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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gi Seo May 01. 2021

가장 빨리 영어를 습득하는 길 III

인식(recognition)을 넘어 이해(comprehension)





나 같은 경우는 영어가 필요하기를 정보보안 분야의 석사 과정을 이수하기 위한 듣기 / 읽기 / 쓰기 / (간혹) 말하기의 활용이다. 그래서 그 분야의 기초 학습이 모국어인 한국어로 충분히 닦여 있다면, 실제 강의를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고 과제를 위한 해석과 독해 그리고 쓰기까지 큰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행간에 토플이나 아이엘츠 등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시험의 듣기가 실제로 원어민 대학 강의를 들을 때보다 오히려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강의 같은 경우는 교수들이 시청각 자료를 활용해서 설명하기 때문에 듣기만이 아닌 주변의 배경지식을 이해하면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귀로만 듣고 이해하여(정확히 해석, '직청직해') 문제를 풀 수 있는 수준에 다다르기 전에, 아이엘츠(IELTS) 같은 경우는 토플과 달리 미리 문제를 한 번 훑어볼 수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수월할 수 있다. 그런데 듣기나 원어민과 대화를 나누는 데 궁극적인 목적은 듣는 순간 바로 '완벽히'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귀를 뚫기' 위해 대다수는 엉뚱한 방향으로 시간을 허비한다.


일단 과거의 나를 포함하여 한국인들이 영어 학습에 대한 최종 목적지는 아마도 '어떠한 영어라도 한국어처럼 알아듣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 습득과 영어 학습과의 차이를 애초에 구분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인풋량을 늘리는 게 어느 시기부터 유행이 되었는지라, 잘 때 영어를 듣고 일어나서도 듣고, 출근할 때 듣고 퇴근할 때도 들어서 사람마다 다른 일정 임계치만 넘어서면 어느 순간 영어에 대한 귀가 '뻥'하고 뚫리다는 게 대한민국 촌구석의 학설로 굳어졌다('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는 책을 유행시킨 단 한 사람 덕분에...).


언어가 '변기통 뚫어뽕'처럼 속 시원하게 뚫리는 게 정설이라면, 한국은 영어에 대한 사교육비가 갈수록 줄어들어야 할 텐데 시국은 오히려 쏟아부어야만 영어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상을 탈 때,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를 통역해준 한인 미국 유학생이 강남의 어느 학원에서 영어를 배웠다고 하여 그 학원에 한때 문의전화가 빗발쳤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영어 교육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 알만 하다.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라는 책을 쓴 한 저자로 인해 토익 점수만 고득점 받아도 아직 대한민국에서는 우러러보는 현상이 존속하므로 오히려 그로 인해 영어를 조금만 잘해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어서 수학보다는 요긴한 무기로 남아있는 게 다행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필자가 여기서 아무리 확성기를 틀고,



영어는 자신이 공부하는 분야에서만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라고 백날 데모해봐야 바뀌는 것은 갈수록 비싸지는 토익, 토플, 기타 비영어권 국가에서 시행하는 영어 시험의 접수비일 뿐일 것이다.


속사포처럼 지나가는 뉴스 앵커의 말 중 어떤 영어 문장의 행간을 이해하는데 단지 거기서 흘러나온 특정 구문과 단어를 그것에 대한 지식(학습을 통해 기억한 서술적 이론)을 알아야만 이해가 가능할까? 예를 들면, 'Many doctors recognized homeopathy as a legitimate form of medicine.'라는 문장에서 앞뒤 맥락은 일단 생략하고 이 문장에서 homeopathy/호메오패띠/라는 용어는 대개 의학분야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뭔지 모를 것이다. 그리고 legitimate/리지리머트/라는 용어도 합법적이라는 뜻이기에 이 단어에 대한 발음을 따로 연습해두지 않았더라면 놓칠 수 있겠다.


