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이유로 아내가 2주간 집을 비우게 되었다.
사실 우리 집은 아내가 집을 비운다 하여 크게 문제 될 일은 없다. 든든한 장인어른이 집에 계시고, 아이들도 엄마가 없다고 보채거나 울지 않는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야 원래부터 내 몫이었고, 평소 엄하게 훈육하여 아빠의 말은 잘 듣는 편이니 아이들도, 나도 힘들 일은 없다.
먹는 것과 입는 것이 조금 문제지만 집 가까운 곳에 반찬가게가 있어 잠시 버티는 것이야 문제없으며, 아이들 빨래는 든든한 장인어른께서 매일 세탁기를 돌려주시니 불편함이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집안을 둘러보니 지저분하다. 여기저기 아이들 장난감이 돌아다니고 먼지도 많아 보인다. 아이들 방의 이불은 널브러져 있고, 식탁 위에는 이런저런 잡동사니들로 가득하다. 역시나 아내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독도 인근 바다에서 실종된 동료의 가족들을 안내하고 위로하는 힘든 임무를 맡은 아내, ‘몸도 마음도 지쳤을 아내가 집에 돌아와 이 모습을 보면 기분이 어떨까?’하고 생각하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날부터 매일 청소를 했다. “집이 깨끗하면 엄마가 돌아와서 엄청 좋아할 거야” 란 아빠의 말에 아이들도 기꺼이 청소를 돕는다.
내가 걸레질을 하면 아들 녀석은 거실의 장난감과 놀이방을 정리하고, 딸아이는 돌돌이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먼지를 제거한다. 장인어른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으신다.
사실 난 청결하거나 깨끗한 사람은 아니다. 지금이야 가족과 함께 사니 그나마 좀 깨끗해졌지만, 결혼 전 청소와 빨래는 월례행사였을 만큼 지저분한 쪽에 더 가까웠다. 그런 내가 이제는 즐거운 기분으로 매일 청소를 한다. 그 작은 수고로움으로 대부분의 집안일을 맡아하는 아내의 짐을 조금이라도 줄여 줄 수 있고, 아이들에겐 청소하는 습관을 어린 나이에 가르칠 수 있다. 쾌적한 집에서 가족 모두의 기분이 밝아지는 건 보너스다.
아빠와 함께하니 아이들도 청소를 ‘놀이’라고 생각하는지, “오늘은 소파 닦고, 내일은 거울 닦고, 다음에는 창문 닦을 거예요.”라며 무척이나 적극적이다.
귀찮고 하기 싫은 일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이처럼 즐겁고 기쁜 일이 될 수 있음을 새삼 느낀다. 나도, 아이들도 평소엔 잘하지 않던 청소가 이렇게 재밌게 느껴지니 말이다.
아내가 돌아왔지만 청소는 계속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