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한 수를 읽기 위한 끈기가 누락된 가설력만을 요구하는 시험지상주의
미국의 IT 자격증은 난이도로 따지고 봤을 때, 한국의 국가자격증 시험보다 어렵지 않다. 이른바 덤프로 불리는 족보자료가 많아서기도 하지만, 한국의 자격증 시험류와 비교했을 때 주관식이나 서술형도 없을뿐더러 단답형의 질문에 대한 답만 찍는 유형의 시험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굳이 IT 분야만 국한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대입시험인 수능보다 미국의 SAT가 체감적인 난이도 측면에서 쉽다고 한다. '공부의 기술'이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미국 유학파 출신 조승연 작가가 본인이 직접 한국의 수능을 풀어서 결코 SAT가 수능보다 만만한 시험이 아니라고 본인의 책에 피력한 것을 보기도 했지만, 수학이라는 과목만을 한정해서 비교했을 때 한국의 수리영역과 달리 미국의 SAT는 고등수학의 고난도 수준의 문제는 출제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필자가 짚고 싶은 점은 시험의 난이도에 따라 미국과 한국의 평가제도 우열을 가리고자 하는 게 아니다. 이 글을 통해 한국의 대입 수험생들이 수능을 준비하는 과정과 미국의 고등학생들이 준비하는 대입과정의 프로세스에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최상위권의 대학교, 서울대를 들어가면 기초수학능력이 출중하냐 그것도 아니다. 이미 수능세대들의 기초학력이 딸려서 서울대에서 자체 기초 수학능력 신장을 위한 강의를 따로 편성할 정도로 예전부터 본인과 비슷한 세대들의 수학에 대한 기초 개념은 많이 후달렸다고 언론을 통해서 접한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 상위 1%에 드는 수재들이 모이는 서울대를 들어간 신입생들조차 기초 수학능력이 달리다니,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수능 만점 혹은 몇 개만을 틀리고 대입에서 최고 성적을 거뒀다 말인가? 필자가 생각한 가설은 아래와 같다.
미국의 대입 수능시험 격인 SAT에서 요구하는 지식은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고등 수준의 개념과 원리들의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전장의 군인들이 총을 쏘기 위한 필요한 총알(개념)과 탄약(원리)들이다. 그래서 알기론 대부분의 과목은 문제 수도 많을뿐더러 제한된 시간 내에 빨리 정확하게 풀어내야 고득점을 노릴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수능은 수리영역(수학)과 외국어(영어) 두 과목만을 보더라도 고난도의 문제가 후반부로 가면 출제된다. 그 고난도의 문제를 푸는 것은 앞에서 상대적으로 쉬운 문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푸느냐에 따라서 문제 수는 SAT에 비해 많지 않지만, 마지막 문제까지 풀 수 있다. 그래서 역시 고난도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숙달된 문제풀이 능력과 시간 안배가 요구된다.
여기서 시간 안배는 상위권에 드는 학생들에게 해당되는 전략이겠지만, 결국 고난도의 문제까지 정확하게 풀어내려면 숙달된 문제 풀이 능력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위해서 중학교 때는 개념과 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심화된 이론을 익히고 문제풀이 속도를 높이기 위해 수없이 많은 문제집을 풀어야만 한다. 하물며 수능 만점자들 중 대부분은 꿈에서도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고 하겠는가.
진짜 문제는 여기 있다. 서울대를 들어간 수능 만점자들이 정말 문제 해결력이 뛰어나서(수학능력 시험은 말 그대로 대학과정의 학문을 수학하기 위한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 '문제 해결력' 측정을 하기 위한 시험이다.) 들어간 인재도 있겠지만, 대부분(필자가 예상키로 몰빵, 적어도 정말 천재라면 카이스트나 포스텍을 가야 한다)이 수능을 보기 전에 이미 그와 같은 문제의 유형이 나올 거라 예상하고 푼 문제를 위한 문제풀이를 몸에 체화시킨 기계적인 유형의 인재들이다.
이런 패턴(문제를 푸는 해법 과정)을 가장 많이 집적해서 숙달시킨 사람만이 사실 수능 고득점자들이고,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현실에서 새로운 문제가 터졌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 능력이 아니라, 어떠한 문제들이라도 출제될 거라는 가설력(다음 한 수를 읽는 힘이지만, 여기서는 기출문제와 예상문제를 통틀어 출제위원이 출제될 거라고 예상하는 문제를 미리 풀어봐서 시험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는 힘)에 도가 튼 인재들이다.
이들을 평가하기로는 성실성의 지표로써는 A+가 아니라 S(pecial)을 줘도 고까울 정도의 수재들이지만, 실제론 미국의 SAT를 고득점 받고 아이비리그로 가서 대학 때부터 본격적으로 학문의 상아탑을 쌓는 즉 졸업하기가 입학하기보다 힘든 구조와 비교해서는 고등학생 시절에 이미 번아웃(직장인이 되면 또 겪어야 할)을 하고, 다시 취업하기 위해 토익이나 다른 고시 준비를 하면서 한 번 더 번아웃을 하고 또 직장을 들어가서 경쟁에서 이기기위해 번아웃을 하여, 미국이나 다른 유럽의 명문대생들과는 달리 학문을 본인이 직접 쟁취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패스해야 하는 수단으로만 여기고 정작 수단으로 여겨야 할 취업을 위한 시험들이 목적이 된다.
물론 먹고살려면 취업해야 하고 선진 대학들의 풍토와 여건과는 객관적인 지표로써 비교하기는 힘드나, 단순히 양적이 성장만을 추구하는 풍토는 경제에서나 대학이나 아직까지 비슷한 처지인 것만은 사실이다. 어려운 시기였거나 지금처럼 새로운 학문이 날이 갈수록 더 많아지는 현대사회에서 단순히 문제를 풀기 위해 그와 같은 유형의 문제들을 미리 수없이 답습해서 쉽게 푸는 능력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지상 언론에서 떠든 지가 몇십 년은 지난 거 같다. 그것을 해야 할 장본인은 인공지능이다. 문제를 풀기 위한 탄피만을 장전(주입)해놓고, 그 총알을 전투 간에 어디에 어떻게 쏘는지에 대한 교육을 대학에서 해줘야 사회에 나가서도 실상 해결해야 할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고 일단 부딪혀서 해결하려는 주도적인 문제 해결 능력 혹은 '문제 발견 능력'을 고양시킬 수 있을 건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