중요한 것은 쉽게 알아들은 단어들만을 조합으로 이 문장의 전체적인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모든 원어민도 한국인이 한국어를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말을 100% 완벽히 이해하면서 들을 가능성은 드물다는 것이다. 나와 같이 Many doctors recognized를 듣고 '많은 의사들이 알아냈다 (혹은) 인정했다'를 고민하는 중에 '호메오패띠' 머릿속에서 스킵~, as a '리지리머트' form of medicine을 듣고 '의학의 리지리머트한 형식으로...'라고 알아들은 후 앞서 들은 말들을 합쳐서 "많은 의사들이 정당한 의학의 형태로 무엇을 알았다는 거야, 인정했다는 거야...?" 정도의 60~70 퍼센트만 알아먹을 수 있거나, 의학분야에 몸담고 있는 원어민은 "많은 의사들이 인정했다고? ('동종요법'을), 하나의 합법적인 형식, 의학분야의..."라고 한 방에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원어민이 homeopathy라는 의학계 용어를 안다고 보장하지 못하므로 그들도 90% 정도만 이해하고 대강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외국인보다는 수월하게 추론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원어민 / 비원어민과의 이해 수준의 차이가 아니라 기반 지식을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 / 없느냐의 차이로 볼 수 있다.


외국인이 원어민보다 그들의 문화권에서 많이 쓰는 말의 쓰임새에 대한 추론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더라도, 자신이 어떤 특정 분야의 기반 지식을 많이 갖추고 있다면 원어민들보다 영어를 이해하는 속도가 더디더라도(들릴 때 옆으로 섀는 단어들을 뒤로하고), 통으로 알아맞히는(유비 추론) 능력을 통해 80% 이상의 이해력을 갖출 수는 있다. 사실 모국어인 한국어도 모든 한국어를 100% 이해하는 한국인들은 그 분야의 학자나 전문가를 제외하곤 극히 드물 것이다. 그리고 100%를 이해해서 의사소통을 하는 게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친목모임에서는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전문 통역사가 되고자 한다면 속사포처럼 말하는 원어민의 소리만을 90% 그 이상으로 이해해서 한국어로 의역(예술)할 수 있는 경지가 필요하겠지만, 일반인들이 어떤 국한된 분야에서 알아먹을 정도가 되려면 영어 소리에 대한 귀를 뚫을 필요까지는 없다.


