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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gi Seo Jun 20. 2018

정말 힘들었다. 지금도 숨이 가쁘다.

이웃나라의 승리에 배 아픈 2018 러시아 월드컵 촌평

엊그제 스웨덴과 한국 전은 예상 결과대로 1점 차로 한국이 졌고, 지는 경기를 했다고 본다. 경기 내용도 졌다 말이다. 그리고 어제 콜럼비아와 일본 전은 박지성의 예상과 달리 일본이 2:1로 이겼다. 박지성은 2:0으로 일본의 패배를 점찍었었다.


과거의 올림픽 시즌이었다. 어느 예능 프로에서 작가 이외수 씨가 나왔었는데, 본인은 모든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선수들이 힘들면 자신도 힘들다고 하였다. 그래서 어느 경기가 가장 힘드냐고 호스트가 묻자, 축구라고 대답했다. 왜냐하면 축구는 모든 구기 종목 중 가장 많은 11명이 뛰는 체력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리 있는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라면 그 정도의 감정의 몰입도는 있어야 1인칭 시점이든 2인칭 관찰자 시점이든 전지적 작가 시점이든 인물의 상태와 행위에 대한 묘사를 사실적으로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한 기억이 나로 하여금 한국이 스웨덴과 싸울 때, 선수 개개인의 몸상태에 이입되어 마치 경기장에서 뛰는 것처럼 시청했었다.  


스웨덴 전에서 한국이 완전 빗장 깔고 최전방 공격수도 수비 진영에 서서 상대의 공격을 막고 있을 때 한 선수가 공을 중간에 가로챘다. 역습의 기회를 가진 한국은 오른편의 손흥민에게 패스를 하였고 손흥민은 우리 쪽의 하프라인에서부터 상대 진영의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상대 선수를 따돌리며 질주했다. 그리고 함께 달려온 황희찬에게 공을 차 줬으나 패스는 상대의 태클에 의해 저지되었다. 이 정도는 우리가 골을 넣을 수 있는 공격의 기회였기에 숨도 금방 되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등번호 20번의 한국 선수가 수비 진영에서 공을 잡고 왼쪽 드로잉 라인에서 머뭇거리다가 상대에게 빼앗겼을 때였다. 갑자기 그 선수에게 몰입된 마음이 떨어져 나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나도 모르게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왔다. 연습한 만큼의 선수들끼리 짜임새 있는 패스는커녕 상대가 공을 걷어내기를 바라면서 구석에서 공을 잡고 가만히 서있는 모습이 스웨덴 선수에게 공을 주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빼앗긴 직후 스웨덴의 크로스 찬스가 생겼고 한국의 수비 진열이 일시에 무너지면서 키퍼의 펀치를 맞고 떨어진 세컨드 볼이 스웨덴 선수에게로 넘어갔다. 한국의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방금 교체 투입된 윙백이었던 한 스웨덴 선수가 슛을 하려는 폼을 잡자 한국의 한 선수가 슬라이딩 태클을 했다. 그 선수의 수비를 멀리서 보면 공을 향해 태클한 정당한 방어였으나 가까이서 보면 공이 이미 흐른 상태에서 상대 선수를 저지한 반칙성의 태클이었다.


주심은 처음에 반칙을 선언 안 했으나 VR 판독이 제기되어 판독 후 페널티킥으로 다시 바꿨다.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실점 이후 후반 중반에 다다르자 한국은 전반보다 공격을 많이 시도했다. 이승우가 후반 중반에 교체 투입되어 페널티 에어리어 바깥에서 큰 호흡을 몇 번 내뱉으면서 슛을 찼으나 상대편 1.9m 신장의 수비의 몸에 맞고 나갔다. 우리는 전반에 신태용 감독의 전략대로 공격수조차 수비에만 매진했기 때문에 체력이 스웨덴 선수들보다는 어느 정도 남아있다. 하지만 골대 안으로 찬 유효슈팅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손흥민은 한국 진영에서 스웨덴 진영까지 서너 번 질주를 한 뒤로 기진맥진해졌는지 후반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이렇다 할 슈팅 기회를 갖지 못했다. 나도 일심동체가 되어 같이 뛴다고 숨넘어갈 뻔했다. 한국의 패배는 아쉬워할만한 게 없었다. 경기 내용도 한국 골키퍼의 선방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임팩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신태용 감독이 지금껏 비공개로 전술 훈련을 하고 감추어두었던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만을 알게 되었다. 성과는 없었기에 의미 없는 전술 변화였다.


차라리 공격 축구를 통해 실점을 하더라도 공격진의 체력을 안배하여 실컷 슛이나 날렸으면 더 시원한 경기가 될 수도 있었겠다(물론 축구의 기본기는 수비, 체력, 개인 기량이다). 스웨덴은 월드컵을 경험해본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고 한국은 7명이나 있다고 하였으나 오히려 한국은 월드컵 처녀 출전국인 아이슬란드보다 경기 내용에서 내세울 게 없었다.


어제 일본전은 나로 하여금 더욱 숨 가쁘게 만들었다. 본의 아니게 콜럼비아 선수들에 몰입하여 경기를 지켜보게 되었다. 왜냐면 경기 시작 3분 만에 콜럼비아 수비수가 핸들링 파울로 퇴장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콜럼비아 선수들은 모든 면에서 일본 선수들보다 압도적이라서 전반은 퇴장한 선수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펄펄 뛰었다. 그래서 동점골도 전반 끝나기 직전에 만들었다.


그런데 후반은 나로 하여금 체력의 한계를 넘어 결국 퍼지게 만들었다. 스웨덴 전에서 한국의 손흥민이 하프라인을 넘어서 질주하는 것처럼 콜럼비아 인간계 최고의 선수, 파카오의 드리블 몇 번은 괜찮았다. 뛰고 나면 쉴 틈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후반 들어 일본은 패스를 계속 돌리면서 상대의 마음을 다급하게 만들었고 공격의 흐름도 우위에 두었다. 일본이 코너킥으로 추가 득점에 성공하자 콜럼비아 선수들은 전반에 쏟아버린 체력의 소모로 인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힘들어졌다.


특히 콜럼비아 팀에서 세계 축구의 인간계 최고라는 별명을 가진 라다멜 파카오가 공을 잡을 때는 얼마나 힘든지, 들러붙는 일본 선수들이 정말 꼴사나웠다(감정적 호소가 맞다). 왜냐하면 팔카오라면 일본 선수 한 명 정도는 개인기로 돌파할 수 있는 공격수이기 때문이다. 전반전에 유효 슈팅이 몇 번 빗나가고 한 명의 공백에 수적 열세에 몰려서 아무리 인간계 최고라 불리는 팔카오도 일본 수비수들의 끈적한 압박에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후반 막바지에 다다르자 일본이 지기를 내내 바랬던 나의 심정과는 상관없이 콜럼비아 선수들의 체력은, 나의 숨은 너무 가빠서 호흡이 끊기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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