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 00 PM

모든 투자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by 김영


준하는 한 사원을 알고 있다. 그는 "이래서, 이 나라는 문제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정부나 정치,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김없이 그런다. 그의 말투는 거칠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점심시간에는 끝없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귀를 붙잡아 놓는다. 나이는 마흔이 넘어 보인다.


"너희들, 그 얘기 들었어?"

그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말을 잇는다.

"회사에서 일용직이나 계약직 직원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는 거 말이야. 이래서, 이 나라는 문제야!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일머리 없는 직원은 하루 이틀 나오다 사라지고, 일 잘하는 직원은 매일 나오는 게 이상하다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이런 이유가 있었던 거야."

옆에 앉아있던 직원이 무심하게 말했다. "회사 입장에서 일 잘하는 직원을 골라 뽑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내가 블랙리스트가 근로기준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니, 근로자의 신성한 노동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라느니, 부당해고라느니 하는 소리를 하려는 게 아냐. 대한민국에 살면서 한 번도 부당하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 있나? 한 번도 억울함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냐고. 그런데도 왜 계속 당하는 줄 알아? 그렇게 밟아도 너희가 아무 짓도 못할 거라는 걸 아니까 계속 밟는 거야. 내가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알아?"

그가 뜬금없이 되묻는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악법은 법이 아니야! 무효인 거라고! 부당한 처벌을 받았으면서도 법원 판결을 존중한다고 지껄이지 말고, 부당하다고 소리쳐야지. 악법은 무효라고 외쳐야 해! 법은 그냥 기술일 뿐이야, 상식과 정의는 없어. 오로지 돈의 힘으로 움직이지. 같은 죄를 지어도 누가 변호하느냐에 따라 사법적 판단이 달라지잖아. 그러니까 살면서 제일 아끼지 말아야 할 게 바로 변호사 비용이야. 힘없는 국민들한테는 법은 신성하니까 지켜야 한다고 억누르면서, 힘 있는 놈들은 시도 때도 없이 어기면서 법을 누더기로 만들고 있잖아. 어떤 제도를 만들어도 법 기술자들에겐 빠져나갈 구멍은 항상 있어. 우리가 이번 일을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회사는 조만간 똑같은 짓을 저지를 게 뻔해. 더 조심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교묘하게 방법을 찾을 거라고."

"그래도 조금씩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회사가 계속 성장하고, 나스닥에도 상장한 글로벌 기업인데, 언젠가는..."

다른 직원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글쎄, 네 말은, 회사 믿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변할 거라는, 뭐 그런 뉘앙스 맞지? 그렇지?”

그는 슬쩍 떠 보며 말을 이어갔다.

"진보란 말이지, 당장의 한 걸음을 걷는 거야. 한 걸음을 걷지 않으면 두 번째, 세 번째 걸음도 걸을 수 없어. 빵이 커지면 나눠주겠다느니,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 다 개소리야. 학교에서 그런 거 배운 적 있지? 거지들이 구걸할 때 동정을 하면 계속 거지가 된다는, 생선을 주기보다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는 얘기. 거지들은 지금 당장 도움받지 못하면 죽어.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한 거야. 회사가 우리를 소모품으로 아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잖아. 10개를 하면 12개를 하라고 하고, 12개를 하면 20개를 하라는 곳이야. 서서히 몸을 망가지게 하고, 망가지면 다른 몸으로 대체하면 되니까. 더 쌩쌩한 몸으로 말이야. 플랫폼을 이용해 채용 절차를 단순화해서 사람들을 일단 끌어모아 '인력 풀'을 확보한 후, 입맛에 맞는 직원을 일하게 하고 아니다 싶으면 가차 없이 버리는 거지. 인원은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니 거리낌도 없어."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맞은편 직원이 말했다.

“사람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으니까 마찬가지로 쉽게 나가는 것 같아요. 어떤 계약직 사원은 하루만 일하고 그만두거나, 심하면 오전만 일하고 말없이 사라지더라고요. 우리가 신입사원이 들어왔네,라고 눈치챌 겨를도 없이 말이에요.”

