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품은 듯 은빛으로 물들어버린 어머니의 머리카락. 그 모습은 단순히 나이를 더해가는 흔적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는 어머니의 그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 속에서 우리가 남긴 이야기들이 보인다.
흰머리 하나에는 아버지의 무뚝뚝함이 얹혀 있다. 사랑을 표현하는 대신 침묵으로 감정을 숨기던 아버지. 어머니는 그 침묵을 견디며 홀로 무거운 짐을 감내하셨다. 또 다른 머리카락엔 결혼 후 행복하지 못했던 누나의 그림자가 서려 있다. 어머니는 누나의 무거운 마음을 대신 품으려 애쓰셨다. 그리고 어머니의 머리 한쪽엔 내 젊은 시절 철없고 건방졌던 말과 행동들이 담겨있다.
그렇게 한 올 한 올, 어머니의 흰머리카락은 우리가 만들어낸 세월의 흔적이다.
이제는 어머니의 머리카락에 행복의 빛이 감돌게 하고 싶다. 작은 미소를 더 자주 전하고, 따뜻한 말로 하루를 채우며,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으로 어머니의 시간을 환히 밝히고 싶다.
흰머리는 어쩌면 무거운 세월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머니의 머리카락에 더 이상 짐을 얹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제는 어머니의 시간이 그분만의 행복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기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