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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gi Seo Sep 20. 2020

T→E→N→E→T(테넷) 리뷰

T←E←N←E←T 의 시간 개념과 내가 발상한 죽은 아이디어

영화 <테넷>에 대한 브런치 작가들이 올린 후기를 보면 매번 놀란 아이디어를 선사한 감독의 상상력에 대단하다고 느끼지만 이번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어 실망이다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놀란 감독의 생각이 필자가 2007년도에 긁적였던 블로그 수기에서의 시간에 대한 공상과 너무 비슷하여 재밌게 봤다.


이해가 완전히 되어서 재밌었다는 거보다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볼 만한 공상 거리를 미국은 역시 수익으로 창출하는 것을 당연한 듯한 정서를 가졌고, 한국은 좋은 아이디어를 돈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서열에 의해 묻히는 풍토 혹은 자신의 개똥철학은 부끄럽게만 여기는 정서가 강하여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저 놀란 감독처럼 실천하지는 못하리라.


영화에서 악역이 ‘물이 말라버린 미래 시대의 세대에게 자신이 구원자 혹은 신이 되는 게 아니겠니?’ 하고 말한 대사에서 시간의 역행을 통한 감독의 메시지가 나의 발상과 흡사하여 아래에 필자가 긁적였던 오래된 블로그 글의 일부를 발췌해보았다.


 
5> 시간이 우리 세계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는 세계가 있을까? 그 세계는 바닷물이 산꼭대기로
거슬러 흘러서 물은 아래서 위로 흐른다가 진리가 되고, 사람들은 젊어지고(그들의 입장에서는 늙어지는 거겠지, 시간적으로는), 배로 들어온 음식은 입으로 구토되어 그림의 떡인 음식으로 바뀔 테고 진공청소기도 빨아들인 부산물을 내뱉고 먼지는 다시 진공상태로 가겠지. 내가 아스팔트에 차 버린 껌은 내 발에 어시스트되어 혓바닥으로 달라붙겠지... 언제 아스팔트에 껌을 갖다 차 발랐는지는 까먹은 채, 짝짝 씹다가 새 껌으로 포장하겠지... 비디오를 역재생으로 감으며 모든 장면을 상상해 보는 것도 상당히 재밌는 소설을 쓸 수 있겠다. 엄마는 내가 돈이 필요하다고 들은 걸 기억하면서도 지갑에 왠 만 원짜리 4장을 꺼내가고 나는 소리 지르겠지,  “삼만 원은 부족해, 한 장 더 주세요!"라고 말하고 난 다음 나는 당장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까먹게 되겠군...
 
6> 오홋~ 범위를 확대하니까, 더 기가 차군. 우리나라는 뽑혔던 대통령을 한 명씩 착출 하게 되면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고, 월드컵은 우리나라가 4강부터 경기가 거꾸로 마무리돼서 진짜 어게인 1960년에 북한이 월드컵 4강에 든 날을 기다릴 테고, 미군은 이라크를 후세인이 나쁜 짓 할 거라는 거 알면서도 살려주면서 철수해주고 달러는 다시 강세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쓰레기는 다시 각 가정과 기업으로 재수거되어 쓰일 테고 모든 제품은 원재료로 되돌아가 자원이 다시 풍부해지겠네. 그런데 내 얼굴이 다시 젊어진다면 이전에 있었던 일들의 흔적은 사라진다는 거 아닐까? 찍었던 사진의 필름은 다시 깨끗해지고 적어놓은 글의 잉크는 전부 펜으로 흡수될 테니깐. 그렇다면 나는 방금 전에 본 기억을 잃어버리고 앞으로 보게 될 기억만 가지게 되겠네.
 
7> ‘스트어트 매크리디’가 엮은 <시간의 발견>이라는 책의 마지막에서 말하지, 바로 여기서 우리가 상
상하는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세계와 실제로 살고 있는 세계의 차이는 사라진다. 왜냐하면 그 세계에서는 사건들이 눈밖으로 나와 펼쳐져서 이전의 일은 까먹게 되는 순서가 이 세계에서 터진 일이 눈으로 보여서 알게 되는 순서와 방향만 다르지 일방향으로만 인지되는 순서는 똑같기 때문에 사건들의 실제 순서가 인지된 순서와 정반대라고 생각할 수가 있는 여지가 없어진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까? 하고 물음표를 던지는데 정말 머릿속이 오만 가지의 가설로 아리송해진다.
 
8> 행여 지금 우리에게 과거로의 시간이 진행되고 있다면 우리의 운명은 이미 다 정해져 있다는 게
아닌가? (기억할 수 있으니까, 다만 내가 언제 죽었다가 살아난 거는 까먹어버리지...) 시간이 거꾸로 가더라도 과거의 흔적을 잃어버려서 과거가 오고 있는 건지, 미래로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그러면 사실상 과거-현재-미래는 우리가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정해놓은 정의라는 말뿐이네. 정해진 과거, 같은 말로 정해진 미래는 오는 것일 수도 있고 불확실한 미래, 같은 말로 불확실한 과거는 가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그래서,, 그래서, 도대체 무슨 기회를 붙잡고 세상을 살아갈 수(가는 거야, 오는 거야!!) 있겠냐 말이다. 내가 산을 올라가는 게 아니라 거기에 산이 있으니 가는 건가?
  
