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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 Aug 29. 2023

이거 싸운 거야? 안 싸운 거야?

아내는 전역과 동시에 여군 숙소를 떠나 중앙119구조본부가 있던 별내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그동안 스릴 넘쳤던 나의 여군숙소 침투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내가 이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횟수가 급격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사 초반에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혼자 지내야 할 아내가 안쓰러워 아내의 비번 날엔 항상 아내의 집에서 출퇴근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를 찾아가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부대원들과의 술자리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내와의 첫 다툼이 있던 날, 그날은 장교 동문회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당시 동문회의 회장을 맡고 있던 난 그날도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갈 수 없다는 전화를 하고 모임에 참석했다. 아내는 내가 빠질 수 없는 자리임을 아는지라 별다른 말 없이 전화를 끊었지만, 그것이 못내 서운했는지 늦은 시간 울며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의 통화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확실한 건 최단시간 내에 아내에게 달려가지 않으면 큰일이 날 수도 있다는 싸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급히 대리기사를 불러 아내의 집으로 향했다. 새벽이 한참이나 지나서야 아내의 집에 도착한 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술을 입에 대지도 않던 아내가 술에 취해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바닥에는 먹다 남긴 안주와 찌그러진 맥주캔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제야 아내의 자고 있는 모습 눈에 들어왔다. 곤히 잠든 아내의 얼굴을 보며, 혼자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난 아내가 잠에서 깰까 조심스럽게 방을 정리하고 샤워를 마친 후 아내의 옆에 누웠다. 그리곤 3~4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부대로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내의 이마에 키스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내는 내가 도착한 이후로 잠에서 깨어 있었다고 한다. 술에 취해 늦은 시간 헐레벌떡 찾아와서는 한숨을 쉬며 맥주캔들을 치우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날 이후 아내는 약속이 있어 내가 집에 오지 못해도 웃어주었으며,  나 또한 되도록 아내의 비번날에는 다른 약속은 잡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린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있었다.


이후로 아내는 혼자 지내기 외로우니 강아지를 키우겠다고 선언했고, 난 반대할 명분을 찾을 수 없었다. 어머니도 이야기를 듣고 아내가 안쓰러우셨는지 크리스마스 선물로 슈나우저 한 마리를 아내에게 선물하셨다.


다음 편에선 나와 아내의 첫 반려견이자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던 깜지의 이야기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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