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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gi Seo May 05. 2021

생각에 모양이 있다면...

○ ☆ ◇ □ △ ▽ ◁ ▷ ♤ ♡ ⊙





책을 보면 드는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거다. 지금까지의 나는 책을 집으면 항상 이 책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주입)데 소요할 시간과 어떻게 주입할까부터 고민했다. 하지만, 문학과 인문학류의 책은 취미로 읽기 때문에 어릴 적 학교에서 교과서만 집으면 일단 이해가 되든 안되든 통째로 외워버리겠다고 접근했던 감각이 살아나는 것과는 달리 스트레스가 적다.


독서가 취미라고 생각하는, 고상한 척 하기를 이제 만으로 근 30년째 하고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아직도 서점가나 서재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노라면 내가 저 책을 끝까지 읽기는 읽었는지의 강박관념부터 도지기 시작한다.


왜 어릴 적 학교에서 선생님 중 어느 누구라도 철학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심지어 교과서를 볼 때도 사유하면서 읽는 게 중요하다고 알려주신 분이 단 한분도 없었을까?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을 거다. 다만, 중학교 때 한 역사 선생님이 나보고 단상 앞으로 나와서 단군신화에 대해서 얘기해봐라고 한 것과 고등학교 때 한 수학선생님이 고난도의 수학 문제 하나를 칠판에 풀이해봐라고 했던 기억 둘은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자는 나에게 처음으로 '스토리텔링'을 몸소 체험케 한 거였고 후자는 본디 모범생이었던 놈이 허구한 날 잠만 자고 있는 게 안타깝게 보인 건지 문제를 풀지 못하더라도 나와서 뭐라도 설명해봐라고 시켜셨던 의도가 아직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위의 경험 둘의 공통점은 어떤 준비(주입된 지식)가 되지 않은 상태였더라도 자기가 알고 있는 교과서 이외의 지식으로 어쨌든 순간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어야 했다는 거다. 이것의 귀재가 '프리즌 브레이크' 시리즈의 주인공, 마이클 스코필드(허구이긴 해도;)였다. 그리고 드라마가 한 편씩 전개될 때마다 그가 봉착하는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 자주 내뱉은 말이 하나 있었다.


Let me think about it...


급하게만 돌아가는 위기상황에서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장면들이 대부분이어서 현실성이 떨어졌지만, 드라마 작가는 시청자로 하여금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을 전개한다. 그리고 주인공 마이클은 어느 캐릭터보다 몇 수를 앞서 내다보며 본인이 생각한 대로 상황이 전개되어서(주인공이므로) 꼬였던 탈출 계획이 다시 풀려 나간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모든 캐릭터들 중 가장 죽지 않을 확률이 높은 순위는 상대보다 얼마나 객관적으로 다음 일(trigger)이 전개될지를 예상할 수 있는 척도(바둑과 같이 몇 수까지 내다볼 수 있는지의 능력)로 나누어질 것이다. 작가는 드라마의 개연성(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이것이 마치 각 캐릭터의 몸값(총으로 바로 쏠 수 없는 가치)을 설정하듯 드라마 속 장치를 이유 있게 설정해야 했다.


시청자는 미드에서 전개되는 사건 전개와 이해관계(선과 적)가 매번 바뀌는 등장인물들의 예상치 못한 동인(스코필드를 도와주다가 갑자기 죽이려고 하고 번복하는)에 따라 빠져들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은 당시 매회가 끝나면 다음회가 어떻게 전개되고 등장인물들의 변모에 대한 다음 편의 예고(trailler)를 통해 다음화를 안 보기가 어지간해서는 힘들다(모든 인간의 동인인 '호기심' 때문에).


내가 지난 20년 간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받은(중2 이후로 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고등학교 때 딱 한 번 예전의 옆집 누나에게 수학 과외를 받은 적이 있긴 있고, 입시학원에서 재수를 하긴 했지만)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써먹을 수 있었던 어떠한 지식이나 체계는, 마치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1부터 5를 주말마다 줄행랑치듯이 본 것처럼 작가가 만들어 놓은 전개 상황만을 받아들였었기에,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대학 때 배운 모든 지식도 실상 현업에서는 공식대로 써먹은 게 없었다. 또한 직장에서 인간관계를 통한 직원의 평판이 업무 역량보다 더 중요하다는 왜곡된 대한민국의 직장생활 꼼수까지 말이다.



나는 다시 나의 20년을 되돌려서 뭔가에 하나 꽂힐 수 있다면 생각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할 것이다. 낚싯줄을 풀어서 치기 어린 시절과 같은 망망대해에 하나의 목표를 향해 던질 수 있다면, 생각 자체(메타 인지)에 대한 공부를 할 것이다. 왜 일본의 노벨상을 수여한 어느 회사원 출신 학자가 본인이 노벨상을 탈 수 있었던 까닭은 대학생 때까지 공부했던 방식을 전부 버리고 다시 자신이 생각한 방식대로 사고를 한 게 시발점이었다고 말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나도 이제 그와 같은 노선을 밟아서 노벨상을 타겠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어떠한 책이라도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을 본다면, 다음과 같이 고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는 유레카와 같은 발상의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책에 있는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책을 통해 내가 앞으로 '생각하는 모양새'가 어떻게 바뀔까를 먼저 고민할 수 있는 게 이제껏 내가 삶을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 낭비를 한 독서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에 외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사고방식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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