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만드는 사람은 무엇을 관찰해야 하는가
"이 자료 말고 그때 그 자료를 가져오라고!"
극대노한 상사가 회의 중 갑자기 이전 자료를 보여달라 한다. 웹하드에는 없고 내 자리 USB에만 있는 파일이다. 전력 질주로 자리에서 USB를 챙겨 회의실로 돌아왔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USB를 노트북에 연결하려 했더니 안 맞는다. 엥? 다시 뒤집어서 꽂는다. 또 안 된다. 다시 확인하니 처음 방향이 맞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파일을 화면에 띄우고 상사를 쳐다보니 폭발 직전이다. 그 이후는 상상에 맡기겠다.
이 비극적인 서사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USB를 제대로 못 꽂은 의 미숙함인가, 아니면 성격 급한 상사인가. 공학자의 시선에서 범인은 명확하다. 바로 방향성이 있는 USB-A 단자를 설계한 사람이다.
공학자는 제품을 만들 때 데이터 전송 효율과 단가, 규격의 정밀함에 집중한다. USB-A 타입을 처음 설계했을 때도 그랬을 것이다. 접점의 위치를 고정하고 물리적인 가이드를 만들어 데이터가 정확히 흐르게 하는 완벽한 도구를 만드는 데 몰두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용자가 행하는 행동은 계산에 넣지 않았다.
사용자는 회의실의 긴박함 속에서 단자의 내부 구조를 떠올리지 않는다. 그저 구멍이 보이니 꽂으려 할 뿐이다. 분명 확률은 50대 50이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항상 세 번 시도해야 성공한다. 한 번 꽂고, 안 들어가니 뒤집고, 그래도 안 들어가니 다시 뒤집는다. 이래도 안되면 그때서야 USB의 단자 내부를 확인한다. 이 USB-A의 저주는 도구가 사용자의 본능적인 행동을 배려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설계 실패다.
이제는 USB를 꽂는 행위는 공학적 성능의 향상 이전에 사용자의 행동을 재설계했다. 요즘 핸드폰 충전 단자로 많이 쓰는 방향이 없는 USB-C이다. 앞뒤 구분을 없앤 단순한 변화 하나가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시각적 확인 절차와 짜증을 삭제했다. 사용자는 이제 단자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냥 꽂는다. 실패할 리 없다는 확신을 주었다. 즉, 행동의 자유를 설계한 것이다.
삼성페이의 승리 공식도 이와 같다. 현재 구글에 찾아보니 삼성페이는 국내 디지털지갑 시장의 40% 이상을 독점하고 있다. 그러나 주변에 카카오페이 등 웬만한 은행사에서는 이런 디지털지갑 서비스를 한다. 이 차이는 어디서 나타났을까? 삼성페이는 결제 기술 자체보다 결제하는 순간의 행동에 집중했다.
다른 대부분의 디지털지갑은 QR 코드 결제를 요구한다. QR 코드 결제는 사용자에게 여러 단계의 행동을 강요한다. 앱을 찾고, 인증하고, 카메라를 조절하는 일련의 과정은 기술적으로는 정교할지 몰라도 사용자의 흐름을 끊는다. 한 마디로 귀찮다. 반면 삼성페이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단말기에 쓱 긁던 수십 년간의 신체적 기억을 그대로 스마트폰으로 옮겨왔다. 폰 화면을 가볍게 위로 튕기고, 지문을 화면에 찍는다. 그리고 가볍게 진동하는 폰을 든 채 단말기에 툭 대는 짧은 행동 속에 모든 기술적 복잡함을 매몰시킨 것이다.
회의실에서 신입사원이 느꼈을 당황함은 공학기술이 사용자에게 친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기술이 발전하면 사용자가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더 정교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은 기술은 그 반대 방향으로 진화한다. 기술이 사용자 행동을 더 많이 이해할수록 사용자는 덜 생각하게 된다.
USB-C가 등장한 이후 우리는 더 이상 단자의 방향을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방향 확인 없이 꽂는다. 결제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지갑을 열지 않는다. 그저 단말기에 핸드폰을 갖다 댄다. 좋은 기술은 언제나 행동을 줄이고 방해하지 않는다.
공학의 목표는 더 많은 기능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용자가 기술을 사용하는 순간을 가능한 한 짧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공학기술은 존재하지만 경험 속에서는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야 할 기술 역시, 그렇게 조용히 사용자의 행동 뒤로 물러나 있는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