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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와 나 -8

왜 학교는 사라져야 하는가

by Younggi Seo
한국의 교사들이 서양의 교사들보다 우수하다고 한다. 한국은 교사가 되기 위해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전통적인 유교 사회에서 존경을 받으며 우대받았던 사람들이 학자들, 즉 교사들이었기 때문이다...(중략)... 이렇게 우수한 교사 재원을 확보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창의력 교육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교사가 권위적으로 학생 위에서 군림한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는 수직적 서열이 중요한 한국사회에서는 교사 말을 잘 듣는 학생이 좋은 학생이고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나쁜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이 아이들의 창의력 계발을 저해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중략)... 서양의 여러 나라에는 수직적 서열과 같은 풍토가 없기 때문에('수평적 문화'라는 단어 자체도 없다.) 교사들이 아이들과 수평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아이들의 창의력을 쉽게 계발시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창의적 풍토가 조성되지 않기 때문에 제도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환경과 분위기,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다.

그러려면 교장, 교감 선생님들이 먼저 창의적 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고 수직적 서열과 권위주의를 내려놓고 교사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는 학생들이 창의력을 계발하여 자신의 잠재력과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도와야만 한다. 그것이 그분들의 사명이다.

- 김경희, '틀 밖에서 놀게 하라'




위의 발췌한 내용을 말하는 저자 김경희는 현재 미 윌리엄메리대학교 교육심리학과 종신교수이며, 미국 고교 학력 평가 개혁을 위한 위원회에서 유일한 비미국인 고문(한국에서 경북대 사범대학을 졸업한 뒤 영어교사로 재직하다 고려대학교에서 교육심리학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박사과정을 밟았다)이다. 언제 출판된 책일까? 교육계에서 창의력은 오래전부터 화두가 되었으니, 적어도 10년 전쯤은 아닐까 싶어 하겠다. 하지만 2019년 12월 24일에 초판이 발간되어 올해 1월에 19쇄째 발행하고 있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때만 해도 2020년에는 하늘에 자동차가 날아다닐 거라 상상하곤 했다. 그 시절 애들 모두 미래를 주제로 한 공상과학(SF) 그림을 그릴 때 21세기는 교실에서 수업하는 풍경 자체가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아직도 일렬 아니면 책상을 붙여서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수업하는(나때도 이랬다...) 학교의 아날로그 풍경은 여전하다. 이러한 교실에서 권위주의적 수업 풍경은 예전보다는 덜할지 몰라도, 여전히 선생과 학생들의 관계는 위아래이지, 좌우가 아니다. 선생들은 학생들을 풀어주면 기어오른다고 생각하는 게 선생의 가치관이 보수적일수록 일반적이다. 아이들은 군대를 가기 전에 이미 군대의 사고방식을 몸에 베이고 있다.



여하튼 나는 교육학자가 아니니 학교에 대한 논단은 이만 줄이고, 왜 '학교가 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1편에서 말한 이 책의 주제)에 대한 근거부터 들겠다. 근거는 다음의 세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한국에서 홈스쿨링으로 사법고시 제도가 마지막 해였던 2018년에 최연소 합격자가 된 이승우 군의 사례이다. 나머지 두 개는 외국의 사례들로 미국에서 홈스쿨링으로, 제도권 교육을 받고 성장한 이들보다 성공한 사례 하나와 그리고 영국의 역사적 사례 중 하나로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이라는 책의 내용이다.



