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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 Sep 05. 2023

미안하다. 깜지야!

  

  아내와 나의 첫 번째 반려견 깜지! 그 강아지와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미안하고 가슴 아픈 추억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 아내는 전역 후 소방관 생활을 하면서부터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가 있던 경기도 광주와는 30~40분 거리밖에 안 되었지만, 군 생활을 하며 당시 3교대 근무를 했던 아내와 시간을 맞추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번, 1박 2일 정도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아내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했을 때 난 반대할 명분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껏 강아지를 키워 본 적은 없지만 나 또한 강아지와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강아지 키우는 것에 서로 동의하고 '어떤 강아지를 키우면 좋을까?'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아내는 슈나우저라는 견종을 마음에 들어 했다. 활발한 성격과 귀여운 표정, 근육질 몸매가 특히 좋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나와 아내는 어머니께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평소 애완동물을 싫어하셨던 어머니는 처음엔 극구 반대하셨지만, 혼자 외롭게 지내던 아내의 사정을 들으시곤 안쓰러움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강아지를 선물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우린 그날 바로 애완동물 샵으로 향했다. 아내는 검은색과 흰색 털이 섞인 슈나우저를 찾았지만, 샵에는 회색 슈나우저 한 마리뿐이었다. 고민 끝에 우리는 원하는 강아지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샵에서 전화가 왔다. 원하는 강아지가 오늘 샵에 도착했으니 방문해 달라는 전화였다. 아내와 난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그 샵으로 향했다.  아직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아기 강아지, 조그맣고 까만 슈나우저 한 마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너무 예쁘다며 강아지를 품에 안고 어쩔 줄 몰라했다. 그렇게 깜지는 우리의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처음엔 너무나 행복했다. 그 작고 귀여운 강아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문제가 시작되었다 느낀 건 깜지의 몸이 조금씩 커지며 활동성이 증가하면서부터다. 반려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아내와 나로 인해 깜지의 불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내와 난 반려견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어찌 그리 무지한 상태로 강아지 키울 생각을 했는지 실소가 나온다. 우리는 공원에서도 강아지 목줄을 하지 않았다. 목줄은 강아지가 위험한 곳에서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깜지로 인해 사람들이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도 몰랐다. 강아지를 산책시켜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나와 아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먹고, 싸고, 씻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이런 무지한 보호자로 인해 매일이 지옥 같았을 깜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깜지는 일주일 중 3~4일을 집에 혼자 있어야 했다. 아내는 교대 근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고, 난 아내도 없는 집에 혼자 있기 싫었다. 그 때문인지 깜지는 분리불안이 심해졌고, 심지어 똥오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게 되었다. 아무 때나 아무 곳에나 똥과 오줌을 누었으며 장판과 신발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집에 오면 문을 열기가 무서울 정도로 온 집안이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다 자기 탓이라며 그럴수록 깜지를 더 사랑하려고 애썼지만, 난 달랐다. 그것이 내 책임인 것도 모른 채 매일매일 깜지를 구박하고 혼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날은 양가 부모님들을 모시고 식사를 하기로 한 상견례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안경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안경을 찾아다니고 나서야 범인이 깜지임을 알았다. 안경을 가지고 얼마나 장난을 쳤는지 안경알은 찾을 수도 없었으며, 다 찌그러진 안경테만이 바닥 한쪽 구석에 나뒹굴고 있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상견례 장소인 전라도 광주까지 가는 차 안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소리를 지르고 구박을 했다. 아내는 그런 내 눈치를 보며 깜지를 안고 괜찮다며 달래고 있었다. 다행히 상견례는 잘 마쳤지만 난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고 아내는 더 이상 나와 깜지가 함께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상견례 이후에도 여전히 깜지는 내게 살갑게 다가왔으나 난 그렇지 못했다. 여전히 상견례 날의 그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며 결국 큰 결심을 하게 된다.

  아내는 깜지를 키워줄 지인을 찾아 나섰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군대 동기가 깜지를 데려가겠다며 연락을 해왔다. 동기의 아버지가 깜지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시곤 자신이 키울 테니 당장 데려오라고 하셨단다. 아내는 깜지가 사랑받으며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깜지를 떠나보냈다. 깜지가 떠나는 날 함께 하지 못했지만 아내는 많이 울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로 인해 깜지는 아내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내는 깜지가 너무 보고 싶다며 함께 보러 가보자고 했다. 나 또한 깜지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야 깜지에 대한 죄책감에서 조금은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깜지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갑자기 동기가 연락이 안 된다며 불안해한다. 전날 동기가 알려준 주소 근처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연락이 안 되었다. 도착 후 1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아내의 동기에게서 연락이 왔고, 역시나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동기의 아버님은 깜지의 활동성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아파트 경비 아저씨에게 깜지를 맡기셨고, 우리가 온다고 하자 염치가 없으셨는지 전화를 피하셨다고 했다. 아내의 동기 또한 면목이 없어 아내에게 전화를 못한 것 같다.


  결국 우리는 경비실 문 앞에서 깜지를 만났다. 근육질의 늘씬한 몸매였던 깜지는 털이 덥수룩하게 자라고 살이 쪄 뒤뚱거리는 불 품 없는 강이지가 되어있었다. 입 주변의 털은 가위로 듬성듬성 잘려 있었으며, 언제 씻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지저분했다. 아내는 그런 깜지를 부둥켜안고 뽀뽀를 하며 한참 동안을 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볼 정도로 깜지 또한 목이 터져라 울며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 또한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안쓰러운 눈빛으로 옆에 서 계시던 경비아저씨를 불러 지갑에 있던 돈을 모두 꺼내 손에 쥐어 드리며 잘 좀 부탁드린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곤 아내의 손을 잡고 억지로 차에 태웠다. '어쩌면 경비아저씨와 항상 같이 있을 지금의 깜지가, 며칠밤을 혼자 보내야 했던 예전의 깜지보다 더 행복하진 않을까?' 우린 애써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시는 내가 준비되기 전까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제 11살이 되었을 깜지는 너무 아픈 기억이다. 미안하다 깜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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