그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우리도 이런 내막이 있을 거라 은연중에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쉬는 시간 없이 일만 하고, 화장실에 갈 때도 보고해야 하는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노동 강도나 작업 환경에 대한 정당한 권리도 요구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자기 검열을 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의 말에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직원이 말한다.

“지난번에 국회에서 '팡팡 청문회' 하는 거 봤는데, 우리 회사의 산업재해율이 제일 높더라고요. 산업재해율이 높았던 건설업이 1퍼센트 정도인데 우리 회사는 두 배였어요.”

이때다 싶은 듯, 그는 말을 낚아채며 이어간다.

"산업재해율이 높은 건 휴게시간이 없는 게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해. 내 친구들한테 우리 회사는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휴게시간이 없다고 하니까 못 믿더라. 그게 말이 되냐면서, 그럼 담배 피우는 사람은 담배도 못 피우냐고 되묻더라고. 하루 종일 휴게시간 없이 일하고 정 힘들면 화장실 변기에 앉아 쉬는 상상을 못 하는 거지. 청문회에 나온 놈들도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해봐야 돼. 직접 해보면 당장 고칠 거다. 회사에 휴게실은 있는데 휴게시간은 없어. 이게 혁신 기업이냐?”

“그래도 회사에서 직원들을 '사원님'으로 통일하고, 나이나 학력을 아예 보지 않고 채용하는 건 혁신적인 거 아닌가요?”

주변을 슬쩍 보며 맞은편 직원이 말했다.

"나도 처음에는 신선하다고 느끼긴 했어. 호칭을 통일해서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만들고, 나이나 학력 제한을 없애 파벌이 아닌 능력으로 가겠다는 거겠지. 그들이 성공했다는 건 좋은 인사 제도와 조직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반증일 거고. 근데 달리 보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사원으로 통일하는 건 익명성에 가두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없애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 그래야 일 진행이 빠르겠지. 감옥에서 이름 대신 수형번호로 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 내 말, 틀린 데 있나?"

그의 말에는 사람을 끓어오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너희들도 뉴스를 통해 들었잖아. 회사는 택배 근로자가 과로사로 사망했을 때, '고인은 팡팡 근로자가 아닌 전문 배송 업체 소속 개인사업자이다'라는 자료부터 냈어. 함께한 노동자의 죽음에 안타까워하거나 사과하기보다 소속 노동자가 아니라며 변명하는 게 먼저였지. 사회적인 책무를 법적으로만 접근해 면책받고 빠져나가려고 했어.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드러났는데도 '직원에 대한 인사 평가는 회사 고유의 권한이자 안전한 사업장 운영을 위한 당연한 책무이며, 회사의 인사 평가 자료는 언론에서 제시한 출처 불명의 문서와 일치하지 않는다'라는 보도 자료를 먼저 내보냈잖아. 뭐, 느껴지는 거 없어?"

그는 답답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묻다가 말을 이어갔다.

"'팡팡이 없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그들이 제시하는 비전은 모든 구성원들의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비전이 아니야. 비전의 충분조건은 듣는 사람의 가슴을 기대감으로 설레게 하는 거다.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하는 조바심으로 가슴이 들떠야, 힘들어도 참고 일할 수 있는 거지. 이 미션에 가슴이 울렁거리는 인간들은, 무한 경쟁의 정글에서 새로운 판을 짜겠다고 해외 각지에 흩어져 화상 회의하고 재택근무하는 임직원에게나 해당하지, 우리 같은 계약직이나 일용직에게는 해당 사항 없어. '팡팡 배송'도 누군가의 아침과 밤을 빼앗고 만들어 낸 환상이야. 상품 하나를 고객의 가정까지 배송하기까지 수많은 직원들의 손길이 필요한데, 그들에게는 오로지 고객의 만족만이 있지, 직원은 안중에도 없어. 사람만 뽑으면 다냐! 여기가 뭐 인력회사냐! 인력회사도 이렇게는 안 해.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마라, 이래서 이 나라는 문제다."

