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 00 AM

13이 아닌 12를 택하는 강박적 여유

by 김영


그가 이 일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문제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꼽자면, 좀처럼 떨쳐낼 수 없는 강박적인 생각들 때문이다. 이 생각들은 몇 가지 방식으로 그를 괴롭힌다.


첫 번째는 마치 생각의 돌림병처럼,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방식이다. 언젠가 들은 노래가 하루 종일 귓가에 맴돌던 경험, 다들 있지 않은가? 자, 잠시 주문을 외워보자. 지금부터 ‘당신은 코끼리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거대한 코끼리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가? 다시 한번 강조하겠다. 코끼리에 대해 절대 생각하지 말자. 커다란 귀를 펄럭이며 체온 조절을 하는 코끼리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긴 코를 가진 코끼리도, 하얀 상아를 가진 코끼리도 마찬가지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을 무시하고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자. 그렇다면 이제 그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는가? 물놀이를 하고, 상아로 나무껍질을 벗기며, 긴 코로 나뭇잎이나 과일을 먹는,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코끼리가 정말로 생각나지 않는가?


두 번째는 핵분열의 연쇄 반응과 유사하다. 중성자와 충돌한 원자핵이 쪼개지며 추가 중성자를 방출하고, 이 중성자들이 다시 다른 원자핵과 충돌하는 연쇄 반응처럼 생각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한다. 두세 번이 네다섯 번이 되고 다시 열두 번이 된다. 열세 번은 아니다. 13은 왠지 기분 나쁜 수다. 12가 2, 3, 4, 6의 약수를 가져 마음이 편안한 것과 달리, 13은 찌르는 듯한 불길함을 안겨준다. 마치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등번호에 특별한 의미를 두듯이 말이다.


어찌 됐든 이런 식으로 증가한 생각은 핵분열 물질이 모두 소모되면 반응이 종료되는 것처럼 어느 순간 멈춘다. 즉, 그의 생각 증가는 일정한 양으로 늘어나는 산술급수적 방식이나 일정한 비율로 커지는 기하급수적 증가가 아니다. 대신, 처음에는 기하급수적으로 폭발했다가 어느 시점부터 증가 속도가 둔화되는 S자형 성장 곡선을 따른다.


그의 연쇄적인 생각을 마인드 맵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중심 이미지에는 ‘넘어지는 사람’이 자리하며, 여기에서 수많은 가지들이 방사형으로 뻗어 나간다. 원인 분석에는 준비 부족, 잘못된 목표 설정, 두려움, 자만심, 예상치 못한 사건 등이, 감정 가지에는 좌절감, 분노, 슬픔, 수치심, 불안이, 교훈 가지에는 자기 성찰, 성장의 기회, 새로운 시작이, 대처 방안 가지에는 전문가 도움, 계획 수정, 긍정적 사고, 감정 관리 등이 이어진다. 각각의 가지는 다시 수많은 잔가지로 무질서하게 갈라진다. 예를 들어, ‘준비 부족’의 중심 이미지는 ‘빈 가방’이나 ‘미완성 퍼즐’이며, 여기서 정보 부족, 기술 부족, 시간 부족 등의 가지가 연결된다. 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널려진 생각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득시글거리며, 켜켜이 쌓인 생각들 사이를 들쑥날쑥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가로지른다. 여기저기로 뛰쳐나오는 생각들은 한데 엉켜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그를 몰아넣는다. 마치 진흙탕 속으로 더 깊숙이 빠져들어 가는 기분이다.


이러한 상태를 비유하자면, 프란츠 카프카의『굴』에 등장하는 동물과 다를 바 없다. 그 동물은 스스로 겁쟁이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굴을 파고 보수하며 정교하게 만들면서도 끊임없이 외부의 위협과 안전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의 머릿속은 바로 이 동물의 굴과 같다. 아무래도 이러한 피상적인 설명만으로는 그가 겪는 고통이 마음에 와닿지 않을 것이다. 그가 끊임없는 생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이제 소설 속 그 동물이 겪는 고민들을 정리해 보아야겠다.


'굴'속의 주인공이 고뇌하는 핵심 문제는 세 가지다.


