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1
Come on, come on
You think you drive me crazy
Come on, come on
You and whose army?
You and your cronies
Come on, come on
Holy roman empire
Come on if you think
Come on if you think
You can take us all on
You can take us all on
You and whose army?
You and your cronies
We ride tonight
We ride tonight
We ride tonight
Ghost horses
Ghost horses
Ghost horses ...
'그을린 사랑'의 도입부에 흘러나오는 라디오 헤드 노래이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You and Whose Army? 누구의 군대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삭발당하는 한 아이가 화면을 노려본다. '드니 빌뇌부' 감독의 또 다른 영화'시카리오'의 초반부 국경 통과 장면처럼 사람을 압도한다. 보는 사람의 멱살을 잡고 영화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 전쟁을 왜 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아이의 알 수 없는 원망이 느껴진다.
들어가는 말 : 오이디푸스 왕
테베 왕 라이오스와 그의 부인 이오카스테는 자식이 없어 델피의 신전에서 자식에 대한 신탁을 듣는다. 아들을 낳으면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다!"라는 이상한 신탁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들을 낳게 된다. 라이오스와 이오카 테스는 그의 아이를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양치기에게 산에 가서 죽이라고 시킨다. 그런데, 양치기는 아이를 죽이지 못하고, 아이의 발을 묶어 나뭇가지에 묶어둔다. 그곳을 지나가던 코린트의 목자가 나무에 묶여있던 아이를 발견한다. 때마침 코린트의 왕 폴리 보스가 자식이 없다는 것이 생각나자 아이를 폴리 보스에게 데리고 간다. 왕은 기뻐하여 그에게 오이디푸스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아들로 삼는다. 그리고,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입단속을 시킨다. 오이디푸스는 훌륭하게 잘 자랐다. 그런데 소문에 자신이 폴리 보스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된다. 머리가 혼란하여 델피의 신전에 가서 묻게 된다. "나는 폴리 보스의 아들이 맞습니까?"라고 말했더니 "뼈를 준 아비를 죽이고, 살을 준 어미를 짝으로 삼는다!"라고 여사제가 말했다. 그는 그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코린트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델피의 신전에서 내려와 델피, 코린트, 테베가 만나는 삼거리에서 어떤 노인의 일행과 만나게 된다. 테베로 가는 삼거리에서 서로 비키라는 사소한 시비가 붙었다.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혔던 오이디푸스는 그 노인과 일행을 죽이게 된다. 그런데, 그 노인은 그를 낳아준 테베의 왕인 라이오스이었다. 라이오스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탁을 받으러 가던 중이었다. 스핑크스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퀴즈를 내어 맞추지 못하면 죽였으므로 테베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오이디푸스는 문제를 모두 맞추고 스핑크스는 허망하여 절벽에 떨어져 죽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테베 사람들의 존경 속에 테베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라이오스의 부인인 이오카스테스를 부인으로 맞는다. 자신에게 내려졌던 신탁이 다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그는 그 저주에서 풀려났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주요 장면
어머니인 '나왈 마르완'은 캐나다의 한 수영장에서 무언가에 충격을 받는다. 이란성쌍둥이 중 한 명인 '잔느'가 묻는 말에도 눈에 초점을 잃고 정신이 나간듯하다. 할 말을 잃는다.
공증인 '장르'는 비서로 18년을 일한 그녀를 위해 유언장을 작성하고, 쌍둥이인 '잔느'와 '시몽'에게 유언장을 개봉한다. 유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관에 넣지 말고, 나체로 기도문 없이 묻어주세요. 세상을 등 질 수 있도록 시신은 엎어놓아 주세요. 비석은 놓지 말고, 이름은 새기지 마세요.' 그러고 나서 잔느에게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시몽에게는 형에게 보내는 편지를 부탁하고, 편지가 전달되면 '비석을 세우고, 내 이름을 새겨도 된다.'라고 유언했다.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하기보다는 잔느에게는 아버지를, 시몽에게는 형을 찾는 것을 유언함으로써 엄마의 인생을 찾도록 하였다.
수학 조교로 일하는 잔느는 '아버지가 살아있을 수 있다', '또 다른 형제가 있다'라는 두 가지 명제를 가지고 사진 속 흔적을 찾아 레바논으로 간다. 감독이 잔느를 수학자로 쓴 이유는 혼란스러운 세계에 1+1을 2라고 과연 얘기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하는 것 같다.
나왈의 종교는 기독교인 반면 그녀가 사랑하는 와합은 이슬람교도이다. 가족에게 사랑이 발각되어 와합은 형제들에게 총에 맞아 죽는다. 나왈은 명예살인을 당하게 되는 순간 할머니의 도움으로 목숨은 구한다. 그러나, 새로운 생명은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발뒤꿈치에 송곳으로 점 세 개를 찍어 표시해둔다. 그 후로부터 나왈은 아이를 꼭 다시 찾겠다는 신념으로 살아간다.