그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그는 일장 연설에 숨이 가쁜 듯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근데 어쩌다 형님같이 똑 소리 나는 사람이 주식으로 망해요? 형님은, 돈 생기면 다시 주식할 생각이 있어요?"

그와 저렇게 친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서슴없이 말하는 사원이 화제를 돌렸다. 서로의 시선이 오갔다. 그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뭐, 실패의 원인은 주식을 책으로 배운 데에 있지."

그는 구부정한 거북목 자세로 엄지와 검지로 입꼬리를 일그러뜨리며 말을 이어간다.

"책은 올바른 방법만 가르치지 불법은 가르치지 않잖아. 난 주식 시장의 격언을 믿지 않아. 가치 투자도 믿지 않고 회사의 발표는 더더욱 믿지 않아. 대한민국 대부분의 주식은 작전주라고 생각해.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주식 투자로 망하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한때는, 나도, 시간을 내서 증권 분석을 했어. 세계 경제의 흐름과 정부의 정책 기조와 기업의 내재 가치를 분석하면 안정적인 초과 수익이 보장된다고 생각했었지. 그렇지만 주식 시장은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불법이 판친다는 것을, 아무리 해도 되는 놈만 되는 세상이라는 것을 돈을 잃고 나서야 알았다."

"자본주의의 꽃이 주식이라고 하던데 형의 말을 들으면 불법이 판을 치고 있는 것처럼 들리네요."

그는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난, 자본주의는 합법적 도박판이라고 생각해. 아파트 사서 운 좋게 오르면 승리자이고, 운 나빠 떨어지면 실패자인 거지. 어떤 연예인이 강남에 건물 사서 시세 차익으로 몇십억을 벌었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포털에 나와. 마치 그가 투자의 신인 것처럼 말이야. 그냥 남는 돈이 있어서 다들 강남에 건물 사고 아파트 사니까 산 거야. 그냥 운 좋게 오른 건데, 경제지에서는 아직 경기 안 죽었으니 투자하라고 부추기는 거지. 야바위꾼들의 현란한 손놀림과 다를 게 없어. 주식 투자가 경마나 야바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어? 굳이 있다면, 도표라는 이상한 부적을 사용해서 전문적으로 보이게 할 뿐이지."

그는 괜스레 화가 나는 듯, 억양이 높아졌다.

"한때, 내가 주식 시장에서 존경해 마지않았던 전설 같은 분들이 있었어. 한 분은 가치 투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전설적인 증권사 대표고, 또 한 분은 서학 개미를 이끌었던 자산 운용사 대표였지. 그들은 위탁 매매만을 해야 한다는 법을 어기고 차명으로 거래하거나 자기 매매를 했어. 파렴치한 사기꾼들이야. 이들뿐이겠어? '제가 대통령 출마하겠습니다!' 이 한마디로 주가가 몇 배 오르자 자기 지분의 상당수를 팔아치운 정치인도 있어. 하물며 대통령 부인도 주가조작하잖아. 기업들은 상장해서 돈 당기고, 분식 회계 저지르고, 매출 조작으로 기업 가치를 올리거나 허위 또는 과장 공시를 일삼지. 이런 정보도 회사 내부자나 믿을 만한 타인에게 흘려. 게다가 주가가 상승하면 대주주는 지분을 팔아치우거나 전환 사채를 발행하여 부채를 자본으로 전환해서 신용도를 높여 추가적인 자금을 모으고, 다시 뉴스를 띄워 주가를 끌어올리고 팔아치워. 기업이 사업을 통해 이윤을 남기는 게 아니라 그냥 돈을 복사하는 거라고. 대형 금융 사고가 주기적으로 터지는 거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주식 시장은 미사일과 핵폭탄이 난무하는 전쟁터인데, 개미들은 총칼 들고 싸우는 꼴이야. 그렇게 당하고도 어떤 주식이 이틀만 상한가 치면 개미들은 동참할지 말지 엉덩이가 들썩거리지."

