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이주는 어떻게 현실이 되는가
2000년대 초반, 한 남자가 화성에 가겠다고 공식적으로 얘기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어넘겼다. 사람들은 그를 돈 많은 괴짜쯤으로 혹은 현실 감각 없는 몽상가로 여겼다. 화성 이주라는 목표는 공학의 영역이라기보다 공상 과학 소설에 더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풍경은 조금씩 달라졌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의 로켓이 발사 후 다시 지상으로 돌아와 수직 착륙에 성공했을 때, 비웃음은 경이로움으로 바뀌었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장면이 눈앞에서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로켓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스타링크를 통한 전 지구적 통신망,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 그리고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겠다는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까지. 새로운 기술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한때 허무맹랑해 보였던 화성 이주라는 상상은 점점 현실의 영역으로 끌려 내려왔다. 이제 사람들은 그를 몽상가라 부르지 않는다. 대신 정말로 화성에 도달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는다.
공학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어떻게(How)라면, 상상력은 늘 만약에(What if)라는 말이 붙는다. 이 상상력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사고의 최종 형태다.
만약 로켓을 다시 쓸 수 있다면 어떨까.
만약 자동차가 스스로 판단하며 움직인다면 어떨까.
이런 질문들은 처음엔 비현실적으로 들리지만, 공학자에게는 해결해야 할 문제의 출발점이 된다. 기술은 스스로 태어나지 않는다. 상상력이 목적지를 정해주면, 공학은 그곳으로 가는 길을 하나씩 그려 나간다. 머스크의 성공은 그가 남들보다 복잡한 수식을 풀어서가 아니라 남들이 감히 던지지 못한 질문을 먼저 던졌다는 데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위대한 상상력만으로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거대한 꿈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상상을 이기는 집요한 분해의 과정이다. 아무리 화려한 비전도 한 번에 실현되지는 않는다. 그가 특별한 진짜 이유는 꿈을 크게 꾸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꿈을 실현 가능한 최소 단위의 공학적 문제로 쪼개는 데 능숙했기 때문이다.
그는 화성에 가기 위해 먼저 로켓 가격이라는 문제를 발견했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 재사용이라는 목표로 범위를 좁혔으며, 그 재사용을 가능케 하려고 수직 착륙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기술적 과제에 집중했다. 거대한 상상은 그렇게 작고 현실적인 문제들로 분해되며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는다.
공학에서 불가능이란 대개 현재 기술 수준에서의 제약을 의미한다. 상상력은 그 기술의 제약 앞에서 멈춰버린다. 과거에는 스마트폰조차 공학자들에게 마법 같은 물건이었을 것이다. 초창기 컴퓨터를 좋아하던 누군가는 길을 걸으면서도 컴퓨터를 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손바닥 위에 올라가는 컴퓨터를 말했을 때 당시 사람들은 비웃었겠지만, 누군가는 그 상상을 멈추지 않았고 기술은 그 상상을 따라잡기 위해 진화해왔다.
상상력이 풍부한 공학자는 주어진 제약을 벽으로 보지 않는다. 반드시 넘어서야 할 장애물로 바라본다. 공학자의 일이란 내가 알고 있는 기술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그 너머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상상하고 그 상상을 해결 가능한 문제들로 질서 있게 배열하는 과정 그 자체다.
기술의 정교함은 상상력의 크기를 넘어설 수 없다. 그러나 상상력의 끝없는 한계 또한 기술과 부품의 치밀한 분해를 이길 수는 없다. 공학자가 계산기를 두드리기 전에 마음껏 꿈을 꿔야 하는 이유는 기술에 방향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또한 그 꿈을 실현 가능할 만큼 조각내는 이유는 그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함이다.
상상력으로 한계를 넓히고 작은 단위로 분해해서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이 최종적인 공학자가 해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