① 굴의 완벽한 방어 체계에 대한 집착

② 미지의 외부 위협과 침입에 대한 불안

③ 미심쩍은 소음의 정체와 원인 파악


첫 번째 고민은 바로 안전을 보장할 굴을 어떻게 설계하고 구축할지였다. 굴의 입구는 두 개를 만든다. 하나는 정찰용이므로 좁아도 상관없다. 그 입구로부터 넉넉히 떨어진 곳에 다른 입구를 파는데, 이 입구는 언제든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만들 수 있도록 설계된다. 위는 단단한 흙이 얇게 층을 이루도록 한 후 이끼를 덮으며, 밑에는 푸석한 흙으로 구멍을 낸다. (입구가 둘이어서 위험이 배가 될 수 있다는 의심이 들지만, 이 생각은 일단 접어둔다.) 밖에서 볼 때 구멍이 하나뿐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 함정용 입구도 있다. 이 구멍은 실은 몇 걸음만 걸으면 단단한 자연석과 마주쳐 그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 함정이다.


이런 기발한 속임수를 뻐기는 것은 아니다. 통로는 바깥세상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길을 지그재그로 만들고, 100미터마다 통로를 넓혀 저장물을 조금씩 나눌 수 있는 둥근 광장을 배치한다. 제2, 혹은 제3의 광장은 예비 저장소나 부 저장소로 삼는다. 또한, 극도로 위험한 경우 추적자의 이빨을 느끼기 전에 신속히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완전히 열린 출구'도 굴의 한가운데서 조금 비켜난 곳에 비상용으로 만든다. 물론 이 출구는 주인공에게만 열려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적들이 침입할 수 있는 가장 취약한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작업은 실로 고된 과정이다. 돌진하여 땅을 다지는 망치 역할의 이마를 밤낮없이 땅에다 짓찧었다. 이마가 깨져 피가 났지만, 그 순간은 오히려 행복했다. 굴이 정교해지는 만큼 안전의 가능성도 무한히 열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굴의 가장 멋진 점은 뭐니 뭐니 해도 정적이다. 간혹 작은 동물들의 서걱거리는 소리와 수리를 알리는 흙이 새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이따금씩 굴속으로 숲의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안전이라고는 없고, 어딜 가나 위험한 생활에서 다가오는 노후를 앞두고 이 정도의 안식처를 가진다는 것은 가슴이 벅찬 일이다.


어린아이처럼 몸을 쭉 펴고 굴러도 보고, 평화롭게 잠들었다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적도 있다. 방금 전 어마어마한 힘으로 하룻밤 만에 아무도 모르게 굴 입구를 딴판으로 바꾼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잠결에 기쁨과 구원의 눈물이 흘러 수염에 맺혀 반짝였다. 많은 통로와 광장의 둘도 없는 주인으로서 평화롭게 잘 먹으며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름다운 시간들의 의미가 이런 것이 아니면 또 무엇일까?'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기쁜 순간에도 생각은 끊임없이 꼬리를 물었다. 작은 광장에 모아 둘 양식은 대체 얼마만큼이나 보관해야 할까? 이렇게 양식을 나누어 놓으면 잃어버리는 것도 생길 테고, 그것을 확인하려 복잡하게 얽힌 통로들을 줄곧 뛰어 돌아다녀야 할 텐데. 게다가 무얼 갖다 놓더라도 그것이 길을 막을 뿐이니, 적에게 쫓김을 당할 때는 오히려 장애물이 될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여기저기 양식을 모아두면 자신이 소유한 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없어 자부심에 상처가 생길 수도 있다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두 번째 고민은 미지의 외부 위협과 침입에 대한 불안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굴에 은밀하게 드나들 수 있다. 굴이 아무리 좋아도 이따금씩 바람을 쐬거나 사냥을 하러 밖으로 나가야 하니까. 하지만 밖은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볼일을 마치고 재빨리 안전한 굴로 돌아가야 하는데, 문제는 그 순간 발생한다. 굴로 들어가는 사이 적이 뒤에서 그를 덮칠 수도 있으며,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굴은 순식간에 막다른 비극적인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자신을 감시하는 적이 주변에 있는지 끈질기게 관찰해야 한다. 온 사방, 땅바닥, 나무 위, 공중의 모든 존재들이 감시 대상이다.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틀림없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 며칠이 걸려도 좋다. 아예 입구 근처에 살림을 차려 그곳을 관찰하며 일생을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해본다. 관찰하는 동안 자신의 굴이 아직 적에게 발견되지 않은 것에 흐뭇함을 느낀다.


