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 기억, 그리고 후회의 감정을 정교하게 사유한다." -가디언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짧지만 강렬한 소설이다. 마지막 부분을 읽은 후, 다시 처음 부분을 다시 읽을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삶과 기억과 시간에 대해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어 말하고 있다. '줄리언 반스'는『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이전에도 맨 부커상 후보에만 세 번이나 올랐다. '전후 영국이 낳은 가장 지성적이고 재기 넘치는 작가'라는 평가를 영국뿐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받고 있는 작가이다.
줄거리
어느 날 노년의 주인공 토니에게 한 통의 편지가 온다. 편지는 한 때 연인이었던 베로니카의 어머니의 유서에 관한 것이었다. 그 앞으로 오백 파운드의 많지 않은 돈과 두 개의 문서가 남겨졌다는 내용이다. 그에게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스터리 한 유서의 내용을 알기 위해 옛 연인 베로니카를 만나면서 젊은 시절의 기억을 찾아간다. 토니는 고등학교 시절 깊은 사유를 하는 에이드리언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결손가정이었지만 남다른 뛰어남이 있던 에이드리언을 토니는 동경을 하였다. 그런 에이드리언은 대학시절 자살을 하였다. 에이드리언은 지신과 헤어졌던 베로니카와 연인관계였고, 그것에 대해 토니는 저주의 편지를 보낸 사실을 기억하게 된다. 베로니카를 소유할 수 없어 전전긍긍했던 욕망은 배신감으로 변질되었고, 지식과 교양을 갖춘 에드리언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분노와 배신감으로 바꿨다. 지나간 과거의 사건과 기억을 찾아가면서 베로니카와 에드리안 사이에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이 있다고 추측하게 한다. 그러나 그 추측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그 아이는 그녀의 어머니인 사라와의 관계에서 태어난 것이다.『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결과를 예감하지 못한 독자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친다. 스피디한 전개 속에서 성장과정과 미스터리한 요소가 긴장감을 일으키고 마지막 부분을 읽고 나서 혼란스러움에 소설의 처음 부분을 다시 읽어야만 하는 소설이다.
작가의 의도?
'거기엔 축적이 있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대한 혼란이.'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고, 책임의 범위는 어느 정도까지 정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원인이 되는 행동을 한 행위자에게서 찾는다. 에이드리언이 여자 친구의 어머니와 관계하여 사생아를 낳고 자살한 결과의 원인은 에이드리언에게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지만 작가는 일반적인 견해에 의문을 제기한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원인자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원인자와 원인자를 둘러싼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특정한 결과를 야기한다는 것을 작품에서는 '축적'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어떤 행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이 관계된 모든 사람에게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줄리언 반스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관계의 복잡한 축적이 결과에 대한 영향을 준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고, 누구 하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현실주의자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에게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회피를 하는 사람도 있다. 토니는 '현실주의'를 뛰어넘어 삶에 직면하려는 용기를 보여준다. 토니는 옛 연인 베로니카와 헤어지고 에이드리언의 자살 이후 사십여 년 간 평범하게 살아왔다. 평범한 삶을 살던 그에게 큰 파문을 던진 것은 유산으로 남겨진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다. 처음에 그의 마음을 지배했던 감정은 왜 베로니카 어머니가 자신에게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남겼을까 하는 의혹이었다.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추적해가면서 그가 사십 년여 년 동안 외면했던 진실을 직면하게 된다. 베일이 하나하나 벗겨지면서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편한 진실과 대면한다. 진실이 불편하다고 해서 이를 외면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실을 대면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떳떳함만은 잃게 된다. 이는 저주받은 운명을 끝까지 추적해 마침내 대면하고야 마는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살고 있다는 고통스러운 불편한 진실을 끝내 마주하려고 하는데 그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둘러싼 가혹한 운명과 진실을 피하지 않고 대면하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 앞에 떳떳하고자 하는 심리적 동인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다.'
'역사는 패배자들의 자기기만이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는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이다. 흔히 언급되는 역사에 대한 정의뿐 아니라 등장인물들 나름대로 내린 정의가 나온다. 흔히 언급되는 역사에 대한 정의는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다."라고 토니가 말하고, 이에 대해 역사교사 헌트는 "토니가 한 말이 패배자들의 자기기만이다." 일수도 있다는 말로 응수하고, 에이드리언은"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라고 말한다. 토니와 헌트 선생, 그리고 에이드리언이 역사를 보는 관점이 다르다. 에이드리언은 역사를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문서가 만나는 순간 생성된다는 말을 한다. 60이 넘은 토니의 부정확한 기억에 불충분한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라는 문서가 만나 그려지는 이야기임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기록 또는 기억이 완벽하게 당시를 재현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흐른 후 사람들은 조각난 기록과 기억을 바탕으로 당시를 조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이드리언은 그렇게 조합된 당시의 모습은 사실이 아니라 확신이라고 표현한고 있다. 이 소설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상통한다. '역사의 허구성'이라는 복선을 통해 '기억의 왜곡'을 암시한다. 중년이 되어 첫사랑을 다시 만났을 때 그녀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다르다면?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그녀의 기억 속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이해하는 과정에서 기억과 진실 그 사이를 헤맬 것이다. 이해되지 않고 기억과 진실 사이에서 줄다리기만을 할 수도 있다. 기억이란 사건과 시간을 합친 것과 동등하다. 시간의 흐름 속에 기억은 왜곡된다. 시간은 정착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용해제에 가깝다. 그리고, 삶은 우연과 무상함으로 점철되어간다. 전혀 의도치 않은 것이 자신의 인생과 주변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에이드리언은 인생을 '바란 적 없었던 선물'이라 하고, "카뮈는 자살이 단 하나의 진실한 철학적 문제라고 했어'라는 말을 통해 '거부할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눈치도 없이 가늘고 길고 평탄한 삶을 살았던 토니의 삶,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나 자신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 에이드리언의 삶.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이었다고 감히 판단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