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성적표: 망한 것도 성공한 것도 아닌 애매함

1부| 마흔에는 서울 자가에 정장 입고 일할 줄 알았다

by 영초이
중학교 때는 과학고를 가면 성공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는 서울대를 가면 성공이라고 했다.
대학교 때는 대기업에 들어가면 성공이라고 했다.
회사를 다니고 나서는 서울 부동산을 사는 것이 성공이라고 했다.


우리 세대는 대부분 그렇게 배웠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번듯한 직장을 얻으면 성공한다는 단순한 공식을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다. 하도 반복된 이야기라 감히 의심할 생각조차 못 했다. 지금까지도 그 공식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따랐던 것 같다.


노력과 점수는 비례한다고 믿었다. 성실함은 배신하지 않는다. 정체되다가도 어느 순간 계단을 올라가는 것처럼 다른 세상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계단들을 차근차근 오르다 보면 언젠가 다른 층에 도달할 것이다. 다시 말해 노력을 신앙처럼 믿어왔다. 하나라도 더 경험하고, 일 하나를 더 끝내려 밤을 지새웠다. 성공에 운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운조차 실력이 있어야 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성실함이 실력을 만들고, 그 실력이 노후를 보장할 것이라는 논리는 내 인생의 가장 단단한 전제였다.


매분기별로 업데이트하는 이력서엔 공백이 없고 완성한 프로젝트는 빼곡하다. 실패는 데이터로 남았고 성공은 지표로 증명된다. 겉보기엔 우등생의 삶이다. 적어도 시험이라는 틀 안에서는 망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망하지 않았는데 불안하다. 그리고 탈락하지 않았는데 안심이 되지 않는다. 내 상식 선에서 잘 살아왔다는 객관적 증거는 충분한데, 내면의 결핍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 애매한 불편함은 나를 더 많은 일과 더 성실한 삶으로 몰아넣었다.


서른 중반에는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을 보며 안정을 꿈꿨다. 하지만 어느새인가 돈은 점점 더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숫자가 주는 중압감에 계산기를 두드려보았다. 기대 수명은 100세에 가까워졌고, 은퇴 후에는 50년 이상의 긴 시간이 남아있다. 필요한 은퇴자금을 대략 계산해 보니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는 데만 약 20억 원이 필요했다. 사치를 바란 것도 아니다. 그저 가끔 손주 용돈도 주며 여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필요했다. 물론 퇴직연금과 자산 자가배당 등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해도, 준비가 턱 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숫자로 증명되었다.


자산의 속도를 처음 체감한 건 주변에서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였다. 백 명 중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일 같지만, 생각보다 자주 들려왔다. 한 번은 동료가 비트코인이 300만 원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비트코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었고 내 세계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새 2천만 원이 되었고, 나중에는 1억 원을 넘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는 300만 원에 사서 2천만 원이 되기 전에 팔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최고가를 갱신했던 지금까지 버티지 못한걸 후회한다.


주식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빅테크 중심의 상승장이 이어지면서 자산 가격은 빠르게 팽창했다. 성실하게 저축만 해온 나에게는 먼 이야기였다. 누군가는 단 한 번의 선택으로 내가 몇 년 동안 쌓아온 노력보다 큰 부를 만들었다. 계단을 오르는 와중에 누군가는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멀리 올라가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월급보다 자산은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는 것을 실감했다. 전문성을 쌓아 올려 얻은 안정적인 소득이 자산 시장의 속도 앞에서는 얼마나 느린지 이제는 안다. 결국 나도 비교와 뒤처짐에 대한 공포에 휩쓸려 무리한 선택을 했고 큰돈을 잃었다. 그리고 한 번 잃어본 사람의 투자가 점점 더 보수적으로 변해간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되었다.





노동 시장은 우리에게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한다. 월급도 조금씩 오르고 직급도 바뀐다. 그러나 자산 시장은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한다. 생존은 가능하지만 도약은 어렵고, 안정은 있지만 확장은 없다. 월급이 끊길 만큼 위험하지 않지만, 월급 없이 버틸 만큼 자유롭지도 않다. 이 간극이 마음속 불안을 만들었다.


내가 쌓아온 경력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자산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나는 그저 조금 더 비싼 값을 받는 노동자가 되었을 뿐이었다. 다만 시간과 돈을 등가 교환하는 게임의 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완전한 성공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패라고 단정 짓기엔 억울한 이 애매한 지점이 내가 마주한 마흔 인 듯하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답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낙관은 마흔에 다시 두드려 본 계산기 앞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전보다 내 밑천인 시간이 점점 부족해진다. 스무 살의 밤샘은 열정의 증거였지만, 서른 중후반 이후의 밤샘은 건강검진의 체중 증가와 검사 결과지의 빼곡한 경고로 돌아왔다. 이제는 내 노동의 유효기간이 점점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타이머처럼 느껴졌다. 몸을 갈아 넣어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이 게임은 이제 유효기간이 다해가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이 애매한 성적표로 남은 50년을 버틸 수는 없다. 이제 노력의 양이 아니라 방향을 틀어야 할 때다. 시스템이 주는 보상을 기다리지말고 내 판을 직접 설계해야 한다. 조직의 명함 뒤에 숨지 않고 나 자신이 시장과 마주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직함은 조직의 필요에 따라붙는 라벨일 뿐, 회사 밖으로 나오면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한 단어에 불과하다. 결국 남는 건 개인의 시장가치다. 하지만 회사 밖에서는 나는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 사람인지 정의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무엇이든 적당히 할 줄 아는 애매함은 시장에서 높은 값을 받기 어렵다. 명확하게 잘하는 하나가 있는 사람에게는 프리미엄이 붙지만, 두루두루 가능한 사람에게는 적당한 가격이 붙는다. 그 순간 나의 애매함은 더 선명해진다. 그리고 애매함은 사람을 그 자리에 묶어둔다. 오늘도 월급이 들어오고, 오늘도 일과 책임이 있다. 그래서 내일을 바꾸지 않는다. 시간은 그렇게 아무 일없이 흘러간다.


이제는 노력의 부족을 탓하기보다 게임 판의 차이를 고려해야할 때이다.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가가 아니라, 어떤 게임을 하고 있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게임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는지, 그 끝이 내가 원한 위치가 맞는지 차갑게 질문해야 했다. 그리고 그 질문은 퍽 불편했다. 그동안의 내 선택이 틀렸을 가능성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불편함을 마주해야만 구조 자체를 바꾸는 질문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선택이었다. 이 구조 안에서 조금 더 잘하는 우등생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구조 자체를 바꾸는 질문을 시작할 것인가. 내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무엇을 자산화할지 어떤 위험을 감수할지에 대해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

이 새로운 시험지는 여태 풀어온 것과 달리 백지이며, 질문도 없다.

정답도 없고 당연히 풀이도 없다.

심지어 만점이 몇 점 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막막한 시험지에 내 답변을 채워 넣을 차례이다.



그래서 딱 두 가지 일을 먼저 했다.


내 체력을 키우는 것과

불편한 일을 찾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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