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치적 압박이 어떻게 약을 처방하게 했는가
2020년 초, 전 세계가 COVID-19이라는 전례 없는 전염병으로 인해 공포와 혼란 속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치료제가 전무하던 팬데믹 초기에는 당장 쓸 수 있는 무언가가 간절했다. 그러던 중 하나의 오래된 약이 갑작스럽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당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약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 약은 신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 발언은 검증되지 않은 희망이 어떻게 과학적 규제 시스템을 뒤흔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또한 규제의 중요성과 제약 시장의 신뢰성을 다시 묻게 만드는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Hydroxychloroquine)이라는 약이 있었다.
COVID-19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되던 초반, 소규모 관찰 연구와 시험관 실험 결과들이 잇따라 발표되었다.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이 중 프랑스의 디디에 라울트(Didier Raoult) 교수팀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 환자의 바이러스 수준을 낮춘다는 소규모 연구를 발표하며 기대를 모았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본래 말라리아와 류마티스 질환 치료제로 수십 년간 사용되며 안전성이 입증된 약물이었다.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일부 소규모 관찰 연구와 시험관 실험 결과가 바이러스 억제 가능성을 보이자 대중의 기대는 폭발했다.
일부 정치인과 유명 인사들의 발언은 그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특히 최고 권력자의 강력한 지지는 과학적 근거가 성숙하기도 전에 이 약을 기적의 치료제로 둔갑시켰다. 이미 승인된 안전한 약이라는 명분은 복잡한 임상 시험 절차를 성가신 장애물처럼 느끼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냉정한 데이터보다 정치인이 주는 확신에 매달렸다. 반면 권위 있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효과 부재와 심각한 부작용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곧 데이터 출처와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해당 논문은 결국 철회되었다.
과학적 검증이 끝나기 전,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긴급사용승인(EUA)이라는 이름으로 실제 임상 현장에서 표준 치료처럼 처방되기 시작했다. 규제 기관이 과학적 판단보다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압박에 직면했을 때 내릴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처방 후 임상 데이터가 쌓이면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치료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심장 리듬 이상과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 사례가 보고되었다. 위기 상황에서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의 접근이 이미 상태가 불안정한 환자들에게 또 다른 위협이 된 것이다. 규제는 입증되지 않은 위험으로부터 환자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여야 함을 이 사건에서는 부정당했다.
결국 이 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정교하게 설계된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CT, Randomized Controlled Trial)이었다.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에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COVID-19에 대한 치료 및 예방 효과를 전혀 입증하지 못했다. 이후 대부분의 나라에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긴급사용승인을 철회하면서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사건으로 바뀐 규제는 안타깝게도 없다. 다만 제약계에서 이번 사건을 통해 팬데믹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한 전례를 남겼다.
먼저 긴급사용승인(EUA)의 기준이 강화되었다.
과거에는 팬데믹 같은 긴급 상황 시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같이 효과가 있을 가능성만으로도 승인이 가능했다. 다만 이 사건 이후 최소한의 입증된 근거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졌다. 특히 승인 이후에도 대규모 무작위 대조 임상 결과를 실시간으로 반영하여, 효과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즉각적으로 승인을 철회하는 프로세스가 정교화되었다. 실제로 FDA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EUA를 승인했다가 데이터가 축적되자 빠르게 철회하며 규제의 유연성과 단호함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또한 실사용 데이터(RWD, Real World Data)의 검증과 객관성 확보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팬데믹 초기에는 정식 임상 데이터가 부족해 실제 진료 현장의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임상 데이터 같은 가공되지 않은 대규모 데이터의 신뢰성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가 핵심 규제 과제로 떠올랐다. 이후 규제 기관들은 데이터의 출처와 분석 알고리즘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지침을 강화했다.
가장 큰 변화는 제약 규제의 독립성 보호였다. 정치적 수사가 과학적 판단을 앞지르는 상황을 막아야 했다. FDA와 같은 주요 기관들은 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마련되기 전까지는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승인을 유보하겠다는 입장을 강력히 표명했다. 이는 제약 시장에서 규제 기관의 권위가 정치적 논리가 아닌 객관적 데이터에서 나온다는 점을 재확인한 결과였다.
팬데믹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도 치료 효과를 판단하는 기준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데이터가 부족할 때 필요한 것은 신의 선물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냉정한 질문과 객관적인 검증 시스템이었다.
급하다고 해서 과학의 순서를 건너뛸 수는 없다.
특히 확인되지 않은 이론과 사회적 압박이 규제를 억압할 수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