첫 번째, 국내의 사법고시 최연소 합격자 이승우 군의 사례이다. 그가 영재이기 때문에 특수한 사례에 해당된다는 것을 차치하고, 그는 중고교 과정을 홈스쿨링을 통해 검정고시로 마쳤고 서울대 국사학과에 재학 중이며 법학 전공자도 아닌 데에 일단 주목한다. 그는 독학사 제도를 통해 사법시험 응시자격을 만들었고 사법시험도 수험기간 동안 다른 수험생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본인조차 자신의 공부방법이 맞는지, 공부량이 어느 정도인지 비교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합격자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는 추세였던 마지막 사법시험에서 합격했다. 그가 가진 장점은 '속독'을 꼽았으며, 초등학교를 제외하곤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그의 합격 비결은 개념 이해 후 많은 회독이었다. "단순히 읽기만 하는 회독 수가 아니라 거듭되는 회독을 통해 '정확한 법리'를 이해하고 암기하려고 노력했다."게 그의 수기 내용 중 하나다.



두 번째, 수잔 바우어라는 '세계 역사 이야기'라는 책 시리즈의 아동 역사 저작으로 유명한 저자이다. 1968년 버지니아에서 태어나 초·중·고 과정을 모두 홈스쿨링으로 이수했고, 문학과 언어 부문 미국 최고의 대학인 윌리엄메리 대학(서두에서 말한 김경희 교수와 동문이다)을 대통령 전액 장학생으로 조기 입학했다. 다중 전공으로 영문학, 미국 종교사 석사, 미국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동 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 라틴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아랍어, 프랑스어, 한국어를 구사하며 다방면의 장서를 넓고 깊게 읽는 다독가이자 자신의 지식을 쉬운 문체로 풀어쓸 줄 아는 스토리 텔러와 교사의 경험을 토대로 『독서의 즐거움』, 『세계 역사 이야기』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썼다.



세 번째,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나온 현대의 아스팔트 구조를 창시한 영국의 '머캐덤'이라는 기술자다. 이 인물의 예를 든 까닭은 당시에 프랑스의 1% 안에 드는 엘리트들로 구성된 집단이 고안한 도로 위의 아스팔트 공법의 신뢰를 깨뜨리고, 이 사람이 만든 이론이 현재 우리가 차를 타고 달리면서 밟고 있는 고속도로에도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산업 혁명하면 떠오르는 증기기관의 발명가인 제임스 와트와 같이 이 사람도 제도권 교육은 받지 않았다. 이 당시에는 과학자라는 직종 자체가 누구나 시도하여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지금과 달리 일반인들이 이처럼 인류 역사를 획기적으로 바꾼 사례가 많았다. 이것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굳어진 고정관념이라는 어폐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지금에서야 알 수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례에서 언급한 수재로 볼 수 있는 경우에서는 속독도 가능하고 어릴 적부터 집안에서 홈스쿨링을 해줄 수 있는 환경이 이미 갖추어진 특수한 케이스라고 친다면, 세 번째 사례는 공부와는 하등 관계없는 일반인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가운데 꾸준히 진전시킨 결과이다. 이 결과로 인해 머캐덤이라는 도로 관리인은 생전에 돈방석에 앉았을 뿐만 아니라 현대의 세계 어디서라도 아직까지 그의 시공법이 기초가 될 정도가 되었다. 단순히 이 사람이 돈을 위해서 한 가지의 일을 억척같이(그는 이미 미국에서 돈 꽤나 벌어 왔었고, 가장 효과적인 아스팔트 시공법 '2.5cm'를 고안하기 위해 도로 4만 km를 정직하게 걸었다.) 해냈을 리는 없다.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의 2.5cm라는 제목의 장을 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하버드대 1% 수재의 재능에 관한 책이 아니다.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의 잠재능력은 주위로부터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편견이나 이 아이는 어떨 거야 하는 암묵적인 꼬리표)가 그를 평생 어떤 사람이 되는 데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된다. 그러니 학교에서 일렬로 세우는 성적표로 자신을 친구들과 아래위로 비교하는 평가에 길들여지지 않고, 주위에서 아이에게 어떠한 시그널을 보내고 자신감을 심어주는지가 학교에 12년 간 개근해서 자기에게 붙은 꼬리표를 평생 달고 다니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사법고시 최연소 합격자 이승우 군만 해도, 기득권 교육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공부법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만약 이승우 군이 수학적 암기력에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제도권 교육에서는 이처럼 일찍 자신의 재능을 주목받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와 그 주변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실 자녀의 인생 8할을 결정짓는다고도 볼 수 있다.



