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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글 Dec 01. 2018

인간실격

불행의 쓸모


"아름답다고 느낀 것을 아름답게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안이함과 어리석음. 대가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주관에 의해 아름답게 창조하고, 혹은 추악한 것에 구토를 느끼면서도 그에 대한 흥미를 감추지 않고 표현하는 희열에 잠겼던 것입니다. 즉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조금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원초적인 비법을 다케이치한테서 전수받은 저는 예의 여자 손님들 몰래 조금씩 자화상 제작에 착수했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음지의 존재였던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이 세상에서 떳떳하지 못한 놈으로 손가락질당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나 다정한 마음이 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그 다정한 마음은 저 자신도 황홀해질 정도로 정다운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이라는 것이 개인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예전보다는 다소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쓸쓸할 때 쓸쓸한 얼굴을 하는 것은 위선자가 하는 짓일세. 쓸쓸하다는 것을 남이 알아줬으면 하고 일부러 표정을 꾸미는 것일 뿐이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었다.
인간실격은 색깔이 분명한 퇴폐미가 있다. 나는 20세기 일본의 제국주의가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의 마음도 상처 입혔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이 소설이 인생을 포기하고 얻은 예술 같은 인상을 준다. (다른 몇몇 일본 소설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이것이 순진한 윤리적 사고라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영향받지 않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인생은 예술보다 소중하지만 그 인생을 포기하고 얻은  예술이 어떻게 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처음 소설을 읽기 시작해서는 이 불행이 가식 어린 불행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너무 송곳같이 날카로우면서도 희한한 에피소드들이라 분명 소설가의 진짜 불행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도 없는 자기 비애를 너무 솔직하게 고백하는 이야기들에  숙연해지기도 하고 머리가 살살 아프기도 하고 이렇게 자신의 속마음을 밑바닥까지 다 탈탈 긁어 들려줘서 고마움을 느끼는 지경이 되었다.  

누군가의 발가벗은 불행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카리스마가 있다. 나 같은 겁쟁이는 무섭다. 절대 가까이 가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타오르는 무엇이 멀리 도망가서는  눈을 뗄 수 없는 신비로운 장관이 되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누군가의 진정한 불행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이에게 위로가 된다. 다르게 말하면 타인의 고통은 나의 행복이라는 잔인한 말이지만 돌려 생각하면 정말 고통스러운 불행을 진실되게 드러내 놓는 것이 얼마나 이타적인 행동인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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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오사카에 잠깐 놀러 갔다 왔는데 그곳에서 마음에 드는 종이탈을 봤다. 비뚤어진 입이 특히나 마음에 들어 얼른 챙겼는데 이 탈처럼 일본 문화의 약간 비틀어진 부분이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이것도 일본인들의 불행을 먹고 자라난 사리 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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