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함과 효율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폭풍 같은 주말을 보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정신없이 놀았다. 일요일 아침,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이끌고 눈을 떴을 때 집안엔 적막만 가득했다. 집에 오자마자 옷도 못 벗고 잠들었나 보다. 손목에는 스마트워치가 그대로 채워져 있었다. 화면을 켜자마자 알람이 뜬다. 어젯밤 푹 잤다며, 아주 좋은 수면 상태를 유지했다는 칭찬이다. 하지만 거의 잔 것 같지 않다.
겨우 몸을 일으켜 씻으러 들어가니 거울 속 내 배가 유독 툭 튀어나와 보인다. 불안한 마음에 체중계에 올라갔다. 2 kg가 늘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워치는 눈치 없이 진동한다. 오늘 목표 걸음수를 채웠으니 아주 건강한 하루를 보냈단다. 새벽까지 클럽에서 뛰어놀았다.
워치 충전을 위해 잠시 손목에서 풀어두고 해장을 한 뒤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저녁쯤 되어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운동을 하러 나섰다. 그런데 막상 헬스장에 도착해 운동을 시작하려니 손목이 허전하다. 워치를 충전기에 두고 온 것이다. 운동을 기록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의욕이 꺾였다. 기록되지 않으니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었다. 결국 제대로 된 운동은 접어두고 대충 러닝머신만 타다 돌아오기로 했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도 부족해 시계까지 스마트해진 시대다. 손목 위의 작은 화면은 하루 종일 우리의 생체 신호를 관찰한다. 요즘 스마트워치에게는 심박수, 걸음 수, 수면의 질은 기본 사양이다. 그리고 최신 공학 기술은 스트레스 지수, 심전도, 혈압, 혈중 산소 포화도까지 숫자로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공학은 이 정밀한 데이터를 분석해 우리에게 최적의 운동량과 수면 시간을 제안한다. 하지만 이 모든 기능을 완벽하게 활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현대인에게 새로운 형태의 건강 강박을 생기게 했다. 이미 몇몇은 내 몸의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게 아니라, 기계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있다. 워치 기록에 남지 않는 쇠질은 헛수고를 한 것 같다. 그러니 어느새 운동의 목적은 슬그머니 바뀌어 있다. 내 건강을 위한 운동이라기보다 오늘 한 운동량과 시간을 인스타에 올리기 위한 도구가 된 것이다.
효율을 중시하는 공학적 사고는 숫자에만 집중한다. 사용자가 이 숫자에 매몰되면,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실제 신호보다 스마트워치의 숫자를 더 신뢰하게 된다. 거울로 보는 내 모습보다 체중계의 숫자를 더 믿듯이 말이다. 전날 과음으로 간이 비명을 지르고 있어도 잘 잤다는 알람이 뜨면 왠지 더 자면 안 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 클럽에서 밤새 춤을 춰서 걸음 수를 채웠다고 하더라도, 헬스 앱에 클럽에서 놀기라는 항목이 생기지는 않는다. 현실의 맥락을 잃어버린 데이터는 의미가 없다. 몸은 분명 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워치가 계산한 수면 점수가 나쁘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는 본능적인 신호를 무시한다.
공학 시스템에서 낭비가 없는 상태가 이상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시스템일수록 예상치 못한 변수에는 쉽게 깨진다. 하루의 모든 칼로리를 계산하고 모든 시간을 효율로만 채우려 드는 삶에는 회복을 위한 여유가 없다. 아무 목적 없이 걷는 시간, 기록되지 않는 낮잠, 느릿하게 흘러가는 오후의 권태. 이런 순간들은 공학적 관점에서는 비효율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생명체가 스스로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필수적인 시간이다. 시스템의 안전을 위해 예비 전력이 필요하듯, 인간의 삶에도 숫자나 데이터로 설명되지 않는 여백이 반드시 필요하다. 공학적 데이터가 제안하는 최적의 답이 나의 진정한 정답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스마트워치는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해질 수 있는지는 알려주지만, 왜 건강해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공학적 사고의 확장은 센서를 더 정밀하게 다듬거나 측정 항목을 늘리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이 기술이 우리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정의하고 있는지, 인간을 데이터의 노예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특히 건강을 위한 스마트 기기에 대한 다른 정의가 필요할 수도 있다. 단순히 수치를 개선해 기계적으로 수명을 늘리는 삶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건강한 몸으로 세상의 온기를 느끼고 소중한 사람과 눈을 맞추는 삶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공학기술은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놓치고 있는 감정과 심리적 안정까지 함께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스마트워치보다 더 은밀하고 정밀하게 우리를 감시할 스마트링과 스마트글라스 같은 기술은 어쩌면 아직 사람이 감당하기엔 너무 스마트하기만 한 기술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아직 주변 누구도 스마트링과 스마트글라스를 선뜻 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