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기시오'를 읽지 못하는 당신은 잘못이 없다

공학적 사고의 확장

by 영초이

갑자기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소나기가 쏟아졌다. 가방을 머리 위로 올리고 허겁지겁 눈앞에 보이는 카페로 뛰어들었다. 통 유리로 된 문을 나는 망설임 없이 온 체중을 실어 문을 밀었다. 쾅. 경쾌한 종소리 대신 둔탁한 충돌음이 카페 안에 울려퍼졌다. 문은 미동도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시선이 나에게 쏟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노트북을 두드리던 카공족들과 커피를 마시던 연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유리문 밖의 나에게 꽂혔다. 비가와서 오도가도 못한 상황이었다. 구석진 자리에서는 누군가 입을 가리고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거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밖은 이미 폭우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오도가도 못하고 문고리를 잡은 채 멈춰 섰다. 방금 전의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쏟아지는 시선 때문인지 섣불리 다시 문을 당겨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image.png 아프고 쪽팔리고...




많은 이들이 공학을 더 정교하고 세련된 기술을 만들어내는 학문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공학의 본질은 기술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공학 기술이 달성하기 위한 목적은 오직 하나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일 뿐이다.


최첨단 기술을 적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좋은 공학적 결과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공학은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본질에서 멀어지는 역설을 겪기도 한다. 가장 흔한 오류는 수단의 목적화다. 화려한 스펙, 복잡한 알고리즘, 최신 트렌드에 집착하다 보면 정작 그 기술이 해결하려 했던 최초의 문제는 잊어버린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기술이 어느새 그 기술 자체가 제품이 되어버린다.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시점에서 이미 실패한 것이다.


단순하게 문제에 집중하라

진정한 효율성은 언제나 단순함과 맞닿아 있다. 때로는 고도의 기술보다 직관적인 구조 하나를 바꾸는 것이 알고리즘 하나를 더 얹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해결책이 된다. 공학적 사고의 확장은 어떤 기술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이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를 묻는 데서 시작된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결국 그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의 행동과 사고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이 점을 간과하는 순간 공학적 설계는 실패로 향한다.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이라도 사용자가 의도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 설계된 시스템이다. 공학 기술은 단순히 기계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행동을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한국인이 가장 못 읽는 문장 1위가 당기시오라고 한다. 진짜 이 글자를 읽지 못해서일까? 아니다. 가독성의 문제였다면 더 크고 눈에 띄게 써 붙이는 것만으로 해결되었어야 한다. 진짜 문제는 이 문을 처음 마주했을 때 이것이 미는 문인지, 당기는 문인지, 혹은 슬라이딩 도어인지 직관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image.png 이래도 밀어?


밀고 싶은 문, 당기고 싶은 문

심리학자 도널드 노먼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먼의 문(Norman Door)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논리는 단순하다. 미는 문은 미는 문처럼 보이게 손잡이를 만들고, 당기는 문은 당기는 문처럼 손잡이를 만들라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정교한 문 개폐장치를 다는 것보다 사람의 직관에 맞는 손잡이 하나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훌륭한 공학적 해결책이다.


따라서 공학에 인문학이 더해져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부분의 문제는 사람이 일으킨다. 그리고 그 상황이 문제가되는 것은 불편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공학이 문제를 해결하는 학문이라면, 인문학은 그 문제가 사용자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깨닫게 해준다. 기술적으로 옳은 답이라 해도 인간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현장에서 사용할 수 없는 죽은 기술일 뿐이다.


공학적 시각에서 문은 그저 열리고 닫히는 기능을 수행하면 그만일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문을 여는 방향에 명확한 이유가 존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비상 탈출구는 무조건 미는 문이어야 한다. 위급 상황에서 사람이 몰릴 때 당겨야 하는 문은 대참사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문 밖이 바로 행인이 다니는 좁은 통로라면 당기는 문이어야 한다. 미처 보지 못한 행인이 갑자기 열린 문에 맞아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image.png 밀고 들어가는 손잡이, 당기고 들어가는 손잡이, 돌려서 들어가는 손잡이


이러한 용도의 차이를 매번 큰 글씨로 설명할 수는 없다. 결국 공학자는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밀거나 당기도록 유도하는 행동의 설계를 해야 한다. 그 행동의 설계가 굳이 멋있는 기술일 필요는 없다. 단순히 당기고 싶은 문 손잡이를 만드는 것 또한 공학적인 문제 해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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