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마흔에는 서울 자가에 정장 입고 일할 줄 알았다
언제 이렇게 살이 쪘지?
샌프란시스코에서 학회 발표를 앞두고 호텔 방에 앉아 한참 동안 발표 자료를 다듬고 있었다. 얼추 마무리가 된 것 같아 부랴부랴 준비를 했다. 정장 셔츠 단추를 채우다 말고 거울 앞에 잠깐 멈춰 섰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눈은 충혈돼 있었고 피부는 푸석했고 머리도 제대로 정돈되지 않았다. 거울 속 모습은 낯설었다. 정장을 입기엔 내가 지금 너무 초라하고 뚱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살이 쪘다는 느낌이 아니라 이 상태로 계속 살아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렇지만 그 생각을 길게 붙잡지 않았다. 발표가 더 중요했고 다이어트는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문제라고 넘겨버렸다.
원래 마른 체질이었다. 많이 먹어도 살이 잘 붙지 않았다. 라면 다섯 봉지에 밥 두 공기를 말아먹고도 과자를 찾을 만큼 먹었지만 체중은 늘 비슷했다. 오히려 두툼한 상체를 갖는 것이 목표였기에 마른 몸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기에 체중에 대해 크게 신경 써본 적도 없었다. 오히려 늘 당연하게 유지되는 마른 몸을 탈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생활이 조금씩 흐트러졌다. 야근이 길어졌고 술자리는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수면은 들쭉날쭉했고 식사는 늘 급하게 해결했다. 그때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바쁜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여겼다. 체중계 숫자는 서서히 올라갔다. 옷이 조금 불편해졌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오히려 상체가 두툼해진 것처럼 보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 서른 즈음 체중계에 찍힌 숫자가 130 kg이었다. 최고 135 kg까지 봤었다. 그 숫자를 보고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언제 이렇게 됐지?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매일 보는 얼굴이라 변화가 크지 않다고 느꼈는데 사실은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몸은 하루아침에 망가지지 않았지만 나는 갑자기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체력도 괜찮았고 건강검진 결과도 크게 문제없었다. 밤샘 작업을 해도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옷을 입으면 그렇게 안쪄보인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몸으로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피로가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예전에는 밤을 새도 버틸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하루만 무리해도 몸이 바로 반응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체중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방식으로는 오래 버티기 어렵겠다는 신호였다. 그래도 여전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결심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사소했다. 우연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봤을 때였다. 대용량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었다. 너무 살이 쪄 보여 들고 있는 음료가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달달한 카라멜 마끼아또처럼 보일 정도였다. 집에 돌아와 화장실 거울 앞에서 몸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크게 느낀 건,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그걸 버틸 체력이 없겠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다른 어떤 계획보다 먼저 살부터 빼기로 했다. 체력을 길러야 했다.
그날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걷는 것부터였다. 퇴근하면 그대로 옷만 갈아입고 무작정 걷고 뛰었다. 2km짜리 호수공원을 몇 바퀴씩 돌았다. 그러면서 깨달은 게 있었다. 내가 술을 마시며 허망하게 보내던 저녁 시간을 많은 사람들은 운동을 하며 관리를 하고 있구나. 생각보다 다들 체력과 몸을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곧 헬스를 시작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 힘이 셌고 무거운 걸 드는 재미에 빠졌다. 처음 60 kg도 버겁던 벤치프레스는 어느새 120 kg까지 들게 됐다. 욕심이 생기니 몸도 빠르게 변했고 체중도 줄었다. 단백질 위주의 식단까지 더해지며 속도가 붙었다. 하지만 욕심은 결국 사고로 이어졌다. 무리하게 무게를 치다 어깨를 다쳤다. 체중이 줄며 힘도 함께 줄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지 못한 욕심이 결국 어깨 부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근육을 늘려보겠다고 한 고단백 식단이 문제였다. 하루 닭가슴살 10 개 이상을 먹었다. 고단백 식단과 술이 겹치면서 통풍까지 왔다. 체력을 기르자고 한 운동 때문에 병을 얻게 되었다. 그때 몸무게가 110 kg였다.
