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부작용은 3세대에게까지 영향을 미칠수 있다.
약 부작용은 약을 복용한 환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 수 있다.
약을 먹은 나 자신은 아무런 부작용이 없었다. 그런데 이 약의 부작용이 내 자식들에게 나타난다면 가장 큰 비극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약들은
내 자식의 건강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내 손주들에게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이 약은 디에틸스틸베스트롤(Diethylstilbestrol, DES)이다. 이 약이 벌인 충격적인 사태는 임산부와 그 뒷 세대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1940년대 당시 의학계에서 임신은 지금보다 훨씬 더 불안정한 사건이었고, 유산과 조산은 흔했다. 이 시기에도 에스트로겐이 임신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고, 임산부에게 에스트로겐을 보충해 주면 임신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에스트로겐을 투약하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에스트로겐과 같은 작용을 하는 합성 에스트로겐을 만드는 것이 더 많은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합성 에스트로겐이 바로 DES이다. 실제로 임산부에게 투여했을 때 유산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고 당시의 임상적 기준에서는 효과가 있는 약으로 인식되었다.
DES는 무모하게 실험적이고 규제를 어긴 약도 아니었다. 오히려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였다. 임신유지와 관련한 에스트로겐을 모방하는 약은 당연히 임신을 유지하는데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DES를 복용한 임산부들에게서 즉각적인 심각한 부작용은 관찰되지 않았다. 임신은 무사히 유지되었고 아이는 태어났다. 태어난 아이들도 전혀 문제 없어보였다. 그래서 이 약은 오랫동안 안전하다고 여겨졌다. 1938년부터 1971년까지 엄청난 양의 약이 처방되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DES의 독성은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급성 부작용이나 단기 독성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DES를 복용한 임산부 1세대에서는 뚜렷한 문제가 관찰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아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 특히 여성들에게서 극히 드문 질환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DES는 강력한 내분비 교란 물질이었다. 태아의 발생 과정에서 에스트로겐 호르몬 신호를 교란했고, 그 영향은 성장 과정 내내 잠복해 있다가 성인이 된 이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이 약의 가장 잔인한 특징은 독성이 약을 복용한 사람에게서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제는 다음 세대에서, 그것도 수십 년의 시간차를 두고 드러났다. 단기 독성 시험이나 일반적인 임상 시험으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위험이었다.
태아기 동안 DES에 노출된 이들, 이른바 DES daughter로 불린 2세대 여성들에서 자궁 및 질 기형(T자형 자궁), 질 선증(Adenosis), 질 투명세포 선암(Clear cell adenocarcinoma)과 같은 이상이 확인되었다. 이들은 불임, 조산, 자궁외 임신 위험 증가 등 현저한 생식능력 저하를 겪었으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DES의 영향은 3세대, 즉 그들의 자녀에게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네덜란드 암 연구소(Netherlands Cancer Institute) 연구팀은 태아기에 DES에 노출된 여성에게서 태어난 남아와 그렇지 않은 남아를 비교했을 때 DES에 노출된 집단에서 요도하열증 발생 위험이 유의하게 증가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DES는 복용한 당사자에게는 문제가 없었지만 시간을 건너뛰어 다음 세대와 그 다음 세대에서 독성을 드러낸 약이었다. 이 사건은 의약품 안전성 평가가 단순히 지금 당장의 부작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사건은 흔히 규제 실패의 사례로 언급된다. 하지만 DES는 당시 요구되던 시험을 거쳤고 허가된 절차에 따라 사용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규제는 성인에게 단기간에 문제가 생기는지를 확인했으며 임상적으로 효과가 있는지를 평가했다. 그리고 태어난 신생아들에게 직접적인 독성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이조차도 부족했다. 그러나 태아 발생 과정에서의 호르몬 교란이라는 기전 자체의 위험성이 다음 세대가 성인이 될때까지 확인할 수 없는 위험이 있었다는 것은 인지하지 못햇다. 인지하지 않은 위험은 당연히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더욱 억울한 것은 나중에 알려졌다. DES는 임신 조산과 유산에 전혀 효과가 없었다.
NCI 보도 제목: Diethylstilbestrol (DES) Exposure and Cancer
출처: https://www.cancer.gov/about-cancer/causes-prevention/risk/hormones/des-fact-sheet
NCI =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보건원의 미국 국립암연구소
논문 제목: Benign and Malignant Outcomes in the Offspring of Females Exposed In Utero to Diethylstilbestrol (DES): An Update from the NCI Third Generation Study
출처: https://pubmed.ncbi.nlm.nih.gov/39061214/
기사 제목: DES, 3대 걸친 기형 유발
출처: https://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83
DES 이후 의약품 규제는 추상적인 원칙을 넘어 승인 절차와 평가 기준 자체를 바꾸기 시작했다.
먼저, 호르몬 및 발암 물질 규제의 강화다.
DES는 2000년에 공식적으로 인체 발암 물질로 분류되었다. 이 사례는 약물이 복용한 당사자가 아니라 다음 세대, 심지어 그 다음 세대까지 암과 생식기 기형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드러냈다. 이른바 경태반성 발암(Transplacental Carcinogen) 개념이 규제의 언어로 자리 잡게 된 계기였다. 이후 DES와 유사한 환경 호르몬성 물질과 내분비 교란 물질에 대해, 단기 독성뿐 아니라 발생독성, 생식독성, 세대 간 영향까지 포괄하는 규제가 강화되었다.
경태반성 발암: 임신부가 발암물질에 노출되었을 때, 이 물질이 태아에게 전달되어 태아기 또는 출생 후 암을 유발하는 위험을 얘기한다.
둘째, 의약품 승인 절차의 강화다.
DES는 이미 1950년대에 유산 예방 효과가 없다는 결과가 보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처방이 지속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FDA는 신약 승인 과정에서 안전성 뿐만 아니라 유효성을 반드시 데이터로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강화했다.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나 임상적 기대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았고 약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증거가 승인 요건이 되었다. 특히 임산부 대상 약물에 대해서는 기준이 한층 더 엄격해졌다. 태아에게 미치는 세대 간 영향을 고려해 임상시험 설계와 시판 후 부작용 모니터링에 이전보다 훨씬 높은 기준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들은 효과가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약을 허용해왔던 시대가 끝났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DES 이후 의약품 규제는 생식독성과 발생독성은 독립적인 평가 항목으로 자리 잡았고, 단기 시험만으로는 안전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규제는 사후 수습이 아니라 예측과 예방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DES와 탈리도마이드 같은 사건들이 쌓이면서 현대 의약품 규제의 뼈대가 형성되었다.
최근에도 DES 사례는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작동 원리와 장기적 영향이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기술 앞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가 된 것이다. 약효에 대한 설명 가능성과 전 생애주기 관리 규정은 모두 이 DES 사례에서 얻은 답변이다.
이 사건이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단순하다.
규제의 역할은 기술의 약속을 믿는 데 있지 않다. 그 약속이 틀렸을 때 누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를 미리 묻는 것에 있다.
DES의 대가는 약을 복용한 사람이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이들이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