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인생의 중간정산 시간이다

2부 | 마흔이 되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by 영초이

마흔은 중간 정산의 나이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사라진 것들과 아직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세어보게 된다. 인생의 전반전을 마치고 잠시 멈춰 서서 행하는 일종의 중간정산이다.


과거에는 시험 점수나 장학금처럼 비교의 잣대가 명확했고, 그 기준은 충분한 노력으로 분명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흔이 되면 그 기준은 훨씬 복잡해진다.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 요소들이 평가 항목에 포함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기준은 점점 복잡해진다. 가족의 안정, 건강, 만족감처럼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 것들이 평가 항목에 끼어든다. 그럼에도 결과는 더 분명해진다. 누가 앞서고 있는지 연봉이나 직함, 자산 등이 객관적인 숫자로 여실 없이 드러난다.




A timer records a competitor's score during the Alpha - PICRYL (PDM 1.0)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전통이 있었다. 성적이 좋은 상위 30명의 이름과 점수를 모두가 다니는 복도에 대자보에 붙인다. 명예의 전당과 같으면서도 묘하게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전통이었다. 나도 '공부 좀 한다'는 소리를 듣던 때라, 당연히 대자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줄 알았다. 그런데 첫 시험에서 거의 꼴찌 언저리로 밀려났을 때의 충격은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대자보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목표였다. 분명한 목표로 잠을 줄이고 문제집을 파고드는 노력으로 메울 수 있었다. 결국 두어 번 대자보에 이름을 올리는 성과를 얻었다. 그 격차는 노력으로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직장 생활을 3년 차 정도 했을 때부터 메꿀 수 없는 격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 들어온 박사들은 1년에 20 편의 논문을 쓰는 괴물이거나 네이처나 사이언스에만 논문을 싣는 천재들이었다. 나와 공통점은 박사 학위, 이것 밖에는 없었다. 그 격차는 내가 노력으로 메꾸지 못하는 분명한 벽이었다. 그들의 노력과 재능은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그건 연봉으로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마흔의 정산은 결이 다르다. 이미 축적된 시간들이 그 격차를 급격히 늘리고 있다. 수많은 선택과 결정들이 현재의 위치를 고정시키기 시작한다. 비교군 역시 급격히 확장된다. 직함과 연봉, 자산 규모 같은 정량적 지표는 물론이고, 가족의 안정성, 관계의 밀도, 개인의 건강 상태까지 모두가 비교의 대상이 된다.


20대와 30대에는 노력으로 뛰어넘을 수 있던 격차들이, 마흔에서는 명확한 비교군 안에서 선명한 현실의 벽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 격차는 더 이상 단기간의 노력으로 뒤집기 어려운 성질을 가진다. 나름대로 성실히 살아왔고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섰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예상치 못한 계기로 균열이 생긴다. 친구가 샀다는 포르셰 인증 사진과 누가 서울 자가를 샀다는 카더라 통신까지. 그 명확한 소식은 내가 서 있는 위치를 평가하는 계기가 된다.


물론 비교는 피할 수 없다. 사람은 어쨌든 비교하고 판단한다. 문제는 비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이다. 마흔의 시점에서 중요한 변화는 여기에 있다. 어떤 비교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어떤 지표는 애초에 나의 목표와 무관하다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시기다. 남의 속도에 맞춰 선을 그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와 그렇지 않은 영역을 구분할 수 있다.


결국 인생의 중간에서 정산의 목적은 과거를 평가하고 후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있다. 시간, 에너지, 관계, 집중력을 포함해 이 모든 것은 유한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선택해야 한다. 수많은 비교 항목들 사이에서 나의 자원을 어디에 배분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더욱 안정적인 삶을 구체화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더욱 도전적인 삶을 꿈꿀 것이다. 나는 더욱 도전적인 삶을 살아볼 생각이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인가?


20대와 30대에는 대부분의 선택이 가역적이었다.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방향을 수정할 수 있었다. 직업을 바꾸고, 관계를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했다.


하지만 마흔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동안의 선택들이 누적되면서, 일부는 더 이상 되돌리기 어려운 상태로 굳어진다. 커리어의 방향, 관계의 구조, 생활의 기반이 하나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아예 신입으로 시작하는 용기와 가족의 희생을 감당할 수 있냐는 개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너무 버거운 선택이기도 하다. 마흔의 고민은 막연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이 아니라,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최적의 선택을 찾는 과정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내 손에 쥐어진 것들은 생각보다 많다. 경험과 지식, 그리고 어느 정도 모인 자금 등 강력한 무기들은 마흔 이후 인생을 새로 설계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마흔에는 현실적인 고민을 한 번쯤 해봐야 한다. 되돌릴 수 있는 선택과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 명확하게 갈리는 구간 중 하나이다. 이 시기를 지나면 선택의 폭은 더 줄어들고, 반대로 감당해야 할 책임은 더 커진다.


결국 마흔은 중간 정산을 통해 방향을 정밀하게 조정할 수 있는 구간에 가깝다.

이전에는 내 총을 고르고 연습사격을 해봤다면, 이제는 내 총을 더 잘 쏘기 위해서 미세 조정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내가 정한 목표를 정확히 보고, 결국 맞출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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