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왜 너야?
스카우트 얘기를 여자친구에게 꺼낸 건 나중이었다. 민정이가 부엌에서 늦은 저녁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금요일 퇴근 후 함께 음식을 해 먹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우리 둘의 루틴이었다. 프라이팬에서 삼겹살의 기름 튀는 소리가 났고 나는 물을 한 컵 따라 마시며 괜히 근처를 서성거렸다.
"민정아, 이번 주에 스카우트 연락 하나 받았어."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저번에 연락 왔던 중견 회사에서?"
"아니, 다른 데서."
그제야 뒤를 돌아봤다.
"어딘데?"
"응. 학회에서 만났던 사람이 보자고 해서 봤어."
"학회?"
그녀의 말끝이 올라갔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홍세진 교수인데, 같이 일해보자고."
그녀는 그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교수랑?"
"응."
"학교로 가라는 거야? 교수님이 되려고?"
"그건 아니고, 창업한 회사가 있어."
그녀는 프라이팬 불을 줄이고 팔짱을 낀 채 나를 봤다.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흥미도 기대도 아니고 계산이 시작될 때 나오는 얼굴이었다.
"그럼 지금 회사는?"
"계속 다니는 건 아니고."
"아, 이직이네."
단어 선택이 정확했다. 스카우트도, 제안도 아니었다. 이직.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결정은 안 했어."
"당연히 안 했겠지."
그녀는 한숨처럼 말을 뱉었다.
"그래서 뭐래?"
"뭘?"
"조건은 아직 얘기 안 해봤어?"
그 질문은 날카로웠다기보다는 아주 실용적이었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조건 얘기는 아직 안 했고. 일단 같이 얘기해 보자고."
"그 사람은 유명한 사람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그럼 그 사람 회사는 유명해?"
"이제 다음 달에 차리는데, 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고개를 젓지도 않았다. 대신 아주 현실적인 질문을 던졌다.
"근데 왜 너야?"
"내가 좀 잘한다고 소문났나 봐."
"장난치지 말고."
"연구 말고 다른 걸 해본 사람이 필요하대."
이렇게까지 정색할 줄을 몰랐다.
"너 지금 회사에서 자리 괜찮잖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팀에서도 인정받고 있고."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응."
"그럼 왜 굳이?"
그 질문 앞에서는 준비해 둔 말이 없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최대한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 회사에서는 내가 잘하는 걸 계속 잘하면 돼. 근데 그쪽에서는 내가 모르는 걸 계속 만들어야 할 것 같아."
그녀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네 입장이지.”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 유명한 교수고 너는 직원이야. 지금은 좋게 말해도, 나중에도 그럴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그 말은 차가웠지만, 틀리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봉은?"
"아직 몰라. 스카우트.. 아니 이직 제안정도만 받은 건데."
"그럼 리스크가 너무 큰데."
그녀는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다만 하나하나 쌓아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그 회사가 얼마나 갈지도 모르겠어."
"근데 너 지금 회사에서 얻고 있는 것들은 다 확실한 거잖아."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고민하는 거야."
그녀는 잠시 나를 보다가 말했다.
"그럼 한 가지만 생각해 봐."
"뭔데?"
"그 제의가 없었어도 지금 회사에 계속 있을 생각이었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아마도 답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알아봐. 들떠서 움직이지 말고, 잃는 게 뭔지도 정확히 보고."
나는 웃었다.
"현실적이네."
"나는 원래 현실적이야."
그 말투에는 냉정함보다는 함께 미래를 계산하는 사람 특유의 책임감이 묻어 있었다.
그날 밤 혼자 누워서 다시 생각했다. 학회장에서 나눴던 그 대화가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지를 곰곰이 곱씹어봤다. 그 사람이 했던 말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느꼈던 가능성의 감각 때문이라는 걸. 하지만 동시에 분명해진 것도 있었다. 이 제안은 더 이상 인정이 아니었다. 이미 생활, 관계, 시간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이 제의는 받아도 되는 제안이 아니라 감당해야 할 선택이 되었다.
약속 장소는 학교 근처도 회사도 아니었다. 이직 제안 후 한 달 뒤 홍세진 교수와 강남의 조용한 오피스텔 라운지에서 만났다. 창업 초기 회사들이 미팅 장소로 자주 쓰는 곳. 커피는 셀프였고 테이블은 넓었다.
"와줘서 고마워요."
그는 먼저 와 있었다. 학회장에서 보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오늘은 명찰도 없고 청중도 없었다. 대신 노트북이 열려 있었다.
"부담 없이 이야기합시다."
그가 말했다.
"오늘은 조건 얘기만 하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 오기 전까지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제안 단계라는 여지가 남아 있었는데 그 말 한마디로 모든 게 정리됐다. 이제는 여자친구와 잘 얘기가 끝났고 진짜 이야기를 나눠봐야 한다. 그는 노트북 화면을 돌려 보여줬다. 막 창업한 회사치고는 인원도 많았고, 투자 규모도 작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렇게 정리된 형태로 보니 무게가 달랐다.