어느 순간, 온갖 의심을 떨쳐버리는 순간이 오면 백주에 곧장 입구를 향해 내달린다. 이번에야말로 틀림없이 이끼를 들어 올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를 따라오는 자가 의심스러워 입구를 지나쳐 달려서는 일부러 가시덤불에 제 몸을 처박는다. 어리석다 해도 좋다. 그는 가만히 가시덤불에 처박힌 채 뒤쫓는 자에 대해 생각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수룩한 자일 수도 있고, 호기심에 그저 따라오다가 저도 모르게 적대자가 될 수도 있고, 그 어떤 비밀스러운 생물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자신과 같은 족속으로 굴에 일가견이 있고 그것을 평가하는 자일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의 굴은 짓지 않고 그의 굴에 살고자 하는 건달일 수도 있다. 그자가 누구일지라도 상관없다. 만약 더러운 욕망으로 입구를 발견하고 이끼를 들어 올린다면, 온갖 망설임을 버리고 그자에게 덤벼들어 물어뜯고 짓찧어 갈기갈기 뜯어 남김없이 빨아 마시고 찌꺼기는 다른 양식 더미에 냅다 던져버릴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굴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참으로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그가 신뢰하여 관찰 임무를 맡길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자신은 안심하고 내려갈 수 있는 것 아닌가?' 그의 관찰자는 그가 내려갈 때 그의 뒤를 지켜봐 주고 위험한 조짐이 보이면 이끼 덮개를 두드려 주는 대신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그럼으로써 그의 엉덩이 뒤의 모든 문제는 깨끗이 처리된다. 그렇지만 관찰자가 어떤 대가를 넌지시 요구할 수도 있다. 애써 잡은 사냥감이든지 아니면 최소한 굴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사례로 사냥감을 나누어 주는 것은 그럴 수 있지만, 굴을 구경시킬 수는 없다. 굴은 자신을 위해 팠지, 방문자를 위해 판 것은 아니니까.


만약 관찰자를 굴로 들여보낸다면 함께 내려가거나 관찰자만 들여보내야 하는데, 관찰자 혼자만 들여보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세상의 무수한 우연들 속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겠는가? 같이 내려가는 것도 가당치 않다. 내려가는 순간, 등 뒤에서 망을 봐준 장점은 사라진다. 그를 믿고 혼자 내려가도 그가 다른 적과 결탁해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기묘한 생각이 스쳐갔다. 관찰자의 특이한 동향을 알려줄 수 있는 제2의 관찰자를 두고, 제2의 관찰자를 관찰할 수 있는 제3의 관찰자를 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


이런 식으로 하면 무한히 반복할 수밖에 없다. 끝없이 이어지는 관찰자들의 연쇄는 온 세상의 적들에게 굴의 소문을 알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생각이 다시 제자리를 맴돈다. 결국에는 모든 존재를 믿거나 모든 존재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 모든 존재를 믿는다면 애당초 이 굴은 지을 필요가 없어지고, 모든 존재를 불신하면 더 완벽한 굴을 만들든지 아니면 운명에 맡기든지 해야 한다.


세 번째 고민은 늘어지게 잠을 자던 중 지극히 생소한 '사각사각'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났을 때 시작되었다. 이것은 끝까지 다 자고 저절로 떨어져 나가는 잠에서 깨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 사각거리는 소리 때문에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귀 뒤에서 맥박이 격렬하게 뛰었고, 오랫동안 불안감에 목덜미가 움츠러들었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을 잃어서는 안 된다. 일단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우선 벽이나 바닥에 귀를 대보고, 높은 곳, 깊은 곳, 입구들, 온 사방에 귀를 대보았다. 어떤 때는 사각사각 소리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휘파람 소리 같은 것이 끊어졌다 이어지곤 했다. 그동안 굴에 흠뻑 빠져 감시를 소홀히 한 탓에 어떤 불길한 조짐을 그대로 방치한 것이다. 그런 소리는 어느 정도 집주인의 귀에만 들리는 소리이다.


앞서 말했듯이, 굴의 가장 큰 장점은 정적이다. 문득 깊은 잠에서 깨어나 밤낮없이 이곳에 가득 깔린 정적을 엿듣고 또 엿듣다가 안심하여 웃곤 했었다. 이 정적을 깬 건 적(敵)이다. 누군가는 세상을 참과 거짓으로, 누군가는 선과 악으로, 누군가는 미(美)와 추(醜)로, 또 누군가는 이(利)와 해(害)로 나누지만, 이제 그에게 세상은 오직 적과 동지로 구분된다. 물론 다분히 정치적인 구분이다. 적이란 바로 타인이다.


이제 수색을 시작한다. 파보아야 할 곳이 결코 만만치 않다. 몇몇 군데를 파보았지만 이상이 없다. 적에 대해 생각에 잠긴다. 그가 아직 적을 본 적이 없으니 그가 적을 모르듯 적도 그를 모를 것이다. 그 적은 한 마리일 수도 있고 무리를 이루고 있을 수도 있다. 적이 떠도는 중인가 아니면 그 자신의 굴을 만들고 있는가? 만약 적이 떠도는 중이라면 혹시 그와 의사소통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적이 정말로 그가 있는 데까지 뚫고 들어오면, 그는 적에게 양식을 조금 나눠 줄 수도 있다. 그러면 적은 가던 길을 계속 갈 수도 있다. 적이 그보다 더 예민한 감각을 지녔을 수도 있고, 그보다 원기 왕성한 존재일 수도 있다.


