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글의 소재는 '괴로움' 만한 것이 없다.
지난 11월 말부터 NFT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 세계가 나에게 일상적인 좌절을 주고 있다.
그림책이 아무래도 비주류 분야라 뭔가 나의 작업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력을 올려줄 수 있는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시작한 터라 NFT에 대해 약간의 꿈과 희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게 만만치가 않다. NFT 세계에서도 나의 그림은 또 다른 의미에서 비주류스러운 것.
내가 여지껏 나의 스타일을 만들어온 과정은 어쩌면 못난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예를 들어 나무를 그릴 때 나는 멋스러운 나무를 그리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나무가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고 상상하며 개성있는 나무를 그리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모자라지만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 다니다 보니 남과 다른 나의 주관적인 시선을 열심히 관찰하고 발달시켜왔던 것이다. 멋스러운 나무를 그리지 못할 바에 나만의 나무를 그리자 주의이다.
또 나는 작업할 때 바깥세상으로부터 오는 피드백을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나와 다른 예술작품으로부터 유연하게 영향받는 것을 추구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제일 처음에는 NFT세계의 수많은 예술작품들을 보고 (심지어 내가 그림 작업할 때 단 한번이라도 활용해보려고 고려해 보지도 않았던 내 취향의 극반대편에 서있는 스타일들이 어마무시하게 많다.) 이 세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스타일적으로 변태의 과정을 겪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스타일은 내 취향 곧 감정을 반영하고 있는 거라 여러번 시도해 보고는 바꾸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나라는 존재와 나의 이성과 나의 감정은 따로 따로 떼어낼 수 없는 한 뭉탱이라는게 요즘 생각이다. 사실 서양의 분석적 사고가 더이상 새롭지도 않고 지겹다는 생각도 들거든.
대신 스토리에 대해서는 약간의 변화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NFT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상징성을 가지고 두세가지로 해석하는게 가식적으로 보이기도 했는데 NFT 세계에서 다양한 말들이 오고가는 것을 보며 해석이란건 인간의 본성에서 오는 놀이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큰 어른들이 지적이고 미적인 놀이판에서 말로 핑퐁게임을 하는 거다.
이런 관찰은 내가 생각하는 다음 그림책의 작업방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본래 어린이들의 관점을 세세하게 관찰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나였는데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도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생각이 많아지니 확신은 줄어들고 자존감은 떨어진다. 도대체 무엇을 그려야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이러다가 그림책도 NFT도 다 헝클어지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된다.
그러다가 어느날 밤 자기 전에 문뜩 요즘의 내 고민들을 글로 남긴다면 이 괴로운 과정도 즐거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림책 작업은 바깥으로부터 오는 피드백을 받기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홀로 6개월 이상 작업을 하고서도 독자들에게서 시원시원한 피드백을 얻는게 쉽지 않다. 하지만 NFT는 그림을 완성한 날 바로 퍼블리싱을 할 수 있으니 아주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그 피드백으로부터 오는 좌절( 기쁨보다는 거의 좌절일 것이라 본다.)을 아무지게 글로 남기는 거다.
사실 지금은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다. NFT 작업 고민하느라 마음이 공중에 붕붕 떠있고 새로 나올 그림책 생각에, 그리고 다음 그림책 생각에 그 어떤 것도 실질적으로 많이 진행된 것은 없다. 하지만 완성된 그림책이 출판되기를 기다리는 지금이 앞으로 얼마 없을 기회인 것만은 확실하다.
열심히 되는대로 들이밀고 열심히 좌절하고 열심히 글로 남기자. 나는 글쓰기도 그림 그리는 것 만큼 좋아하니까 잃을 것이 없고 얻을 것만 넘쳐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