"그런 거 알면서 사람들은 왜 주식 투자하는 거예요?"

옆에 있던 직원이 안타깝다는 듯 물었다.

"뭐, 자신은 다를 거라 생각하는 거지. 그러니까 자신의 운을 믿는 거지. 근데, 그거 사실은 탐욕이야. 주식에 공포 지수나 탐욕 지수라는 게 있어. 투자 심리를 측정하기 위한 지표인데, 0에서 100까지의 값으로 표시돼. 0에 가까울수록 극단적인 공포 상태이고, 100에 가까울수록 극단적인 탐욕 상태지. 지수가 100에 가까워질 때, 다시 말해 극도로 탐욕적일 때가 고가로 매도할 기회가 되지만, 유튜브나 증권 방송에서는 여전히 더 성장한다며 찌라시 기사를 던지고 정작 지들은 팔고 수익을 챙기지만, 순진한 개미들은 더 오를 거라는 기대감에 이 돈 저 돈 영혼까지 끌어모아 더 사. 돈독이 올라 똥오줌 안 가리고 자신의 논리와 자신의 관점에만 매몰되어 객관성을 잃어버린 상태야. 그러다가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개미들은 물려. 그때라도 손절해야 하지만 계속 물 타기 하면서 조금만 조금만 버티면 상황이 역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그러면서 명문 대학교수 출신의 대표가 실험실에서 연구하며 인터뷰했던 장면을 떠올려. 설마 학생들 가르쳤던 인간이 사기 칠까 하고. 이 정도면 가족도 친구도 없어져. 그러다 회사는 거래 정지되거나 상장 폐지되고 정리 매매 들어가면, 휴지 조각이 된 자신의 계좌를 보며 망연자실하고 주식 투자의 무서움과 자괴감을 넘어선 공허감, 아니면 죽음을 생각해. 이런 개미나 남의 말 듣고 하는 개미들이 있는 이상 우리나라 주식 시장 끄떡없다. 그리고 '모든 투자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이 한마디가, 증권 시장에서 모든 범죄 행위에 면죄부를 줘. 다 지 팔자라는 말이지. 작전하는 놈들이 손가락으로 키보드 누를 때, 어딘가에서는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겨. 그 사람들 눈 쳐다보고도 그렇게 할 놈들이야. 죽어가는 그들에게 감정 이입하기보다는 자신의 행복이 중요한 놈들이니. 하물며 동물들도 꼬리 바짝 내리고, 배 보이면 멈추는 법인데, 이 인간들은 끝을 보는 놈들이야.”

잠시 머뭇거리다 무슨 말이 생각나는 듯 말을 이었다.

“아참, 돈 있으면 다시 주식 투자 할 거냐고 물어봤지? 잘 모르겠지만 종잣돈 있으면 다시 그 판에 끼어들 수도 있다. 그렇게 돈 때문에 고생했는데도 말이야.”


떨어져서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준하의 머릿속에 비자발적 기억이 스치고, 끊어져 있던 감정이 격발 된다.


[서울/데일리 비즈니스] 문선영 기자 입력 2020 09. 21 17:09

(전략) 20일 바이오기업 '내말만믿어'는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와 항암제 후보물질 'BDL9638'에 대한 임상실험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BDL9638은 종양을 유발하고 성장하는 데 관여하는 효소를 억제한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정부의 코스닥 활성화 정책의 일환인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에 입성하여 시총 3위까지 오른 바이오기업 '내말만믿어'는 항암치료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하고, 아울러 주주들의 권익과 이익보장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서울/ 위클리 비즈니스] 김운상 기자 입력 2022 08.15 14: 45

(전략) 이처럼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바이오기업 '내말만믿어' 의 '언젠간될거야' 대표의 자본시장법상 미공개 정보이용 등 혐의에 대한 판결에서 대법원 1부는 '내말만믿어'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