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안전한 수치가 만든 비극: TGN1412 사고

1상 임상시험 중 참가자 전원 장기 부전 발생

by 영초이
비임상시험에서 안전하다고 해서 사람에게도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에게 처음 투여되기 전, 약은 쥐와 토끼, 비글 같은 중소형 동물부터 돼지와 원숭이 같은 대형동물까지 수많은 비임상 시험을 거친다. 이 단계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는 안전하다는 결론을 향해 정교하게 쌓인다. 하지만 동물은 인간의 몸을 완벽히 흉내 내지 못한다. 특히 면역계처럼 증폭과 연쇄 반응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에서는 작은 자극이 전혀 다른 결과로 폭발할 수 있다. 그래서 첫 투여는 원래 가장 조심스러워야 하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는 이 질문이 충분히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동물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약은 한 명씩이 아니라 모든 시험 참여자에게 동시에 투여되곤 했다. 안전성을 확인하는 실험에서 이러한 과감한 방법은 가장 위험한 선택이 되었다. 2006년 런던에서 이러한 위험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TGN1412의 임상 1상 진행 중 발생한 사건이었다.




유망 바이오 기술에서 규제 혁신이 되기까지

TGN1412는 2000년대 초 바이오의약품 개발 붐 속에서 등장한 신약 후보물질이었다. 독일의 테제네로(TeGenero Immuno Therapeutics)는 면역 반응을 조절해 만성 림프구 백혈병과 류마티스 관절염을 치료할 수 있는 차세대 치료제를 목표로 했고, 그 핵심이 바로 TGN1412였다. 이 약물은 면역세포 표면의 CD28 수용체를 직접 자극하도록 설계된 단일클론 항체였다.


비임상 데이터 역시 문제 없어 보였다. 쥐, 개, 원숭이 등 여러 동물 모델에서 반복투여 독성시험이 수행됐고, 특이적인 독성 반응은 관찰되지 않았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무독성 최대 용량(NO AEL)이 산출됐고, 이를 인체 등가 용량(HED)으로 환산해 임상 초회 최대 권장 용량(MRSD)이 설정됐다. 당시 기준으로 TGN1412는 규정을 충실히 따른 그리고 문제 없어 보이는 모범생 후보물질이었다.






사건의 발생: 첫 투여가 재난이 되다

드디어 2006년 영국에서 건강한 지원자 6명을 대상으로 TGN1412의 제1상 임상시험이 시작됐다. 목적은 치료 효과가 아니라, 사람에게 처음 투여했을 때의 안전성 확인이었다. 투여 용량은 원숭이 실험에서 안전하다고 확인된 용량의 약 500분의 1 수준이었다. 이 수치는 계산상 충분히 보수적이었다. 다시 말해, 용량을 정하는 과정에서 숫자나 수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투여 방식은 당시로서는 특별할 것 없는 절차였다. 여섯 명의 피험자가 같은 공간에서 순차적으로 주사를 맞았다. 피험자마다 2분 내외의 짧은 시간 간격으로 모두에게 약물이 투여됐다. 한 명의 반응을 충분히 관찰하기도 전에 다음 피험자의 몸에 약이 들어갔다. 이 시점까지도 아무도 위험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투여 직후 상황은 급변했다. 피험자들은 급격한 발열과 오한을 호소했고, 혈압은 떨어지고 심박수는 치솟았다. 전신에 염증 반응이 퍼지며 폐, 신장, 간, 심장 기능이 빠르게 악화됐다. 즉각 응급조치에 들어갔지만, 상황은 이미 통제 범위를 벗어나고 있었다. 몇 시간 만에 임상시험 시설은 사실상 중환자실이 됐다. 여섯 명 중 두 명은 사망 직전까지 상태가 악화됐고, 한 명은 의료기기에 의존해야 했다. 나머지 세 명 역시 중대한 장기 손상을 겪었다. 이 모든 일은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졌다.


이후 밝혀진 직접적인 원인은 사이토카인 폭풍이었다. TGN1412는 면역세포를 강하게 활성화시키는 기전을 가진 약물이었고, 이 자극은 인간의 면역계에서 통제되지 않은 연쇄 반응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이런 반응이 동물실험에서는 관찰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원숭이의 CD28 수용체는 인간과 구조적으로 유사했지만, 인간 T세포는 이 자극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했다. 종 간 차이로 인해 동물 모델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위험이 인간에서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고를 결정적으로 키운 것은 투여 전략이었다. 인간에게 처음 투여되는 약물임에도, 단계적 관찰 없이 전원에게 짧은 시간 내 투여가 이뤄졌다. 위험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위험을 동시에 증폭시키는 구조가 선택된 셈이다. 만약 단 한 명에게만 먼저 투여하고 충분한 관찰 기간을 가졌다면 이 사고의 규모는 전혀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읽어보면 좋을 글

논문 제목: TGN1412: From Discovery to Disaster
출처: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2964774/





TGN1412가 바꾼 것들

이 사건 이후, 사람에게 처음 투여하는 물질의 임상시험 기준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TGN1412의 실패가 아니었다. 이 약의 비임상과 임상 시험의 모든 과정은 당시의 규정에 부합했고 제출된 데이터 역시 요구된 기준을 충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는 발생했다. 규정 자체가 위험을 걸러내지 못했던 것이다.


