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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글 Jan 03. 2019

19호실로 가다

도리스 레싱 단편집


'19호실로 가다'라는 도리스 레싱 단편집을 읽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페미니즘 문학이 아니라고 했다만 페미니즘 문학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내 입장에서는 페미니즘 문학이 맞는 듯하다. 


사실 결혼 직전에 읽었던 '82년생 김지영'은 별 감흥이 없었다. 이유는 첫째로, 내가 운이 좋아서인지 둔해서인지 여성성에 대해 관심 가질 만한 환경에 노출되었던 적이 드물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주인공의 일방적인 목소리가 살짝은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은 여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고 여자와 남자가 사회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만들어 내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최종 후보 명단에서 하나 빼기'같은 소설은 예상치 못한 재미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나는 이러한 전개가 유머러스하고 내숭 떨지 않아서 좋았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 어쩔 수 없이 나 자신과 육아가 조금씩 부딪히는 상황이 시작된다. 이 상황 속에 엄마가 된 여자로서 느끼는 나의 마음속 중얼거림이 참으로 모순되고 유치하고 일관되지 않는 것들인데 그러면서도 우이씨 하는 것들이라 내가 절대 이런 생각을 할리 없다며 모른척하려 하고는 한다.

 '한 남자와 두 여자'는 내가 결혼하지 않고 애가 없었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복잡한 상황 속 모순되는 엄마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미스터리 한 장면들을 대부분의 아빠는 이해하지 못할 법도 하다. 부부 싸움 후 읽었는데 내 얘기 같은 남의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확 풀려서 내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게 하는 신비로운 소설이었다.


표제작 '19호실로 가다'가 제일 유명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19호실 방'보다 '넓은 작업실'을 꿈꾸는 나에게는 큰 재미는 없었다. 그림 그리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그래서 나는 우리 사랑하는 알밤이와 내 일이 잘 공생하기를 마음 깊이 희망한다. 지금은 공감하기에는 아직 좀 이른 것 같고 좀 더 나이 들어 삶이 지루해질 즈음에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도리스 레싱의 박력 있는 소설들이 좋았다.

소설 속 인물들도 매력이 넘쳐서 그녀의 장편소설 '다섯째 아이'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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