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끈 했었던 키아누의 컴백을 기다리며...
제목에 데블(Devil)이 들어가는 영화였던 거 같았는데, 키아누가 매트릭스로 할리우드에서 뜨기 전에 찍은 작품이었다. 더군다나, 함께 등장한 주연은 알 파치노였다.
법정영화였기에 그 당시 한국이 배심원제로 재판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를 학생 때, 배심원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그들의 성향부터 파악하는 키아누의 변호사 역할을 보고 아연실색했었다. 배심원들의 성향에 따라 재판장의 판결이 뒤집힐 수도 있다는 제도가 배심원제 아닌가?
그래서 엊그제 '법정의 고수'라는 책에서 저자가 본인의 남편(미국 변호사)은 도대체 배심원제가 없는 재판을 어떻게 하는가라고 하는 반면에 자신은 어떻게 배심원들의 의견을 수용한 재판을 믿을 수 있다 말인가라며 미국과 한국의 재판 성향에 대한 이질적인 가치관에 대해서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이 글의 필자 역시 한국도 몇 년 전부터 도입한 배심원제도에 대해 신빙성을 떠나서 어떻게 한 사람(판사)의 객관성을 믿기도 힘든 데, 일반 시민들의 다수결제에 의해 재판의 승소가 결정 날 수도 있다 말인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금 본인이 타이핑한 글을 다시 읽노라면 판사 한 사람만의 결정만이 객관적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배심원단이 필요한 거 아닐까라는 반문을 하게 된다(?).
다시 돌아가서 키아누가 새끈 하게 출연한 그 영화(Devil's Advocate, 악마의 대변인)에서 나에게 인상적인 장면을 떠올리자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소하지 않는 그가 변호를 하는 방법은 배심원들의 취향을 예상해서 거기에 맞춰서 그들을 감정적으로 설득하는 거였다. 그런데 한국인이 쓴 '법정의 고수'라는 책에서 작가가 언급한 내용 중에 무죄판결을 많이 받게 한 다른 변호사의 비결이 있었는데, 변론요지서를 무죄판결문처럼 쓰는 거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판사는 재판 시종일관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비결을 조언한 변호사 말마따나 자신이 낸 변론요지서를 판사가 무죄판결문처럼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즉 그가 낸 변론요지서대로 판사가 인용하기 쉽도록 유도하기 위해 기존의 무죄판결문을 보고 판사들이 쓰는 용어, 논리 구조, 어조 등을 그대로 습득하는 거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그 사람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 아니겠어?
마치 영어를 하는 사람에게 영어로 이야기하고, 어린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용어로 야단을 쳐야 하는 것처럼 말이야(신주영, 2020). 더 나아가 면접관에게는 면접관이 좋아하는 취미를 파악하고 그것을 곁들여 얘기하고, 배심원단에게는 각 배심원들이 성향을 파악해서 그 성향에 이끌리는 화제를 언급하면서 얘기하고, 고객사에게는 갑이 좋아할 만한 화두를 꺼낸 후 얘기하면 일단, 호응받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미국에서 한 때 가장 유명한 재판 중 하나였던 OJ 심슨(전 미식축구 선수) 변론 이후 그 선수의 아내를 죽인 흉기가 신고됐지만 늦었다는 한 때(2016년) 뉴스를 접해서, OJ 심슨 양반의 얼굴을 보고 구미에서는 돈만 있으면 살인자도 변론 잘 받고 잘 살 수 있구나 생각한 적(하지만, 그는 2007년 한 호텔에서 동료 5명과 함께 스포츠 기념품 중개상 2명을 총으로 위협하고 기념품을 빼앗은 혐의로 이듬해 최고 3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9년형으로 가석방됐다.)이 있었다. 또 근래 넷플릭스 미드 시리즈 '슈츠'를 보면서 변호사는 배심원들이 누군지 미리 알아내 재판에 앞서 승률을 예측하는 장면에서도 한국과 달리 증거 게시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설득하는 문화가 당연한 듯이 보였다.
OJ 심슨 재판도 한국의 한 TV 프로그램인 과학콘서트에서 정재승 교수가 배심원단이 속아 넘어간 확률과 통계의 오류를 지적했는데, 세상을 사는 데 본인의 논리가 철옹성같이 단단하더라도 상대가 동조하지 못하면 알력 다툼만 일으키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논리에 의해서 결과는 뒤집힐지 몰라도 OJ 심슨의 말년은 추악하고 어느 누구도 그를 유명한 NFL(미국 풋볼 리그)의 미식축구 선수로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참조
'법정의 고수', 신주영(2020)