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버지의 시계

by 카이

돌아가신 아버지가 10년 넘게 가지고 계셨던 시계. 아버지의 유품으로 챙겨 둘 것을, 이제와 그 시계를 챙겨두지 않은 것이 후회로 남는다.


2006년 이라크 파병이 결정되고 받은 대통령의 시계. 자랑스러움과 걱정이 겹친 얼굴의 아버지에게 잘 다녀오겠노라며 그 시계를 선물로 드렸었다.

아마도 파병을 떠난 아들이 건강히 귀국하길 바라시며, 「당신이 대한민국입니다.」라고 새겨진 그 시계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보셨을 게다.


파병 복귀 후 아버지의 손목에는 여전히 그 시계가 감겨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시계 유리가 뿌옇게 흐려져 있다.

“시계가 왜 그래요?”

“어, 이게 방수가 안 되더라고.”


‘아! 길거리에서 파는 만 원짜리 시계도 방수가 되는 시대에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시계가 방수조차 안 되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사람들에게 그 시계를 보여주며, 아들이 준 것이라 얼마나 자랑을 하셨을까? 그런 시계가 방수도 안 된다니 사람들은 또 얼마나 비웃었을까? 그 비웃음에도 뿌옇게 습기가 찬 시계를 여전히 차고 다니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답답하고 화가 난다.


아버지 생전, 부모님의 집에 갈 때마다 열어 본 서랍 안에는 그 고장 난 시계가 언제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때 챙겨 둘 것을 그랬다. 아버지가 안 계시는 지금도 그 시계를 보며 아버지를 추억하고, 따뜻한 아버지의 정을 느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새것이 나오면 쉽게 바꾸는 그런 거 말고, 고장 났다고 쉽게 버릴 수 있는 그런 거 말고, 살면서 언제까지나 가지고 있을 만한 의미 있는 것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야겠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나를 기억하게 해 줄 그 무언가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