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 기술은 항상 인간을 향한다
공학자의 직업과 하는 일들은 너무도 다양하다. 전공만 봐도 그렇다.
화학공학, 기계공학, 생명공학, 전자공학, 전기공학, 재료공학, 항공공학, 토목공학, 우주공학 등등...
여기에 세부전공까지 들어가면 아마 100개도 넘을 것이다.
그럼 공학이라는 학문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구글에 찾아보니 이렇게 나온다.
공학(Engineering)은 수학, 자연과학, 기술적 지식과 경험을 응용하여 일상생활 및 산업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에게 유용한 제품, 구조물, 시스템을 창조(발명, 설계, 생산)하는 학문입니다. 단순히 도구를 만드는 것을 넘어, 효율성과 안전성을 향상시키는 체계적인 문제 해결 과정입니다.
결국에는 공학은 일상에서 불편한 기능을 개선하고 최적화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개선하는 방법과 분야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전공을 갖고 있다.
반면에 인문학은 어떤 학문일까?
인문학(Humanities)은 인간의 사상, 문화, 역사, 언어, 문학, 철학 등을 연구하여 인간다움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와 삶의 원리를 성찰하며, 지식 습득을 넘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공학 전공자다 보니 공학에 대한 설명보다는 인문학에 대한 설명이 훨씬 더 어렵다. 굳이 내 식대로 풀어보자면 인문학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정신과 존엄을 이해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문화가 더 풍요로워지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공학과 인문학 모두 현실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학문이다.
다만 공학은 삶의 기능적인 면을, 반면에 인문학은 삶의 정신적인 면을 더욱 강조한다.
그렇다면 왜 공학자는 인문학을 공부해야 할까? 가장 단순한 답은 이것이다.
공학 기술은 언제나 인간을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너무 진부하게 들린다. 이걸 더 쉽게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공학이 기능에만 몰두하면
해괴하고 흉한 것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의 보행을 돕는 장치를 만든다"는 목표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공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직립 보행은 매우 비효율적인 구조다. 몸 전체의 무게가 작은 발바닥 면적에 실리고 걸음을 옮길 때는 한쪽 발에 체중이 집중된다. 꽂꽂하게 선 척추는 항상 중력 하중을 받고, 무거운 머리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어 균형을 잡기 어렵다. 순수하게 안정성과 효율만 고려한다면 더 넓은 접지면과 낮은 무게 중심을 갖는 이동 방식이 더 합리적이다. 그래서 한 가지 결론이 나온다.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사용하는 사족 보행 방식이 훨씬 안정적이고 신체 부담도 적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원리를 바탕으로 사족 보행을 보조하는 장치를 설계했다고 해보자. 개발자들이 직접 테스트해 보니 허리 부담이 기존보다 80% 이상 줄어들었다. 기능적으로는 분명히 뛰어난 결과다. 자신감을 가지고 이 프로토타입을 투자자에게 가져간다. 그리고 그 제품은 투자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제품은 기술적으로는 합리적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전혀 받아들여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회사 복도에서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기술이 시선을 끄는 순간 사용자는 구경거리가 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건 아무리 연예인이 TV에 나와서 사용한다고 해도 절대 유행이 될 수 없는 제품이다. 그리고 모든 사회환경이 직립보행에 맞추어져 있다. 계단, 문 손잡이의 위치, 책상의 구조, 대중교통의 좌석 심지어 엘리베이터 버튼의 위치까지 모든 인프라는 인간의 현재 모습에 맞춰져 있다. 아무리 효율적인 이동 방식이라도 이 구조 안에서 불편하다면 지속적으로 사용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단순히 이동하는 생물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과 정체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다. 직립 보행은 단순한 이동 방식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느끼는 상징적 형태이기도 하다. 그 형태가 크게 변하는 순간 사람들은 이것이 과연 인간다운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만약 이 모습을 거울로 보기라도 한다면, 그 무시무시한 현자타임은 내 몫이다.
고집 센 공학자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시속 30km로 달릴 수 있는 가변형 사족 보행기를 내놓을지도 모른다. 그럼 인프라에 맞게 걸을 수도 있고 사람이 적은 곳에서 사용할 수 있게끔 형태가 변형한다고 자랑스럽게 내놓는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 제품을 착용한 채로 번화가 한복판을 지나간다고 상상해 보자.
아무리 30 km/h로 달려봐야
빠르고 척추가 편한 관종이 될 뿐이다.
그래서 공학자에게 인문학은 단순한 교양이 아니라 설계의 필수 요소다. 기술은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존재 가치를 증명받지 못한다. 사용자의 품위를 지키면서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제품이 진짜 정답이다.
이 접점에서 탄생한 개념이 바로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이다. UX는 공학의 논리와 인문학의 질문이 만나는 지점이다. 기술이 인간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수용되는지를 설계하는 과정이다. 사용자가 이질감을 느끼는 순간 기술은 실패하며, 인간의 감정을 이해한 기술만이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게 된다.
공학자의 기술적 자부심은 귀하다. 하지만 그 기술이 세상에 나오려면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 당연하고도 시시한 이유 때문에, 우리 공학 전공자들은 오늘도 인문학의 겉핥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