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한 용기

by 카이

퇴근길,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만 한 여학생의 엉성한 행동에 시선을 빼앗겨 책에 집중할 수가 없다. 사람들에게 연신 허리를 굽히며 이것저것 설명하는 모양새가 무언가를 열심히 팔고 있는 듯하다.


“안녕하세요. 저기 제가 학비를 벌려고요….”

어느덧 다가와 엉성한 말투로 내게도 말을 거는 그녀, 난 그저 잡상인이겠거니 생각하고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관심 없다는 듯 말을 끊는다. “미안합니다.”


그리곤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려는 찰나, 돌아서는 그 여학생의 서글픈 눈빛이 스친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 한 익숙한 눈빛이다. 난 다시 그 여학생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작은 키에 화장기 없는 맨 얼굴, 단출하지만 단정히 차려입은 옷차림에 안경 너머로 똘망똘망해 보이는 눈까지,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여학생의 모습이었다.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며 사람들에게 손에 들린 다섯 개 남짓의 목걸이를 팔려하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그 엉성한 모습과 서글픈 눈빛에서 왜 대학교 1학년 때의 내가 생각났을까?


대학에 입학 후 부모님께 용돈을 바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명함을 만들어 편의점과 식당 20여 곳을 돌았더랬다.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고, 지금 눈앞의 여학생처럼 식은땀을 흘리며 더듬거리는 말투로 인사를 하고 다녔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한 편의점에서 이력서와 등본을 가지고 와보라고 전화가 걸려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장님은 명함이라며 엉성하게 만든 종이 쪼가리를 여기저기 돌리고 다니는 나를 보고 ‘참 용기 있다’고 생각했단다. 그때의 용기 덕분에 난 다른 아르바이트생들 보다 200원이나 비싼 시급에 원하던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난 서둘러 그 여학생을 불렀다.

“저기요, 그게 뭐예요? 한번 줘 봐요.”

똥그래진 눈으로 내게 다가와 건네는 다섯 개의 서로 다른 목걸이, 참 엉성하게도 만들었다.

그중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하트 모양의 목걸이를 골라 들고 기대에 찬 얼굴을 하고 있는 여학생에게 물었다.

“이건 얼마예요?”

내 질문에 그 여학생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냥 제가 만든 거라서…. 오천 원이든 만원이든 주시고 싶은 만큼 주시면 돼요.”

“이만 원 드릴게요. 괜찮아요?”

만원은 목걸이 값, 만원은 학생의 용기 값이었다.


이만 원을 건네고 돌아서는 내게 감사하다며 연신 허리를 숙이는 그 여학생의 모습이 20여 년 전 편의점을 찾아다니며 연신 고개를 숙이던 나와 닮아 있었다. 엉성하게 만든 그 목걸이도 내가 만든 그 엉성한 명함 쪼가리와 참 많이도 닮았다.


다시 20년 후, 그 여학생도 나와 같은 어른이 되어 이제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청년들의 엉성한 용기를 무엇으로든 칭찬할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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