읽고 생각하는 것을 배워 이 불행을 벗어나라는 할머니의 말을 따라 시내에 있는 삼촌의 집에서 대학교를 다닌다. 그러던 중 그곳이 공격을 받자 삼촌 가족은 산으로 피신을 하나 나왈은 아이를 찾아 고아원으로 간다. 찾아가는 과정에서 쌍둥이의 현재 시점과 나왈의 과거 시점이 교차되며 나왈의 과거가 소환된다.
버스로 이동하던 중 기독교 민병대가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질을 하고 불태워버린다. 나왈은 기독교 신자라는 이유로 목숨을 건진다. 이슬람 사람을 만날 때는 히잡을 쓰고 기독교 민병대를 만나면 십자가를 보이는 그녀에게 종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녀는 분노할 수밖에 없고, 암살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남자와 그녀의 아이 말고는 없다.
그녀는 기독교 민병대 지도자의 아들의 불어 가정교사로 위장 취업하여 지도자를 암살한다. 그 대가로 감옥에서 15년을 지낸다. 감옥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는다. 감옥에서 '노래하는 여인'으로 불린 72번 수감자는 모진 고문 속에서도 꼿꼿이 서서 놈들을 쳐다봤다. 결코 굴복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문기술자로 온 '아부 타랙'으로부터 성 고문을 당해 임신을 하고, 쌍둥이를 출산한다. 버려질 운명의 쌍둥이는 간호사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 쌍둥이가 잔느와 시몽이다. 그 후 그녀는 암살을 지시했던 조직 수장의 도움으로 쌍둥이와 함께 캐나다로 이주해 간다.
형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시몽은 고아원을 공격했던 지휘관의 도움으로 형이 니자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전쟁 중이어서 입양이 안되어 전사로 길러진다. 소질이 뛰어난 '전쟁광'이 된 것이다. 니자르는 여러 달을 어머니를 찾아 헤맸다. 그는 자신의 사진을 어머니가 어디서든 볼 수 있도록 순교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던 중 고문기술자가 되어 남부 감옥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노래하는 여인'을 만난다. 그가 '아부 타랙'이다. 평생 그리워했던 아들이 고문관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쌍둥이들은 찾아 헤매었던 아버지와 형이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오열한다.
우연히 수영장에서 오른발 뒤꿈치에 점 세 개가 있는 사람을 보게 된다.
캐나다의 한 수영장에서 오른쪽 발뒤꿈치에 세 개의 점이 있는 남자를 만난다. 그는 고문관인 '아부 타랙'이다. 할 말을 잃고, 멍해진다.
평생 동안 찾아다녔단다. 그리고, 찾아냈지. 너를 내 사랑으로 감싸줄게.
기운을 내 거라. 너는 사랑으로 태어났다.
좋은 영화인 줄은 알고 있었다. 다만 힘들 거 같아서 뒤로 미루어 놓았던 영화다. 비극적인 내용을 따라갈 자신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예술이란 것이 착한 사람, 행복한 얘기만을 들려주는 아름다운 동화는 아니지 않은가?
영화는 10만 명 이상이 사망한 레바논 내전을 다룬 영화이다. 10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나왈의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쌍둥이의 현재 시점과 나왈의 과거 시점이 교차된다. 기독교인과 무슬림 간의 전쟁 속에서 나왈이라는 여성의 비극을 오이디푸스 왕의 모티브를 가지고 와 장대하게 만든 영화이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 그 기원을 찾아가는 정신적 로드무비이다. 마음의 치유라는 얄팍한 기능은 뒤로하고, 소중히 다루어야 할 사람의 생명을 종교가 이렇게까지 짓밟을 수 있을까? 가슴에는 기독교 민병대 지도자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총부리에는 마리아 상을 붙인 체 집단 살인을 한다. 그녀에겐 이젠 종교가 아니다. 분노만이 남아있다.
평생 그리워하던, 반드시 찾고야 말겠다던 사랑하는 아이가 나를 고문하던 아들이고, 지금의 쌍둥이는 그 아들의 아버지란 사실을 받아들였을 때 그녀는 오이디푸스 신화처럼 스스로 눈을 멀게 하진 않았다. 회한을 느끼며 뼛속 깊이 아팠겠지만 '너는 사랑으로 태어났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항상 사랑하리라'말하면서 아들을 품고 감싸주었다.
공증인 '장르'는 영화 속에서 '공증이란 것은 신성한 일이다'라고 말한다. 공증은 누군가의 비밀을 지켜주고, 약속을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과 닿아있다. 사랑하는 아이가 태어날 때 해주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비록 그 여정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사랑을 멈추지 않겠다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겠다는, 뜨거움이 있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