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임상 생산 완료와 시리즈 A 투자

가짜가 받아 온 투자금

by 영초이


겨우 끝낸 비임상 샘플 생산

image.png

비임상용 시료를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과정은 그야말로 처절한 사투였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한 달. 세포를 해동하여 깨우고, 단계별로 증식시켜 본 배양에 진입한 뒤, 마지막 정제 공정을 거쳐 최종 원액을 뽑아내기까지의 과정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정이었다. 생물학적 공정은 기계처럼 버튼 하나로 가속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시간 싸움에 돌입했다.


나는 팀원들과 거의 매일을 야근하며 몰아붙였다. 필요한 경우에는 교대 근무를 했고,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팀원들도 매일을 긴장하며 일을 했다. 잠이 모자라서 편의점에서 물건을 계산하다가 조는 사람도 있었다. 신입들은 눈 밑이 검게 해진 채 기계처럼 움직였다. 그들은 그 한 번의 손맛이 얼마나 참혹한 파국을 불러왔는지, 그리고 그 대가가 자신들의 워라밸을 어떻게 앗아갔는지를 말이다. 멸균복 속은 통풍되지 않는 땀으로 젖었다. 분석실에서 중간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매 순간 피가 말리는 긴장감 속에 살았다.


이렇게 생산소가 24시간 내내 웅웅 거리며 돌아가는 동안, 나는 박 박사가 옆방에서 진행하던 샘플 농축 작업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생산 공정의 구원자인 양 자재를 챙겨 들고 분주히 움직였지만, 내게 그것은 이미 죽은 데이터에 인공호흡기를 다는 행위일 뿐이었다. 내가 집중한 것은 오직 비임상에 사용할 만한 진짜 제품을 만드는 일이었다.


마침내 한 달 뒤, 기적적으로 비임상 기준 수율과 순도를 완벽히 충족하는 진짜 샘플이 완성되었다. 최종 분석 결과가 모니터에 찍히던 날, 팀원들은 환호성을 지를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팀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그대로 뻗어버렸다. 긴장감 가득했던 눈동자들이 서로를 교차했다. 그 안에는 성취감보다 드디어 이 지옥 같은 일정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은 오후 늦게 출근하기로 했다. 홍 대표가 오는 시간에 맞춰서 다들 출근하기로 했다.


다들 퇴근하고 텅 빈 엘리베이터를 통해 나오니 차가운 새벽 공기가 폐부 깊숙이 박혔다. 한 달 만에 느껴보는 평온한 공기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피곤을 억지로 이기려 때려 넣은 커피와 에너지 음료 탓인지 모르겠다. 곧장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잠시 침을 삼켰다.

"어, 이제 끝났어. 방금 다 끝났어."


한참의 침묵 끝에 수화기 너머로 짧은 한숨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어휴... 진짜 고생했네."


말은 고생했다지만,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불만이 짙게 깔려 있었다. 한 달 동안 제대로 된 데이트는커녕 전화 한 통 길게 하지 못했던 서운함이 가시처럼 돋아 있었다. 고생했다는 말보다 먼저 나온 그날 선 말투에 나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저 주말에 만나자는 약속을 잡고 통화를 마쳤다.


그저 흡연장에서 검은 하늘만 바라봤다. 오늘은 혼자 마시고 싶은 날이라 근처 작은 선술집으로 들어갔다. 어묵탕과 명란구이를 시키고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가짜가 만들어낸 시리즈A 투자

image.png


혼자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홍 대표가 그렇게 두려워하던 투자사 미팅날이 생각났다. 결과적으로는 박신규 박사가 진행했던 농축샘플은 결과적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오히려 기대 이상의 효과를 냈다.


투자사 실사 당일, 홍 대표는 맞춤 정장을 차려입고 잘 꾸민 회의실에서 투자사들 앞에 섰다. 홍 대표가 보여주는 대형 모니터 화면에는 박 박사가 밤새 가공한 데이터들이 자랑스럽게 보였다. 또한 샘플들은 박 박사의 손에서 투자자들의 손으로 옮겨졌다. 물론 이 수치들은 비임상 샘플과 동일한 기존과 결과였지만, 박 박사가 다듬은 샘플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결과였다.


