑에 빠지고 허영에 사로잡혀 있으며 무책임하다. 자신의 무책임이 심각한 결과로 돌아올 때에는 그 처리를 남에게 맡기고 달아난다. 개츠비는 그녀 같은 범속한 존재를 무모하게 사랑함과 동시에 의연하게 그 실패를 받아들인다. 그는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애초에 설정한 자신의 환상 속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다. 데이지는 사랑 그 자체와 사랑에 빠지고 개츠비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와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체의 야심이 개입하지 않은 순수한 사랑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과연 순수한 사랑이란 인간사를 이해하지 못한 철없는 사람들이나 추구하는 것인가?
만일 누군가 나에게 이 소설을 단 한 줄로 요약해달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자리들"이라고. 개츠비에게는 데이지라는 목표가 있었고, 데이지에게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지향이 있었다. 지친 윌슨은 엉뚱한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몸이 뜨거운 그의 아내는 달려오는 자동차를 잘못 보고 제 몸을 던진다. 작가인 피츠제럴드마저도 당대의 상공과 즉각적인 열광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 표적들을 행해 쏘아 올린 화살들은 모두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꽂혔다. 난데없는 곳으로 날아가 비로소 제대로 꽂히는 것, 그것이 문학이다. ㅡ 김영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