가장 먼저 바뀐 것은 임상 초회 용량을 정하는 기준이었다.

기존에는 반복투여독성시험에서 도출된 투여량을 바탕으로 첫 투여 용량이 설정되었다. 하지만 TGN1412는 극히 낮은 용량을 단 한 번 투여했을 때도 치명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이에 따라 규제기관은 투여용량을 결정하는 것은 독성의 상한선이 아니라, 생물학적 반응의 시작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렇게 도입된 개념이 바로 최소 예상 생물학적 효과 용량 (Minimum Anticipated Biological Effect Level, MABEL)이다. MABEL은 독성이 나타나지 않는 최대 용량이 아니라, 이 약이 인간에서 의미 있는 생물학적 신호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는 최소 용량이다. 단순히 약물의 무게가 아니라 약물이 어떤 경로를 통해 체내 반응을 자극하는지를 검증해야 했다.


두 번째로는 처음 인간에게 투여하는 임상시험 디자인이었다.

TGN1412 사고 이전에는 1상 임상시험에서 모든 피험자에게 짧은 간격으로 동시에 투여하는 것이 드물지 않았다. 이는 TGN1412 사고에서 보듯 첫 투여의 위험을 최대화하는 구조이기도 했다. 이후 고위험 약물과 면역계에 작용하는 약물에 대해서는 감시 투여 (Sentinel dosing) 혹은 코호트 내 순차 투여(Sequential dosing within cohorts)가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한 명 또는 극소수에게 먼저 투여하고, 충분한 시간 동안 반응을 관찰한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이로써 약물의 위험이 있더라도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을 제시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첫 투여하는 약물에 대한 리스크 관리였다.

규제기관이 더욱 깐깐하게 바뀐 지점이었다. 평균적인 안전성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상정하는 질문이 규제의 일부가 되었다. 사람에게 처음 투여하는 물질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해졌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인간 최초 (First-in-Human, FIH) 임상시험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며 훨씬 보수적인 접근을 요구하게 된다.


읽어보면 좋을 글

미국 규정: Estimating the Maximum Safe Starting Dose in Initial Clinical Trials for Therapeutics in Adult Healthy Volunteers
출처: https://www.fda.gov/regulatory-information/search-fda-guidance-documents/estimating-maximum-safe-starting-dose-initial-clinical-trials-therapeutics-adult-healthy-volunteers

유럽 규정: Strategies to identify and mitigate risks for first-in-human and early clinical trials with investigational medicinal products - Scientific guideline
출처: https://www.ema.europa.eu/en/strategies-identify-mitigate-risks-first-human-early-clinical-trials-investigational-medicinal-products-scientific-guideline


이 사건 이후 TGN1412는 오랫동안 실패한 약물로 남아 있었다. 원개발사였던 테제네로는 파산했고, 약물 개발도 중단됐다. 그러나 이 물질 자체가 완전히 폐기된 것은 아니었다. TheraMAB이라는 러시아 바이오텍에 권리를 양도하였고, TAB08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류마티스 질환에 대한 임상시험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는 연구 목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는 TGN1412가 약으로는 실패했지만, 물질 자체가 완전히 폐기되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의약품 개발은 언제나 미래를 다룬다. 아직 누구도 경험하지 않은 물질을, 처음으로 인간의 몸에 들이는 일이다. 그래서 1상 임상시험은 어떤 선택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단계다.


TGN1412는 실패한 약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숫자와 계산이 맞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첫 투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 사건은 오늘날 우리가 첫 투약을 훨씬 더 조심스럽게 시작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1상 임상은 지금도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무거운 단계로 남아 있다. 그 침묵 속에는, 인간에게 처음 약을 투여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경고가 담겨 있다.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은 약물이 작동하는 기전에 대한 깊은 이해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가정하는 상상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임상 용어 설명

NOAEL: 시험 대상(동물)에게 약물을 투여했을 때, 생물학적이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독성 반응 또는 부작용이 관찰되지 않는 최대 용량을 의미함. 독성학에서 안전한 용량의 범위를 설정하는 가장 기초적인 지표가 됨.

HED: 동물실험에서 얻은 데이터(주로 NOAEL)를 바탕으로 인간에게 적용했을 때 동일한 반응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용량으로 환산한 수치임. 단순히 체중뿐만 아니라 종간의 대사 속도나 체표면적 차이 등을 과학적으로 계산하여 산출함.

MRSD: 신약을 인간에게 처음 투여하는 제1상 임상시험에서 안전을 위해 설정하는 가장 높은 시작 용량임. 보통 산출된 HED 값에 10배 이상의 안전 계수(Safety Factor)를 나누어 실제로는 훨씬 낮은 용량부터 투약을 시작하도록 설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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