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언제나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조직에 속해 서로 같은 생각과 말, 행동을 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라면 누군가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나와 다른 누군가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오해와 불신을 사거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런 부류인데 습하고 꿉꿉한 느낌에 더해 외출이라도 하려면 옷과 신발이 젖는 것도 감수해야 하고…, 이래저래 비 오는 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비는 내게 그저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불청객에 불과하다.
하지만 모두가 나와 같진 않다. 오히려 비는 사람들에게 달가운 손님일 경우가 더 많다. 글쟁이에게 비는 끊임없이 쓸거리를 제공하는 보물 창고이며, 비만 오면 설레는 내 아내와 같은 이들에겐 힐링을 선물하는 휴식 같은 존재다. 또 누군가에겐 간절한 그리움의 대상일 수도 있다.
이처럼 비라는 존재는 사람들 마다 각기 다른 의미로 존재하지만, 누군가는 맞고 누군가는 틀렸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의 방식과 환경의 차이가 사람마다 다를 테니 무언가를 대하는 생각이 사람마다 다를 것임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 하여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거나,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끼리 모여 다른 이들을 멀리하고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드는 것은 결국 누군가를 설득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과 다른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이해시키기 위해선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나 결과만을 고려해선 곤란하다.
비를 싫어하는 내게 비의 고마움을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비를 좋아할 리 만무하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한 시간이 넘게 울며 엄마를 기다리던 비 오던 날의 기억과 빗길에서 자전거를 타다 흙바닥에 미끄러져 사고를 당할 뻔했던 아찔했던 기억, 폭우로 온 동네가 물바다가 된 곳에서 힘겹게 대민지원을 하고, 세차게 내리 붓는 빗속을 커다란 군장과 함께 행군했던 고단했던 군 생활, 이런 내 과거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누구도 나를 설득하여 비 오는 날의 기쁨을 알게 할 순 없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이해시키려면 먼저 그 사람의 과거를 이해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설득을 시도한다면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게으른 남편에게, 잔소리꾼 아내에게, 항상 투덜대는 동료에게, 맘에 들지 않는 누군가에게 무턱대고 화만 내고, 자신의 말을 들으라 강요하지만 말고 때론 그들의 말과 행동, 생각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적어도 일 년에 한두 번쯤은 말이다.
어쩌면 그리 살려 노력하는 것이 우리를 어른이라 따르며 인생의 조언을 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