9> 지금, (일순간에 미래가 과거로 돼버리는데 지금이라는 시간상의 유효한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느낀 건, 이 가설을 통해 멋도 모르고 일상에서 사용하는 어휘에 얼마나 큰 고정적인 생각이 박혀있는지 알았다. 우리는 일상의 편리를 위해  어떤 사물이든 공간이든 용어를 붙여 구분하는데 그 어휘 때문에 우리는 당연한 듯이 세상의 돌아가는 모든 것을 언어라는 잣대로만 판단하고 주위 깊게 보지 못한다. 지나온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시간의 발견에 엄청난 괴리를 느끼는 것처럼.
 
10> 한 때 불교 TV에서 현각 스님이 말했지. '이 컵에 물이 따라져 있죠. 우리는 이것을 뭐라고 하나요? 물컵? 아니, 이건 그냥 이것일 뿐이에요.' 영어로 들어서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말의 의도는 한국어로 물컵, 영어로는 A cup of water, 일본어로는 뭐, 독일어로는 뭐 등 수많은 언어로 이름표를 붙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 현상 자체는 그것일 뿐이고  이 방구석도 인간이 구획하여 나뉜 공간일 뿐, 사실 우주의 한 부분(부분이라는 것도 인간의 정의) 일뿐이다라는 거다. 모든 것은 무한한 우주 속의 그 자체일 뿐인 거다. 자세히 드러다 보면 유한한 인간이 아는 범위 내에서 한계 지어 놓은 게 태반이고, 그 한계 속에서 인류는 또 발견한다. 그래서 인간은 모든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 지어놓아서 똑같이 실재하는 것으로는 여기질 못한다. 달리 말해, 보이지 않는 시간은 그 자체일 뿐 과거, 현재, 미래의 차이는 사라져야 한다는 걸 모른다는 거다.  
 
11> 한편 시간이 반대로 거슬러가는 세계에 살고 있는 나는 이 세계의 나를 상상하면 ‘이야, 너흰 죽기 위해서 사는구나, 이미 터질 일은 잊어버리라고 충고하겠지. 지금의 나에겐 앞으로의 일인데 거꾸로 흐르는 시간 속에 사는 이 자식은 없어질 흔적에 무슨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느냐’고 우스워하겠지, 반면에 나는 거꾸로 사는 나에게 터진일을 기억하면서 수동적으로 사는 네가 불쌍하다고 할 거야. 결국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죽은 사람도 되살아나는 너희 세상이 끔찍하다고 하겠다. 너한테는 앞으로 보게 될 일도 기억하겠지만 기억한 데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게 운명인 줄도 모르기 때문이지. 그런데 과연 기억한 데로 쫓아갈 수 있을까? '기억한 데로'라는 말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발자취를 찾아간다는 말이 아닌가, 한 사람으로는커녕, 창조주가 계시지 않는 이상 인류 역사를 그대로 되살릴 수가 있을까? 과거의 흔적, 인류 각 자의 머릿속에 있었던 기억의 자취를 들추어 과거의 퍼즐을 짜 맞추어야 하는데, 그것이 성립될까, 아무도 보지 못한 세상의 구석구석은 역사를 되돌릴 때 불필요한 것일까?
 
 
12> 거꾸로 시간이 흐르는 세상에 사는 나는 앞으로 보게 될 기억만 가지고 산다고 했지. 그러나 이 세상에서 사는 나는 지나간 기억을 온전히 보존하지도 못하는 망각의 동물에다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나쁜 기억도 추억으로 둔갑해서 기억하는데 그 기억을 더듬어 거슬러간다고 해서 과거가 실제 사건처럼 재현되지는 못할 거다. 결국, 과거로의 있었던 그대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며 역시 내 머릿속의 기억 변화로 인한 인간 각자의 세계로 거꾸로 흐르는 사건의 '재연'은 가능할 거야.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가나 바로가나 나라는 존재는 앞으로 다가올 일의 선택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더 나아가 이 세계에서 우리가 미래라고 꼬리표를 붙인 시간이란, 두 눈이 나의 뇌에서 보고 싶은 것만 빛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우리 마음속으로 품고 믿을 수 있는 것을 그대로 세상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이미 자신이 결정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13> 모든 것은 인간의 시야에서 보면 유한한 개체에 불과하나, 우주로 넓힌 시야에서 인간 세상을 보면 빅뱅부터 지금까지(우리가 아는 범위 내 규정하는 현재)는 한 유물(遺物)로 공존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 입장에선 쥐라기 시대의 공룡도 사실은 시간이라는 개념상으로 나뉘어 멸종된 거지만 과거-현재-미래라는 차이를 지워버리면 인간도 공룡도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은 하나이며 하나를 단 하나로 보기엔 너무나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입장에선 각 자의 우주 속을 거닐고 있다는 거다. (자기가 갇혀있는 우주 속을 깨뜨리고 나와야지=죽는 실험...) 그리고 이 광활한 우주의 변화도 미약한 존재인 인류의 머릿속에서 시발점이 되어 바뀌는 게 아닐까, "모든 건 네 마음먹기 달려있다."는 말이 유한한 존재의 사람들끼리 약속되어 그저 쓰이는 평범한 말이 아니라는 게 느껴지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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