주변부와의 관계(연결고리) 통해 대상을 이해할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이것만으로도 사실 외국어의 이해는 '통밥을 얼마나  굴리느냐' 문제이지, 귀가 얼마나  뚫려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근간 지식이나 해당 매체의 배경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특정 미드를 수없이 돌려본다고 남는 것은 미드에 나오는 장면들의 기억뿐이다. 흔히들 말하는 청각(Hearing) 테스트를 하려면 신체검사  받아야지, 미드나 영드를 보면서  알아들어도 영어 소리에 익숙해져야지 하면서 인내심이 뚫릴 때까지 고수할 필요는 없다. 나도 그렇게 영어 자막으로 이해하지 못해도  번을 되돌려본 영화가 있기는 있으나, 차라리  시간에 한글자막을 보면서 '들리는 소리는 저런 뜻이구나'라고 매칭 하는  낫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것이 외국어에 대한 이해(comprehension)가 무엇인지를 논하는데 필요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인 거 같다. 정치적 동물(Homo Political)을 가리키는 저 말을, 나 같은 경우는 타인이 있어야만 나라는 존재가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사람은 한 세상에 나 아닌 타자(타인의 시선)가 없다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타인이 없다면 자신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대상과의 비교점)이 없기 때문이다. 면접 후보자들 10명 중에 10명이 모두 고려대 정치학과를 나왔다고 가정하면 어떠한 기업체에서도 그 후보자들의 학벌의 가치는 무의미할 것이다. 학점 순으로 나열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들이 정보보안 분야의 한 업체에 지원을 해서 그중 한 명을 채용해야 한다면 업체에서는 채용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고려대를 나온 인재라서 부담스럽다기보다는 정치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정보보안업계에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이론이나 지식에 대한 활용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그들 중 한 명이 국방 사이버 보안학과를 나왔다면, 업체에서는 신입이라도 우선 채용하기 위해 러브콜을 보낼 것이다. 정치학과만을  나온 9명과는 달리 도드라지는 활용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보안학과를 나온 그 인재가 채용되었다면, 이유는 경쟁자들보다 역량이 좋다는 게 보장되어서라기보다는 정치학과와 비교하여 사이버 보안학과의 특성이 더욱 쉽게 이해(정보보안업계에 빠른 적응이 가능하고 사이트에서 이윤창출을 도모할만한 지식이 많다는 유추)가 되기 때문이다. 즉, 이해하기 위한 대상의 주변부와의 비교('유비')를 통해 그 대상에 대한 이해(‘추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알아차리다(recognition)라는 이해는 말 그대로 이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어서 그것이 다시 기억났다 정도의 이해 수준을 말한다. 영어를 듣는데 '어, 이 말은 이전에 한 번 들은 적이 있는데!'라고 떠올리는 순간, 이어서 나온 말들은 어느새 흘러가고 없을 것이다. 그런 말소리에 대한 익숙함을 기억하고 있다고 한들 실제로 들을 때 무슨 말인지 알려고 깨닫기까지는 실상 너무나 긴 타이밍이다. 다시 말해, 청해(Listening)가 아닌 듣기(hearing)를 백날 잘해봐야 남는 건, 뭔가 들리면서 남발하는 '감탄사'(오, 오, 오, 오...!)밖에 없다.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라는 책을 쓴 저자분을 욕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분은 독일에서 유학하면서 독일어가 어느 순간 뻥 뚫렸다는 자신의 에피소드를 빗대어 영어도 이런 자신의 독일어 습득 성공기를 따라 하는 게 언어 습득론의 학습법(‘고행’의 연속)을 책으로 낸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독일인 미녀 3인방의 유튜브 영상을 보더라도, 그분만큼 독일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신 유시민 선생님은 그가 공부한 독일 지역의 억양이 느껴지는 독일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는 수준, 조승연 작가라는 공부 마니아는 독일어를 어느 정도 공부했지만 초보 정도의 느낌, 그리고 축구선수 차두리의 말하는 모습을 보고는 독일 네이티브와 동일 수준이라고 평가했듯이 그분도 독일어를 구사하신다면 독일어의 귀가 뻥 뚫렸을 만큼의 차두리 수준이 아닌 유시민 선생님 수준의 독일어를 알아듣고 구사하는 정도였으리라.



어쨌든 차두리 선수는 독일에서 태어나서 유소년기를 독일에서 보낸 자아(identity, 정체성) 자체는 독일인이다. 사실 네이티브들이 보기에 외국인이 네이티브로 느낄 정도로 영어를 잘한다는 인식을 갖는 것은 그 나라에서 태어나서 그 같은 환경에서 자라나지 않은 이상 힘들다고 생각한다. 지난한 학습량과 쉐도잉으로 다져진 모사(mimicking) 능력으로 '네이티브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한국인이야!'라고 듣기에는, 한국에서 살거나 영미권 국가에서 살더라도 영어로 먹고사는 게 아니라면 영어에 대한 투자 비용 대비 시간이 자신이 모국어에 익숙해지기 위해 거친 지난한 과정과 동일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목적이라서 영어를 시작한 대한민국의 학습자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결국, 자신이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몸담고 있는 어느 특정 분야에서 혹은 한정된 분야(친목 대화, 비즈니스, 토익, 토플/아이엘츠 시험)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에 익숙하다는 것이고, 이것을 수단으로 활용해서 자신이 달성하고자 목적, 이를테면 영어 스피킹 대회 우승, 외국 파트너사와 협상, 토익/토스 만점을 통한 고수익 영어 강사 도전, 토플/아이엘츠를 통해 외국 유학 진입 등을 이루는 것이 되어야 한다. 영어 자체를 '완벽히' 알아듣고 '완벽히' 구사해서 나는 원어민과 동급의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결코 원어민들이 생각하기에 '당신은 우리와 똑같은 영어식 사고방식(문화, 관습, 양식, 습관)'을 지녔기에 당신을 우리와 같은 원어민으로 생각하겠습니다'라고 대접받을 거라는 유비 추론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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