한 달 동안 운동을 쉬며 방향을 바꿨다. 유산소 중심의 전신 운동을 시작했다. 수영이었다. 저중량 헬스를 병행했고 식단도 다시 조절했다. 재미로 하던 운동이 아니라 일처럼 하는 운동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오히려 고중량 헬스할 때보다 몸이 따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꾸준히 하니 조금씩 변했다. 110 kg, 그리고 100 kg 아래로. 숫자가 내려갈수록 컨디션도 그리고 몸 상태도 달라졌다. 결국 85 kg까지 내려갔을 때 처음으로 몸이 가볍다는 느낌을 다시 기억해 냈다.
친구들을 만났을 때 그 반응이 아직도 기억난다. 중학교 때부터 같이 다니는 친구는 나를 보고 다른 사람이 와서 나를 따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중학교 때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그만큼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급격하게 빠진 체중은 얼굴을 더 나이 들어 보이게 했고 체력도 생각보다 떨어졌다. 그래서 두 가지를 했다. 살을 다시 조금 찌우고, 난생처음 피부과를 찾았다.
살을 다시 찌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살을 빼면서 느낀 건 단순히 체중 감소가 아니라 내가 내 삶을 다시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그 130 kg라는 살덩이에 파묻힌 나를 걷어내 봤으니 적당한 양의 살을 붙이는 건 더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운동은 일상으로 두고 강도를 조절했고, 음식은 양보다 종류를 관리했다. 지금은 95kg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완벽한 몸은 아니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것 같다는 불안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어진 피부는 어떻게 되지 않았다. 외모에 큰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화장품 2만 원짜리도 아까워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피부과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평일 저녁임에도 사람들은 넘쳐났다. 대부분 여자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남자들도 많았다. 그리고 얼굴에 광이 나는 친절한 상담사와 함께 내 피부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리고 인모드, 슈링크, 얼굴 제모까지 모든 걸 한방에 카드를 긁고 시작했다. 한 번에 이렇게 큰돈을 쓰는 것이 처음인지 카드사에서도 평소보다 많은 금액을 사용했다는 경고성 문자가 왔다. 6개월 정도를 꾸준히 관리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피부과 시술로 얼굴에 광이 나기 시작했고 다시 적절하게 찌운 살로 얼굴이 좋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옷도 이때 사이즈에 맞게 다시 다 구매했다. 이렇게 건강을 챙기고 나서 제일 좋았던 것은 썩 괜찮은 모습으로 결혼식 사진을 남긴 것이고, 그와 못지않게 내 생활이 안정적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컸다. 예전에 좋다고 생각했던 컨디션이 지금은 기준 이하로 느껴질 정도로 달라졌다.
하지만 몸은 한 번 좋아졌다고 해서 그 상태로 남아 있지 않는다.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 돌아간다. 그래서 체중을 목표로 두지 않는다. 예전에는 몸을 소모품처럼 사용했다면 지금은 기반처럼 다룬다. 무너지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던 기준이 이제는 지속할 수 있는 상태인지로 바뀌었다.
돌이켜보면 130 kg이 되었던 순간은 지금의 나를 만든 원동력이었다. 어중간한 100 kg로는 농담처럼 치부하던 사람이기에 생각보다 높은 135 kg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지금도 완벽하지는 않다. 가끔 흐트러지고 다시 조정한다. 이제는 몸을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본다. 몸도 삶도 완성되는 순간은 없고 계속 균형을 맞추는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바꾸려 한 것은 체력이었다.
지치면 좋은 일에도 온전히 기뻐할 수 없고, 힘든 일 앞에서는 정면으로 서 있을 힘조차 없다.
몸이 버티는 만큼 삶도 끝까지 버틴다.
그리고 그만큼 내가 원하는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