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정교함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 존중이다

사용자 배려가 있는 공학 기술이 필요한 순간

by 영초이
조금만 옆으로 붙여서 대주시면 안될까요?ㅠㅠ

주차장에 남은 마지막 빈자리. 왜 이 자리가 끝까지 남았는지 한눈에 알 것 같았다. 양 옆에는 덩치 크고 값비싼 차 두 대가 위협적으로 서 있었다. 고민하던 중 저 멀리서 다른 차가 주차장에 진입하는 게 보였다. 뺏길 순 없다는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차를 밀어 넣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주차를 마쳤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차를 세우고 보니 내가 빠져나올 공간이 전혀 없었다. 저 비싼 차들에 문콕이라도 하는 날엔 뒷감당이 안 될 게 뻔했다. 결국 낑낑대며 차를 다시 빼고 다른 자리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아까 본 그 차가 겁도 없이 내가 포기한 자리에 바로 진입한다. 다 들어가는 듯하더니 다시 차를 앞으로 조금 뺐다. 그럼 그렇지. 안 들어가지? 속으로 생각하며 지켜보았다. 앞으로 나온 차에서 운전자가 여유롭게 내리더니, 주인 없는 자동차가 알아서 다시 뒤로 스르르 들어가는 것이었다. 운전자는 차 문을 열기 위해 옆 차와 씨름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차에서 내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그대로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기술은 늘 더 정교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공학의 언어로 말하면 기술의 진보는 성능의 향상으로 측정된다. 속도는 더 빨라야 하고 더 많은 기능을 탑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체감하는 변화는 항상 성능에서 오지 않는다. 우리 삶의 불편함을 바꾸는 순간에 우리는 그 기술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하게 된다.


내가 땀을 흘리며 옆에 비싼 차와 내 차 사이의 좁은 틈새에서 사투를 벌이던 경험은 주차 기술의 시작점이 된다. 그러나 이전에는 서라운드뷰와 같은 사용자의 편의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테슬라의 오토파일럿 기술은 여러 첨단 기술로 사용자를 도와주는 대신에, 차가 알아서 주차를 하는 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였다. 사용자가 좀 더 편할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이 자동주차 기술은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차와 차 사이의 간격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구역으로 옮겨주었다. 그 남자에게는 차를 내리는 공간이 그저 코트 깃을 정리하며 우아하게 걸음을 옮기는 곳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그 차틈 사이에서 문콕을 걱정하고 결국에는 포기했다. 이 극명한 차이는 단순히 비싼 옵션을 넣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공학이 인간의 불편함을 어디까지 들여다보았느냐는 것을 보여준다. 공학 기술은 사용자가 가장 편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학의 본질은 문제 해결에 있다. 하지만 품격 있는 공학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단순히 차를 주차 칸 안에 집어넣는 정밀한 기능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차를 세운 뒤 문을 열고 나오기 힘든 구체적인 상황까지 상상하는 배려에서 기술의 정점이 완성된다. 기능적 공학이 좁은 공간에 차를 밀어 넣는 물리적 성공에 머문다면, 배려적 공학은 운전자가 문콕을 걱정하며 몸을 구겨야 하는 곤란함을 미리 읽어내고 차 밖에서 주차하는 방식을 고안해 낸다.


주차는 귀찮다...




우리는 흔히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게으르게 만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정한 진보는 인간을 덜 애쓰게 함으로써, 그 아낀 에너지를 더 가치 있는 곳에 쓰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좁은 주차장에서 문을 열기 위해 옆 차와 씨름하지 않아도 되는 것, 휠체어를 탄 사용자가 타인의 도움 없이 경사로를 오르는 것, 시력이 낮은 노인이 복잡한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하지 않는 것. 이 모든 순간에 공학의 배려가 스며있다. 기술이 사람의 물리적 한계를 대신 짊어져야 한다. 그러한 사람에게 대한 기술적 배려가 있어야지만 공학기술은 품격을 갖춘 도구가 된다.


결국 공학 기술의 진보는 삶의 질로 증명된다. 마력과 토크의 복잡함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이 사용자의 하루를 얼마나 품위 있고 편하게 만들어주었는가이다. 앞으로의 기술은 더욱 정교해지겠지만 그 지향점은 명확해야 한다. 기술은 인간을 압도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부족한 틈을 가장 따뜻하게 메워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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