학교가 사라져야 하는 당위성을 밝히고자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작자를 인용한 것은 아니다. 시대를 많이 앞서 나간 이 작가의 현대에 와서 그에게 하는 평가를 통해 각 분야별(돈, 심리학, 뇌과학, 재능)로 도스토옙스키를 예로 계속해서 들었을 뿐이다. 그는 사립형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당시 러시아의 육군 공과 학교에 입대해서 군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왔다. 그에게 숨겨져 있던 문학적 감수성만을 믿고 그는 군대 퇴역 후 무일푼으로 글을 썼다. 그리고 나온 처녀작이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이 원고를 보게 된 당시의 출판 편집장 벨린스키의 비평은 아래와 같다.



도스토옙스키의 탁월함은 경험과 관찰에 의해서 얻은 인생과 인간 심정에 대한 지식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지식을 그는 깊이 알고 있으나 선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며 거기에다 순수하게 미적이며 창조적인 정신에서 알고 있는 것이다.



조금 미화하면 그때 밸린스키는 스무 살의 도스토옙스키를 보자, 깜짝 놀라 아래와 같이 소리치며 그의 발치에 입을 맞추었다고 한다.


"자네가 쓴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있는가? 스무 살의 자네 나이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을 텐데."

(이건 첫 문학공모전에서 심사위원들이 아마도 지은이가 서른 살 이상일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중학생 까까머리였던 국내 작가 황석영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일화와 비슷하다. 황석영의 세계 문단 평가는 노벨상 후보로까지 거론된다. 하지만 세계적인 고전작가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도스토옙스키가 또 그저 웃고 있을 거 같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때의 장면을 '내 생애에 있어 가장 황홀했던 순간이었다.'라고 러시아 문단계의 자신에 대한 평가를 30년 뒤에 회고했다. 하지만 자의식이 강했던 청년시절의 그가 이 직후에 내놓은 작품들은 혹평을 면치 못했다. 통계에서의 '평균으로의 퇴보'* 가 여기서도 먹히는 가 싶더니, 이후에 겪은 도스토옙스키의 인생 격정기를 통해 내놓은 작품들이 현대에 와서 고전으로 읽히고 있는 작품들이다.





참조

1) 김경희, 틀 밖에서 놀게 하라, 세계 창의력 교육의 노벨상 ‘토런스상’ 김경희 교수의 창의영재 교육법, 서울: 포르체.

2) 정주영,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리커버 에디션), 신호를 차단하고 깊이 몰입하라, 서울: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3) E.H. 카, 도스또예프스키 평전, 권영빈 역, 서울: 열린 책들.



* 평균으로의 퇴보 : MLB(메이저 리그)나 NBA(미국 프로 농구 명칭)에서 루키(1년 차) 때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대다수의 특급 신인들이 2년 차가 되면 본래의 자신의 진짜 실력이 드러나서(이 선수에 대한 경쟁팀들의 분석이 완료되면) 평균으로 회귀한다는 통계학적 이론(그러니, 류현진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알 수 있다).

(출처 : https://suhak.tistory.com/111 )


** 이 책 강추한다. 이지성의 '에이트'와 같은 자신의 팬덤에 기대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책과 비교해서 이 책에서 언급한 사례는 인터넷을 뒤져봐도 찾을 수 없는 일반적인 데이터가 아닌, 가치 있는 정보를 다양한 분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지성 작가가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대표적인 화두로, 자율주행차의 도덕적 딜레마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관련시켜 언급한 예는 일본에서 1여 년 앞서 출판된 책인 '세계의 리더들은 왜 직감을 단련하는가'에서 같은 의도와 내용으로 찾아볼 수 있다(표절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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