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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은 도시의 외로움

by 양이

윤이 이사를 갔다. 자주 이사를 다녔던 나는 새로 이사한 곳에 윤이 온다는 소식에 무척 기뻐했었다. 서울은 넓고, 어느 곳으로 이사해도 나의 터전 같지는 않았다. 직장이 달라지면, 집 계약이 만료되면 언제든 떠날 곳. 그런 곳에 알고 지낸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동네가 조금 더 친근해졌다.


가까이에 친구가 산다는 것에 이점을 맘껏 누리고자 때때로 카페에 가 공부를 할 때나 책을 읽을 때 윤을 소환해내곤 했다.


아홉 시에 00커피 고?


각자의 짐을 이고 카페에 앉아 무언가를 할 때면 그 장면은 마치 내가 꿈꿨던 나의 미래 같았다. 옛 히트곡의 노래 가사처럼 ‘괜스레 힘든 날 턱없이 전화해’ 불러낼 수 있는 이가 10분 거리 안에 산다는 건 든든한 뒷배가 되었다.


각자 할 거 하는 카페의 시간

어느 날은 애인과 헤어져 지치지도 않고 슬퍼하는 나를 만나러 윤이 왔다. 우리는 각자의 직장과 가까운 곳인 망원동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윤에게는 내가 부끄러워지거나 한심해지는 고민들을 더 깊이 이야기할 수 있다. 주로 연애에 관한 고민이었다.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는 나는 자주 한심해진다고 믿었지만 윤은 언제나 윤의 방식대로 조언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아람이 잘못 생각했네.’


사랑의 기쁨과 슬픔에 관해 잘 아는 이의 위로였다. 내가 쏟아내는 연애 고민에 윤은 때때로 내가 아닌 내 애인의 편을 들어줬다. 그럼으로 완벽하게 내 편인 것만 같은 기분을 주었다. 때때로 우리가 사랑으로 인해 얼마나 감정적일 수 있는지, 상대의 말을 오해하고, 말도 안되는 슬픔을 느낄 수 있는지 잘 아는 이의 위로였다. 그 순간 윤이 자신이 한 사랑의 일부를 나에게 나눠주고 있음이 고마웠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으로 때론 감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윤 앞에서는 부끄럽지 않았다.


이야기를 끝내고 망원동에서 집까지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함께 걸었다. 나는 이 길은 전 애인과 함께 걷던 길이라며 다소 축 처진 얼굴로 말했다. 그 무렵 나는 무엇이든 잊기 위해 자주 걸었다.


손잡고 걸을까?


윤이 내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나는 멋쩍은 얼굴로 한쪽 손을 주었다.


윤과 나는 손을 잡은 채로 흔들거리며 길을 걸었다.


애인과 손을 잡는 일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데, 친구와 손을 잡고 걷는 일은 어쩐지 어색했다.

어색하게 손을 잡고 걸으며 나는 이 손을 언제 놓아야 할까 고민했다. 그런 내 고민과 무색하게 윤은 나를 보며 말했다.


이제 나랑 걸은 길로 기억하면 되겠다.


당시엔 무력하게 웃어 넘겼던 그 말이 맞았다. 그 길을 걸을 때면 때론 윤과 손을 잡고 걷던 순간이 떠올랐다. 같은 동네에 산다고 막상 자주 만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문득 윤이 이곳에 없다는 사실이 외로워졌다. 함께 걸으며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동네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내가 너무 쉽게 간과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칠 수 없는 표정으로 생각했다. 윤이 떠난 이 동네의 내가 조금은 외로워지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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