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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안아주는 힘

by 양이

“그런데, 아람 씨는 아세요? 본인이 본인을 얼마나 아끼지 않는지요.”


나에게 ‘그 일’이 일어난 후, 나는 한 주에 한 번 상담을 받으러 갔다. 8회 기의 상담 동안 나는 말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정보를 감춘 채로 상담을 받았다. 아마 이 글에도 끝내는 언급되지 않을 ‘그 일’에 대해 나는 상담이 거의 끝나갈 6회기 때야 처음 털어놨다. 상담 선생님은 아연실색했다. 그는 진심으로 당혹스런 표정이었다.


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을까.


그건 내가 지금까지도 후회하는 것 중 하나이다. 몇 번이나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었는데 동시에 말할 수 없었다. 그건 나의 어리석음을 지키는 일. 내가 안전하다고 믿는 일. 나를 무너뜨리지 않을 만큼만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 같은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일은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챗GPT에게 내가 어떻게 해야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조언을 구하는 일뿐이었다.


그리하여 내가 처음으로 아는 이에게 나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내가 왜 이 이야기를 꺼내는지도 알지 못한 채였다. 그저 그는 나에게 “아람 씨 요새 괜찮아요?”라고 물었을 뿐이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듯 말이 새나갔다.

나는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몇 개월 내내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도 눈물이 쉬이 멈추지 않았다.


'왜 그런 말을 한 거지. 그것도 회사에서. 나는 너무 프로페셔널 하지 못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휴지로 눈가를 닦고 있을 때 내 이야기를 들은 이가 따라왔다.


“아람 씨. 아람 씨 잘못이 아니에요.”


그의 첫 마디는 이런 말이었다. 나는 눈물을 닦으면서 뒤따라 말했다.


“그런 말 하면 저 더 울어요....”


그는 우는 나를 꼬옥 안아줬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내가 그때 느낀 감정은.... 충격이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내 감정을 열심히 스스로에게도 감춰 온지라 그가 그렇게 눈물을 보이고 나서야, 그것이 마치 나의 감정인 것처럼 확인한 느낌이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몇 개월 치의 일들과 내 감정을 들으며 대부분의 사람은 나를 따라 울었다.

내가 나 자신을 너무나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래서 이런 일을 만든 것이 아닐까 후회한다는 이야길 듣자 내 앞에 앉은 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오기 전까지 나도 너에게 그런 말을 해주고 싶었어. 그런데 막상 네가 너 자신을 너무나 후회하고 반성하니까 그게 너무 슬프고 속상해. 너를 상처 입힌 사람은 그렇지 않을 텐데.... 너무 마음이 아파.”


내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사람들은 조금씩은 미리 알아차리지 못함에 대한 자책감을 내보였다.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들은 이들이 나보다도 먼저 눈물을 터트릴 때. 나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네가 너무나 소중해. 그들이 힘주어 말하는 그 사실을 내가 너무나, 너무나, 하찮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여전히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아람 씨를 위해서요.”


내가 지금보다는 나를 더 소중히 여겨야 될 것 같다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무나 상처 받았다고 이야기하자 상담 선생님은 말했다.


“그걸 알아야 해요. 그건 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람 씨, 아람 씨 자신을 위한 일이어야 해요.”


그 말에도 나는 여지없이 울었다. 내가 스스로 초라해질 때마다 그래도 내가 기억하는 건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던 친구들의 얼굴이다. 나보다 나를 상처 입힌 사람을 더 안쓰러워하는 내 모습에 눈시울을 붉히며 ‘너무 속상하다’고 이야기하던 진이의 얼굴 같은 것. 내가 뭔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고, 나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나에게서 문제를 찾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의 얼굴들.

고백 이후에도 그들이 얘기해준 것을 여전히 믿지 못하고, 그때 어떻게 해야만 했을까 되묻는다는 사실 때문에 내가 싫어지는 날이 너무나 많았다.


“누구도 아람 님만큼 할 수 없어요.”


라고 나에게 이야기해줬던 동호회 동기의 말이나 왜 아람 씨가 숨고 피해야 하냐고 당당해지라고 응원해주던 선생님의 말을 떠올린다. 길에 서서 나와 함께 울어주던 사람들 기억한다.


너무 힘에 부칠 땐 가만히 그들이 해주었던 말들을 되뇌어 본다. 그 모든 일들이 있어도 여전히 내가 오늘을 잘 살아내는 것처럼, 언젠가는 지금의 삶을 더 잘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 믿으려 노력한다.


다정한 사람들은 내가 아직도 가끔은 집에 들어갈 때 조금은 두려움에 휩싸인단 사실을,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나를 해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슬퍼져 아픈 날들이 있다는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가끔 내게 묻는다.


“지금은 괜찮아?”


마지막 상담이 끝나는 날, 상담 선생님은 나를 꼬옥 안아줬다. 가슴이 약간 뻐근해질 정도로 푹 안기자 무언가 울컥 치솟았다.


“이상해요. 왜 눈물이 날까요.”


나는 애써 눈물을 닦지 못한 채로 웃으며 말했다.


“아직 아람 씨에게 그게 필요해서 그래요. 아람 씨. 힘들 땐요. 언제라도,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안아달라고 하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상담 선생님은 한 번 더 힘주어 나를 안아주었다.


“이렇게 심장 가까운 쪽으로 꼭 안으면요. 조금은 괜찮아져요.”


마지막은 울지 않으려 했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럴게요. 꼭 너무 힘든 날에는 꼭 그렇게 할게요.”


마음껏 약해지는 일이 더 강한 일이 되리라는 사실을 그제야 안 사람처럼 나는 울며, 동시에 웃으며 말했다. 아직은 나를 믿는 일보다 다른 이를 믿는 일이 더 쉽다는 사실을 애써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를 안아줬던 이들의 말을 조금 더 힘주어 믿어 보겠다고. 서른 살이 넘고도 여전히 눈물이 너무 많은 내가, 울면 우는 대로 울어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조금 더 약해져 보겠다고. 그러다 보면 정말 내일의 나는 조금은 더 나아질지 모르니까.



안아주기.jpg 셀프로라도 많이 안아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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