"지금 우리는 세 가지가 필요해요."
그가 말했다.
"공정 이해, 스케일 경험, 그리고 GMP 현장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람."
말은 간단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책임은 분명했다.
"직함은 CMO보다는..."
내가 잠시 그를 멈췄다.
"CMO 직함보다는 초기에는 생산팀의 팀장이 더 현실적일 것 같아요."
"그보다는 제가 해야 할 일부터 얘기하고 싶습니다."
직함이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이 회사에서 내가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는지와 직결된 문제였다. 그가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고 내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 말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연구 방향은 저와 정 이사가 잡고요. 공정 설계, 외주, 생산 전략은 전적으로 맡기고 싶어요."
"단, 자금과 일정은 다 같이 논의해야 합니다."
합리적이고 당연한 선이었다. 전권은 아니지만 명목상의 자리도 아니었다. 그다음은 연봉 이야기였다. 그는 숫자를 말했다. 지금 회사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크게 놀랄 정도는 아니었지만 더 적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음 항목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입사 후 스톡옵션을 지급할 예정입니다."
예상한 말이었고 생각보다 좋은 대우였다. 그야말로 억 소리 나는 액수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음 말을 하려 했다. 스톡옵션 행사는 다른 얘기니까. 말이 나오기 전에 그는 선수 치듯이 얘기했다.
"총 4년에 걸쳐 베스팅하고, 1년 클리프를 두는 조건입니다."
교과서적인 조건이었다. 1년을 채워야 스톡옵션이 발생하고 이후 총 4년에 걸쳐 나눠서 받는 구조다.
"근무 시간은요?"
"자율입니다."
내가 빤히 쳐다보자 내 시선의 의미를 알아차린 듯 가볍게 웃었다.
"정말 자율이에요. 한 주에 최소 시간만 채우면 그 뒤는 자율입니다. 그렇지만 일이 많은 초기에는 밤낮 구분은 없을 겁니다."
조건은 거의 다 나왔다. 이제 남은 건 숫자가 아니라 태도였다.
"대표님."
"아직은 대표보다는 교수가 좀 더 편하네요. 대표님은 낯간지러워서."
진짜 부끄러워하는 모습으로 얘기한다. 이 사람에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이야. 애써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아, 네."
"교수님. 제가 지금 회사를 나오는 건 커리어상으로는 리스크가 큽니다."
"이건 도전이라기보다는... 방향 전환에 가깝고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만 여쭤보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서 얻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그는 이번엔 망설이지 않았다.
"결정해 본 경험. 성공 여부랑 상관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판단해 본 경험."
"그건 큰 조직에서는 잘 안 생깁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해본 사람은 보는 눈이 달라지죠."
그 말은 솔직했다. 과장도 미화도 없었다. 미팅은 생각보다 담담하게 끝났다. 서류는 나중에 보내주겠다고 했다. 집에 가서 천천히 보세요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회사 구경을 시켜주신다기에 감사히 따라가서 보고 왔다. 20대로 보이는 연구원들도 많이 보이고 확실히 젊은 스타트업의 활기가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인사 후 건물을 나와 저녁 공기를 마시며 생각했다.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좋다고 말하기엔 불확실했고 나쁘다고 말하기엔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내 시간과 내 에너지를 그리고 내 생활을 어디에 걸 것인가라는 선택의 문제였다.
선택을 하기 전에 나는 한 번 더 생각해야 했다. 이 조건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이 조건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그리고 그 선택은 너무도 쉽게 내려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에게 초기 스타트업 이직은 단순한 도전이 아니라 공유 자산을 거는 도박처럼 보일 수 있었다. 예상되는 질문 리스트를 뽑고 그에 대한 답안지를 만들었다. 나는 민정이 던질 냉혹하게 현실적인 질문 폭탄을 해명할 준비를 마친 채 현관문을 열었다.
식탁 앞에 마주 앉아 이 회사에서 내가 맡게 될 역할에 대해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학회 부스에서 설명하듯 꽤 논리적으로 한참을 설명하는 중에, 그녀는 컵을 내려놓으며 짧게 말했다.
"잘해봐."
생각보다 쿨한 반응에 멍해졌지만 아직 현실적인 조건도 말하지 않았는데 허락이 떨어졌다.
"근데 아직 다 안 들었잖아. 조건도 아직 얘기 안 했는데?"
"그래도 알겠어."
"뭐가?"
"어차피 그럴 것 같은 얼굴이었어. 내가 말린다고 되나."
나는 웃었다.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괜히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끓고 있는 샤브샤브 국물을 맛보라고 했다. 우리 사이에서는 늘 그런 식이었다. 말로 확인하지 않아도 서로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아는 순간들이 있었다.
며칠 뒤, 홍세진 교수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조건 검토했습니다. 같이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