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 기술은 설명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꼼꼼한 제품 설명서를 만들지 말고 제품을 직관적으로 만들어라

by 영초이
내 조카는 천재다

친형네 집에 놀러 가면 세 살짜리 조카가 아장아장 뛰어다닌다. 아직 말도 서툰 녀석이 밥 먹다 말고 놀러 가자며 손을 끌어당길 때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가끔은 저런 천사 같은 아이가 어떻게 저런 놈한테서 나왔나 싶어 한참을 쳐다보게 된다.


형은 내게 절대 조카에게 핸드폰을 보여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삼촌의 본분은 원래 책임 없는 쾌락 아니겠나. 뽀로로를 보여달라는 조카의 눈빛에 슬쩍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30초 정도 보던 조카는 이미 본 에피소드였는지 금세 흥미를 잃었다.


내가 다른 영상을 찾아주려던 찰나, 조카의 작은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말도 못 하는 아이가 화면을 이리저리 스와이프하며 보지 않은 회차를 스스로 찾아내고 있었다. 내 조카는 천재였다.




글은커녕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가 기기를 조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스마트폰의 인터페이스가 완벽하게 직관적이었기 때문이다. 세 살짜리 아이가 시스템 구조를 이해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행동은 정확했다. 결국, 직관이란 별도의 설명 없이도 사용이 가능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과거의 공학 기술은 인간에게 공부를 요구했다. 버튼의 기능을 외우고 복잡한 작동 원리를 이해해야만 기계를 다룰 수 있었다. 복잡한 기계를 이해한 소수만이 기계를 독점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인문학적 사고가 공학에 스며들면서 방향은 완전히 달라졌다. 공학기술은 인간의 원초적인 움직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물체를 옆으로 밀어내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는 물리적 감각과 손을 뻗어 만지면 반응한다는 본능적 경험을 화면 안으로 옮겨온 것이다.


가장 직관적인 제어 방법

이러한 변화는 컴퓨터 인터페이스의 역사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초기의 컴퓨터는 기계의 언어인 명령어를 직접 입력해야 했다. 사용자는 기계와 대화하기 위해 기계의 언어를 배워야만 했다. 현재의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든 윈도우의 등장은 큰 변화였다. 명령어 대신 시각적인 아이콘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마우스 클릭이 도입됐다. 파일을 마우스 커서로 클릭해서 선택하고, 커서를 꾹 눌러서 파일을 이동시키는 행위는 손으로 물건을 정리하는 방식과 닮아 있었다. 이때부터 컴퓨터는 비로소 대중적이 되었다.


스마트폰에 이르러 이 변화는 완성에 가까워졌다. 이제 클릭조차 필요 없다. 그저 화면을 보고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밀면 된다. 기계의 언어를 배우던 시대에서 인간의 행동 자체가 인터페이스가 되는 시대로 넘어온 것이다. 이제는 손보다 더 직관적인 말로 기계를 제어하는 대화형 AI의 시대까지 열렸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조작은 단순해진다.


그럼 화면 확대는 어떠한가? 화면에 접촉된 두 점 사이의 간격을 벌리면 확대된다는 공학적 설명보다, 화면 위에 댄 손가락을 벌리는 행위 자체가 확대가 되는 경험이 훨씬 직관적이다. 복잡한 알고리즘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단순함으로 치환될 때 공학은 비로소 보편적인 직관성을 얻는다.


공학이 기술적 완성도에만 집착했다면, 조카는 원하는 영상을 찾지 못해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페이지를 보기 위해 대상을 밀어낸다는 인간의 본능을 기술이 수용하면서 문턱은 사라졌다.


과거 로봇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합체를 위해 수십 개의 레버와 버튼을 조작해야 했다. 그것이 공학적 낭만이었을지는 몰라도 사용자에게는 고역이다. 하지만 우리가 열광한 아이언맨은 달랐다. 가슴을 두어 번 톡톡 터치하는 것만으로 나노 슈트가 입혀지는 장면은 훨씬 직관적이고 쿨하다.


결국 공학에 인문학을 접목하는 이유는 기술을 우리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만들기 위함이다.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스마트폰이 세 살 아이의 뽀로로 놀이터가 될 수 있는 건, 그 이면에 인간의 행동 양식을 존중하는 직관적인 설계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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