본래라면 바닥을 기어야 할 수율 곡선이 인위적인 농축 과정을 거치며 마치 혁신적인 공정 개선이라도 일어난 듯 기준에 도달했다. 높은 수율과 활성을 자랑하는 수치들이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투자사 기술 고문들과 담당자들은 안경을 고쳐 쓰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눈앞의 투명한 바이알에 담긴 액체가 사실은 실패한 배치를 억지로 쥐어짜 만든 전시용 샘플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감탄사를 연발했다.


바이알 안에는 원래 우리가 고생해서 만든 제품이 담겨있어야 했다. 그 제품은 지금 화면에 띄워진 수치를 정확히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담겨있는 제품은 한 번의 조작이 들어간 제품이었다. 최적화라는 이름으로 망가졌지만, 농축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만들어진 우리 팀에서 만든 것과는 다른 제품이었다. 실제로 이 수치들은 우리 비임상 샘플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운영은 원치 않았다.


결국 그 거짓된 샘플은 기대 이상의 전리품을 가져왔다. 실사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리즈 A 투자 유치 성공 소식이 사내 게시판을 도배했다. 3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수혈된다는 공고에 전 직원이 환호했고, 사무실은 연일 샴페인을 터뜨리는 축제 분위기였다.


이번 박 박사는 신입들을 우르르 데리고 마치 승전고를 울리는 장군처럼 회식을 나갔다. 복도를 지나가던 홍 대표는 내 자리에 멈춰 서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의 눈에는 승리자의 오만함이 서려 있었다.

"거봐, 최 팀장. 내가 뭐라 그랬어. 결국엔 결과가 모든 걸 말해주는 거야."

"자네가 고생해서 만든 진짜 샘플도 비임상 기관에 잘 보냈어."

"이제 쓸데없는 고집은 접고 긴장 좀 풀어. 나까지 긴장하게 만드니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 책상 위에는 두 권의 서류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내가 밤을 새워 기록한, 처절한 실패와 재도전의 흔적이 담긴 정직한 제조 기록서. 그리고 그 옆에는 박 박사가 작성하고 홍 대표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결재한 농축된 제품에 대한 연구노트. 수백억의 투자금이 통장에 찍히고 회사의 깃발은 정상에 꽂힌 듯 보였지만, 약하디 약한 깃대는 부실한 모래바닥 위에 꽂힌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날 나는 소란스러운 축하 회식을 마치고 다시 텅 빈 제조소로 돌아왔다. 기계는 멈췄지만, 내 귓가에는 여전히 그날의 비웃는 듯한 웅웅 거림이 환청처럼 맴돌았다. 모래성 정상 위에 꽂힌 화려한 시리즈 A 깃발이 위태로운 바람에 흔들리는 듯했다.




선술집에서 나오면서

image.png



생각에 잠겨 술을 마시다 보니 소주는 벌써 두 병째였다. 이제는 일어나야 할 시간. 가게 밖으로 나오니 벌써 세상이 밝아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반이었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직하게 땀 흘린 우리 팀의 진짜 샘플은 이름도 없이 비임상 센터로 보내졌다. 결국 비임상 샘플 생산은 성공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보인 것은 우리가 만든 진짜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 잘해 나갈 수 있을까?"


회사는 지금 박 박사의 농축된 거짓이 가져온 화려한 결과에 열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거짓의 단맛을 알아버린 홍 대표가 다음번엔 또 어떤 무리한 지시를 내릴지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집으로 향하는 보도블록 틈새로 위태롭게 솟아 있는 잡초 하나가 눈에 밟혔다. 척박한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뿌리를 내리려 애쓰는 그 모습이 원칙을 붙들고 늘어지는 내 처지 같았다.


집 앞 현관문에 서서 잠시 멈췄다. 도어록을 누르는 손가락 끝에 미세한 망설임이 스쳤다.


"진짜는 보내졌어. 일단은 그거면 된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어두운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하지만 차가운 거실 공기 속에서 나는 앞으로 맞이할 다음 단계는 훨씬 더 가혹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시리즈 A의 축제는 오늘 시작되었다. 이제 우리가 약이 실제 동물의 몸속에서, 그리고 머지않아 사람의 몸속에서 증명되어야 하는 시험대 위에 오를 것이다.


나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눈을 감았다. 지독한 피로가 밀려왔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그렇지만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 한다.

자고 일어나면, 그 다음 단계를 위해 나는 다시 숨 가쁘게 달려야 한다.



이전 20화조작된 기록지와 흙 묻은 발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