가까이에서 서로의 기미를 느낀 후, 바로 눈앞에 나타나면 둘 다 까무러치듯 정신을 잃을 것이다. 누가 먼저고 누가 나중일 것 없이, 아무리 배가 이미 잔뜩 불러 있더라도, 새로운 종류의 허기에 사로잡혀 상대를 향해 발톱과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격렬한 싸움 중에 적이 '이게 아니다' 싶으면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줄행랑을 치겠지만, 그는 굴의 모든 길과 통로의 방향을 다 알고 있다. 구석진 모퉁이에서 적이 지나고 뒤를 방심할 때 그의 이빨은 적의 목덜미를 파고들 것이다. 만약 한 마리가 아니라 무리라면, 적들이 그를 방해한다기보다는 자신들의 작업에 골몰할 확률이 높다. 무리가 한 줌도 안 되는 먹이를 위해 오랫동안 작업을 할 리 없기 때문이다. 적들은 일부러 그가 있는 쪽으로 올 리는 만무하고, 그들이 취한 방향으로 행렬이 지나칠 것이다. 다만 적들이 굴 위를 지나치다 과중한 무게로 굴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마치 설탕물에 오무작꼬무작 줄지어 모여드는 개미 떼처럼, 원치 않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연이어 침투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강박증이다.'어, 방금 전에 세 번째를 말하지 않았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말한 세 가지는 카프카 소설 속 주인공이 겪는 끊임없는 불안감에 대한 고찰이었고, 지금 설명하려는 세 번째는 그가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생각의 작동 방식 중 하나이다. (앞서 첫 번째는 마치 돌림병처럼 퍼져나가는 생각들이고, 두 번째는 핵분열 연쇄 과정처럼 걷잡을 수 없이 증식하는 생각들이었다.) 여하튼, 그의 세 번째 생각 작동 방식은 강박증으로, 원치 않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침습하는 것이다.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만한 강박관념의 예시는 이렇다. 전기장판의 전원은 껐는지, 형광등은 껐는지, 드라이기의 플러그는 뽑았는지, 가스 밸브는 닫았는지, 욕실의 수도꼭지는 잠갔는지, 현관문은 잠그고 나왔는지 확인하는 것 등이다. 게다가 계단을 오를 때는 금색을 밟지 말아야 하고, 오르내리는 계단은 몇 개인지 세어보며, 보도블록의 선을 밟으면 안 되고 어쩔 수 없이 밟으면 특정 횟수만큼 다시 밟는다. 그리고 도서관의 책상이 지저분하면 최대한 지운다. 아주 작은 흠집이 눈에 거슬리면 종이로 가리거나 아예 책상을 바꾼다. 필기도구는 크기순으로 단정하게 줄을 맞춘다. 어떨 때는 집에서 밑도 끝도 없이 누구를 해칠 것 같다는 생각에 날카로운 물건들을 죄다 치우기도 했다.


자신도 이런 것들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강박적인 생각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행동을 해야 한다. 출근길에 지각을 감수하고 집에 다시 되돌아가서 전기장판의 전원, 수도꼭지, 형광등, 드라이기 플러그, 가스 밸브를 확인한다. 그리고 문을 제대로 잠갔는지 문밖에서 몇 번씩 돌려가며 한참을 서 있는다. 그리고 제 갈 길을 가다 미심쩍어 다시 돌아와 확실한 방법을 취한다. 이는 시각적 확신과 촉각적 확인의 방법이다. 일의 마무리 상태를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시각적인 확신을 갖는다. 그것도 부족하면 촉각으로 최종 확인한다. 손으로 빈 공간을 허우적거리며 확인하는 것이다. 전기장판은 온기를 직접 느끼는 방식, 드라이기는 플러그와 콘센트 사이의 공간을 손으로 더듬어 확인하는 방식, 가스 밸브와 수도꼭지는 손바닥이 아프도록 한쪽 방향으로 최대한 돌려놓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종교의식을 닮았다.



"마감은 잘 끝났습니다. 앞으로 점심시간까지 10분 남았으니 목표량 천 개를 채워주십시오. 마지막으로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라고 '지금 뭐 하세요, 관리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잠시 후 "저희가 목표치를 돌파했습니다, 사원님들!"이라는 힘찬 외침이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