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알고 싶은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나는 곧장 따라쟁이가 되버린다. 그 사람의 습관이나 말투, 표정을 눈여겨 보고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나도 함께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내 시절을 이루는 대다수의 것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연관이 있다. 정현종 시인은 어느 시에서 '한 사람이 온다는 건 그 사람의 일생이 온다'는 표현을 썼다. 나는 가끔 그 말을 곱씹어 생각한다. 한 사람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다는 사실이 기쁘고 때론 슬퍼서.
따라쟁이의 삶의 가장 큰 장점은 새로운 것을 쉽게 빨리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 몇은 남았고 몇은 꼴보기도 싫어졌지만 그래도 접했다는 이유로 값진 것도 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은 슬픔과 기쁨의 빗장을 함께 열어두는 일이니까. 그것이 언젠가 나를 실망시킬 가능성을, 그것이 나를 상처 입힐 어떤 가능성을 열어두고서 초조해하며 행복에 떤다.
이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요새 주말마다 배우는 춤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몇 번이나 취미로 방송 댄스 수업을 들은 적이 있지만, 춤 수업을 들을 때마다 느낀 건 '어디가서 보여줄만 한 춤은 절대 출 수 없겠군.'이다. 다른 취미들은 아주 조금은 성장할 '가능성의 세계'가 엿보였다면, 춤은 글쎄, 율동으로라도 봐준다면 귀여운 수준이 아닐까?
그러므로 내가 갑자기 주말마다 그냥 방송 댄스도 아니고 '라틴 댄스'를 배우기 시작한 건 순전히 그를 권유해준 사람이 좋아서였다. '내가 미덥지 않았다면 나를 부르지도 않았겠지?' 같은 낭만적인 마음을 가지고 춤 수업을 등록했다. 수업을 듣기 전까지 라틴 댄스가 무엇인지 궁금해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궁금한 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세계가 있다는 것' 그 자체였으므로, 그게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수업을 들을 때, 내게 제일 난제였던 것은 '모르는 사람과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었고, 그 다음으로 난제는 '그 사람의 눈'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라틴 댄스가 뭔지 몰랐다는 뜻이다.
기본적인 스텝을 배우고 사람들로 가득찬 홀에 앉아 춤을 추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첫 순간, 마치 어느 영화 장면 속에 끼어든 불청객이 된 기분이 들었다. ‘큰일 났다’ 싶었다. 춤을 추는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몸짓들로 서서히 행복에 물들어 갔다. 생전 처음 보는 그 광경이 너무나 아름답고 신기해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누군가 나에게 손을 내밀면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연습 시간에는 내 발을 보느라 정신이 없지만 바에 나와 음악이 나오면 '춤은 잘 못춰도 눈이라도 제대로 봐야지.’라는 생각으로 최대한 내 앞의 사람을 바라봤다.
그럴 때마다 불현듯 떠올렸다.
생각보다 누군가의 눈을 이렇게 지긋이 오래 바라보는 일은 없었구나.
하나의 음악이 끝나는 동안, 몇 번이나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며 느낀 건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눈이 정말 반짝반짝 빛났다는 사실이다. 춤이 무엇인지, 잘 할 수 있을지, 앞으로 이걸 더 해볼 생각이 있는지 같은 것들을 걱정하다가도 무언가에 진심으로 빠진 사람들의 눈을 보는 순간에는 그냥 이런 순간이 꽤나 멋진 순간 같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경험한 수많은 취미들 중 오로지 이 세계만이 가능한 일 같았다. 서로에게 손으로 신호를 주고, 그걸 읽고 맞추면서 음악을 따라 듣고 춤 춘다는 게,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변칙 속에서 뭔가 정해진 것처럼 한 호흡으로 춤을 춘다는 게 놀라웠다.
행복한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동안엔 그들이 경애하고 즐기는 그 세계가 조금 탐났다. 하지만 도통 그게 내 것 같지는 않았고, 어디선가 조금 빌려온 세계 같았다. 그래도 행복의 기운을 쐬는 건 정말 멋진 일이네, 나는 자주 생각했다.
회사의 누군가가 "그래서 춤은 잘 배우고 있어요?"라고 물으면 "네.... 아직은...." 하고 말끝을 흐렸지만 누군가에게 빌려온 이 세계를 아주 조금은 내 것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으로 한 주, 한 주의 수업을 나간다. 무언가를 못하는 게 너무나 두렵고, 그걸 남에게 들키는 순간을 무척이나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라
조금 울 것 같은 날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은..." 하고 말꼬리를 잇는 날이 계속 되기를 바란다.
언젠가는 "앗. 큰일 났다"라는 복잡한 얼굴의 눈동자가 아니라, 수업 시간에 배운 춤의 패턴이 무엇인지 기억하느라 조급하고 바쁜 눈동자가 아니라, 반짝이는 눈동자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자주 무언가가 두렵고 그럴 땐 재빨리 맥주를 들이킨다.
끊임없이 "원 투 쓰리 포"를 되새기면서도, 한 바퀴 몸을 돌리고 돌아온 장소가 제자리가 아니고 내 몸이 기운 그 어느 쪽이라해도, 나의 하염없는 우스꽝스러움을 견딜만큼은 이 세계가 궁금하다.
그러다보니 또 좋아하는 사람들도 늘어만 간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또 새로운 빗장을 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